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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Oct 14. 2022

그 엄마에 그 딸

엄마, 제발 돈 좀 써



엄마가 좋은 데 놀러가는데 좀 덜 부티나게 입고 왔다. 평범한, 그냥 아줌마처럼. 

거기다 겉옷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새 옷인데 안 어울려서 안 입는다고 준 옷을 입고 왔다. 역시 엄마한테도 멋지게 어울리진 않았다.


백만원 넘는 질 좋은 코트 같은 걸 깔끔하게 입으면 안되냐고, 나는 속이 상했다. 남들 다 있다는 명품 백 하나 들지 않고, 단정하지만 여전히 오래 입은 티가 나는 옷에, 발 편해야 한다며 헌 운동화 깨끗이 빨아 신고 온 울 엄마.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엄마의 ‘목표’에 이른 단계는 아니라고,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도 엄마는 돈을 안 쓴다. 특히 자신을 위해. 

우리가 타박하면 몇 년 후에는 ‘목표 달성’을 할 예정이니 그 이후에는 돈을 여유롭게 쓸 거라고 한다. 

모르겠다. 돈도 써본 사람이나 쓰지, 과연 엄마가 돈을 쓸지. 자신을 위해 옷을 사고, 가방을 사고, 신발을 사고, 화장품을 살지. 

이번에도 여윳돈이 있었다. 새 옷을 사 입고 놀러 가라고 받은 찬조금이 엄마에게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쇼핑을 갔는데 맘에 드는 옷이 없었다며 안 샀다. 



속에서 천불이 솟아난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땅을 내려 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돈만 있으면 당장 끌고 가서 그 “옷 사줬다는 남의 집 딸”처럼 옷장을 싹 갈아 엎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새건 아까워서 묵을 때까지 쓰지 못하고 모든 걸 꼬깃꼬깃 모아둔 외할머니에게 맨날 옷을 사다 준 엄마와 이모의 마음이 그랬을까. 



나도 엄마의 말이 이해는 간다. 실제로 엄마는 쓸 돈이 없다. 왜? 아직까지도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고, 투자하고 재테크 중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애가 넷이다. 그 넷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과 사랑을 가지고 있다.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만큼 애가 둘인 사람에 비해 (엄마 말에 따르면) 돈이 배로 필요하다. 천만원이라도 각각 지원해주고 싶으면 남들 2천 들 때 엄마는 사천이 들고, 1억씩 지원해주고 싶으면 남들 2억 들때 엄마는 4억 든다. 물론 나는 그냥 지원하는 돈을 줄이라고, 남들 2억 들 때 엄마도 그냥 2억 들고 대신 1인당 5000씩 지원하면 되잖아, 라고 한다. 하지만 남들 해 주는 만큼 다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자식된 입장으로써 갖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부담스러움과, 고마움과, 미안함과, 원망과, 그 모든 감정이. 한편으로 엄마는 우리가 뭐라고 하면 내심 마음의 상처를 입고 섭섭해 한다. 너희를 위해 하는 희생과 고생은 알아주지 않고 눈만 흘긴다며. 





알고 있다. 

나한테 돈 내놓으라고 하는 엄마가 아니고, 자신을 있는 힘껏 희생해서 나를 밀어주려고 하는 엄마라는 걸.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해오려는 것도 모자라 아직도 '허리를 졸라매며' 살고 있는 엄마가 속상하고

엄마를 그렇게 만든, 일찍일찍 '성공'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속상하고 화가 나고 

여튼 그래서 엄마에게 아 옷 좀 사라고 잔소리를 퍼붓는데 말하다 보니 내가 그 말 할 처지가 아니다.



엄마와 나는 아주 비슷하다. 

엄마가 안 사는 것처럼, 나도 새 옷도, 신발도, 가방도 안 산다. 

나도 내 친구가 준 옷을 입고, 에코 백 메고, 단벌 운동화 신고, 화장품도 안 산다. 

나도 사실 이번에 마찬가지로 새 옷 사려고 쇼핑을 나갔는데, 진짜로 마음에 드는게 없어서 결국 있는 옷 대강 입었다. 


엄마도 나도 진심으로 물욕이 별로 없다. 

옷을 잘 입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션에 열정적이지도 않고,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가지고 싶은 것도 그렇게 많이 없고, 멀쩡한 것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는 것도 아깝다. 먼지 쌓이는 것도, 관리하는 것도 질색이다. 중고라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사들이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 돈으로 책을 사고 여행을 한번 더 가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엄마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살았고, 

가끔 느낄 수 밖에 없는 자괴감을 커버하는 마법의 말을 자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 주었다. 

 “나는 저런 것들 하나도 안 부럽다. 명품 백에 텅장인 것들. 나는 허름한 가방 대신 집이 있다”. 

심지어 나도 이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허세를 부릴 필요 없다는 말.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말. 



나도 공감한다. 그래서 나도 당당하게 돈 없어도 쭈굴거리지 않고 잘 산다. 

나는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에 투자했으니까. 나도 지금 엄마가 재테크를 해서 돈이 없듯, 내 미래에 투자를 해서 돈이 없는 거니까, 나는 꿀릴 것이 없다. 아무리 겉보기에 남들보다 혹 초라하거나 평범할 지라도, 나는 나의 진정한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옷을 사 입고, 꾸미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진짜로 옷 살 돈이 없어서 안 사는게 아니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 것도 아니고, 진심으로 소비를 덜 하는 것이 환경에 낫다고 믿고, 진심으로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 믿기 때문에, 이 것은 우리가 현재 선택한 자발적 ‘가난’ 이라는 것. 그러니 한치 부끄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열등감을 느낄 것도 없다. 


자존감 높은 엄마와 자존감 높은 

차라리 자존감이 낮았더라면   옷이라도  입을 텐데옷도 쌍으로   입는다징하다

 



엄마가 반대로 나에게 옷 좀 좋은 걸로 사 입고, 신발도 좋은 걸 신고, 가방도 좋은 걸 들고, 화장품도 좀 더 비싼걸로 많이 사서 쓰고…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2,30대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거지같이(?) 사는 딸을 보며 속상했겠지만 

나는 언제는 돈 모으라며, 하면서 돈 모으면서 어떻게 옷을 사냐고 넘겼었는데 이번에 내가 엄마를 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는 상관 없지만, 우리 엄마는 혹은 우리 딸은 더 예쁘게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살 길 바라는 마음. 

과연 그 엄마에 그 딸이로세. 

그나저나 엄마가 더 늙기 전에 내가 한 맺히지 않으려면 빨리 돈 벌어서 엄마 옷이나 잔뜩 쫙 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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