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람콧, 인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어떻게 살고 싶은건지도 알 수 있을 텐데,
생각해 보면 20대가 될 때까지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나만의 취향 같은 것들을 제대로 발전시켜 볼 기회조차 없었다.
대한민국 십대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그냥 부모님이, 학교가 하라는대로, 친구들이 하는 대로 살았다.
막연하게 언젠가 꼭 '나답게' 살것이라고 기대하며.
그런데 '나다운 것'은 내가 기대한 것처럼 한번에, 뿅 하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면 ‘자아’라는 것을 발견해서 커리어 패스를 정립할 수 있을 줄 알았다.(환상이다)
한달간 배낭여행을 가면 ‘진정한 나’를 찾아서 돌아울 수 있을 줄 알았다.(모아둔 돈이 사라졌다는 것밖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휴양지에 가서 먹고 마시면서 푹 쉬면 앞으로 뭘할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어떻게 이렇게 놀면서 살 수 있을까, 하고 더 머리만 무거워졌다.)
예전의 나는, 이게 좋다고하면 좋은가, 하고 저게 좋다고 하면 그런가, 하는 사람이었다.
뭐 먹고 싶냐고 해도 몰라, 어디 가고 싶냐고 해도 글쎄,
내 마음 나도 몰라.
어쩌면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결정을 믿는 자신감.
니가 하는 건 뭐든지 좋아, 그냥 너 따라 할래,라고 말했을 시기에 나는 한참 나 스스로를 결정장애자,라고 불렀다.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자신있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항상 의심하고 불안해 했다. 내가 내리는 결정들에 대해,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마음 속 깊이 자신이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조차 모르는데, 내가 내린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바보처럼 남들이 알려주길 바랬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겠으니까, 대신 남들이 나에게 알려줬으면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올바른 길이 어떤 길인지.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건지.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카푸치노를 마실까? 난 모르겠어. 니가 보기엔 어때?
내가 어떤 스타일인것 같아? 쌉쌀한 스타일? 부드러운 스타일? 뭐가 더 나을까? 나에게 뭐가 더 어울리는 걸까?
아니 그런데 나도 모르는 나를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써놓고 보니 정말 답답한데, 주변 사람들도 얼마나 답답했을지.
심지어 나 스스로도 답답했다. 누가 좀 나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알려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들은 나와 생판 다른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비슷비슷한 빨간 동그라미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내가 빨간 동그라미라는 인식을 하기 힘들다.
온통 노란색 네모들 사이에 둘러 쌓여 있을 때에야 내가 ‘빨간색’을 가진 ‘동그라미’구나,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삼시세끼 밥을 안먹어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하루 한끼는 꼭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인도에서 짧은 기간동안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그룹에서는 우연찮게도 나와 인도 현지 팀장을 제외하고 모두 웨스턴 계였다.(유럽, 미국, 호주..)그 전에 미국, 프랑스에서 살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어렸고, 생판 낯선 곳에서 하루하루 적응하느라,언어를 익히고, 홀로 외로워하기도 벅차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든지 뭐 이런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20대 중반이 되어 인도라는 곳에서 같은 외국인 여행자, 봉사자의 신분으로 만난 무리 속에서
나는 드디어 나 자신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 배려와 자기 주장하기의 미묘한 선
우리나라는 눈치껏 집단 행동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욕 먹지 않으려고 개인 행동을 자제하는 편인데, 같이 일하던 페니는 아무리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라도 자기가 화장실 가야 하면 간다고, 멈춰서 수박 사가고 싶다면 멈추자고 당당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생각한 바가 있으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는 페니가 어쨌든 말 안하는 나보다 훨씬 실속을 챙기는 거다! 특히나 자신의 주장을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절로 헤아려 파악해 주는 문화가 아닌 서양권에서는, 입을 닫고 있으면 그냥 입 닫고 있는 그대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가끔씩은 내가 팀원들을 배려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걸 이 친구들이 알아주긴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넷이서 택시를 타는데, 내가 덩치가 제일 작다 보니 가운데 뒷자석, 가장 불편한 자리에 그나마 내가 앉는게 낫지 않을까 해서 한두번 내가 가운데에 앉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당연하게 네가 제일 작으니까 가운데 뒷자석에 앉아, 라고 하거나 자연스럽게 내 자리를 그렇게 지정하는 것이다. 몇번 지나고 나서 나도 가운데에 불편해서 앉기 싫어!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니가 아무말도 안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지~ 라고 하는 것이다.
갑자기 외국에 나와서 졸지에 내가 배려심이 엄청 많은 사람, 자기 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내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내고 말하는 유럽 친구들과 비교 되어 스스로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항상 윗사람 말을 들어야만 했지 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쳐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 말 듣고, 선생님 말 듣고, 언니 오빠 선배 말 듣고, 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나보다 경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내가 내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건 겨우 비슷한 무리의 또래 사이에서다. 그러니까 연습도 많이 안해본 내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데 자기도 모르게 머뭇거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두번째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는 '말 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 서로서로 '눈치껏' 행동하고 상대방이 날 위해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도 쉽게 알아챈다. '대인'과 '소인'이라는 개념이 있는 문화권이다. 너그럽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은 '대인'이고 말 그대로 이기적이고 쪼잔한 사람은 '소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소인'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무의식 중에 행동에 제약을 가진다. 또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배려를 알아채고 고마워하는 능력도 더 높은 것 같다. 행간을 읽는 능력이랄까.
그런데 서양 문화권에서는 단순하게 모든 행동이나 판단의 이유가 자기가 행복한 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내가 배려하는 행동을 보이는 건 나의 배려로 상대방이 행복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나를 행복하게 하니까. 내가 배려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내가 편한 것이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되니까. 그 합리적인 기준에 따르면 상대방의 배려는 고맙긴 하지만, 어차피 그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배려를 해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절절하게 고마워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희생'하면서 배려를 해 준다면 오히려 부담스러워 진다. 그래서 내가 불편했는데도 너희를 위해서 그랬다, 라고 하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착한 사람 증후군이 있는사람'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편이고, 내가 조금 손해 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너그러운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속상하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만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나는 100% 논리로 무장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되바라진 개인주의자도 못 되고, 그렇다고 해서 얌전히 상대방을 배려하며 뒤로 물러서는 착하고 참한 아시아 여자애도 못 된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거지? 아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2. 공주와 톰보이
분명 나는 공주님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화장을 엄청 공들여서 하지도 않고, 하얀 피부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하지도 않고, 땀이 나거나 머리가 망가질까봐 달리기를 못한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털털하다고 말을 듣던 내가, 이 그룹에서 여자여자 하다(girly)고 평가받고 있다!
내가? 여성스럽다고?!
하긴 진짜 히피스러운 헤일리를 보면 나보다 훨씬 더 외모에 신경도 안쓰고, 정말 자유로운 스타일에
페니는 남자랑 어깨 밀기 시합을 해도 안 밀릴 수 있을 정도로 운동선수 스타일이다.
여기서는 내가 너무 연약하고 몸을 사리고 외모에 신경쓰는 여자애 이미지라는데,
아니 그래도 인간적으로 머리는 감고, 얼굴 뾰루지는 좀 감추고, 병약해 보이는 입술은 생기있게 립글로스라도 바르고 싶은 것이 너무 여성스러운 건가?
한국에서는 머리 세팅도 안하고, 화장도 대강하고, 각종 시술에도 관심이 없는 내가 너무 톰보이스럽고 털털하고 좀 꾸미라고 하는데.
그럼 나는 여성스러운 사람인가, 아니면 털털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 어떤 삶이 더 좋은 건가?
3. 혼자거나 아니면 여럿이거나
인도로 혼자 오면서,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훌훌 떨쳐버리고 싶었다.
혼자 여행하고, 혼자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하는데, 혼자 노는게 좋다가도
여행 중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여럿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정말 친한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가.
나는 관계와 정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개인주의적인 사람인가.
비슷비슷한 동그라미들 사이에서는 정작 내가 동그랗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다들 그러니까, 뾰족한 각이 없는게 당연한 줄 알았지.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비로소 내가 사실 동그라미, 그것도 팔각형 스러운 좀 비뚤빼뚤한 동그라미 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별모양을 가진 사람들도, 무지개 색깔로 이루어진 사람들도, 갖가지 다른 모양의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사실은 빨간 것이 아니라 핫핑크였다는 사실을, 둥글둥글하게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톱니바퀴로 살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것이 옳은가,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것이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내가 이런 사람인가, 저런 사람인가, 이래야 하는가, 저래야 하는가 고민하고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근데 나를 안다는 것은 생판 모르던 숨어있는 사람을 '발견해 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더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다른 사람의 평가가 받을까 두려워 나 자신을 숨기지 않는 것, 나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과 표현에 솔직해 지는 연습.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낯선 곳에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보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연습을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