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버스 안-억울함에 대하여

[인도-암리차르에서 맥그로드 간지로]

by ClaraSue


호텔에서 푹 자고-역시 사람은 편한데서 쉬어야 뭔가를 할 수 있다 - 아침에 산뜻하게 일어나서 사실 나는 골든 템플에 한번 더 가서 좀 더 오래 있고 싶었다. 그런데 페니는 골든템플에 질려 버린 듯 했고, 또다시 그놈의 프룻 (과일) 타령이 시작되었다. 어제도 코코넛 사겠다고 보더가는 지프도 놓칠 뻔 했는데 또 과일 사먹겠다고 우긴다. 또 혼자는 안움직이겠다고 그런다.

그냥 내가 템플을 포기하고 샤워하고 뒹굴거리다가 쇼핑이나 하고 가기로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닐 때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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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구경하고 몇개 사고, 밥 먹자고 사람들이 많이 있던 골목길 로컬 식당에 들어갔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밥이 맛있었고, 저렴했고, (총 65루피) 라싸도 진짜 지금까지 '맛집'이라고 책자보고 찾아갔던 데들보다 훨씬 나았다.

괜히 밥집 찾아간다고 날뛰다가 시간만 엄청 날리고 개고생 했다. 그걸 여행 끝날때 알았다.


길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어서 구경을 잠깐 했는데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 둘다 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미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발리우드가 유명하니 이렇게 영화도 길에서 많이 찍어서 내가 우연히 구경도 하게 되고 그러네. 신기하다. 서울에서도 여의도에서 촬영 많이 하고 했지만 길가다가 우연히 내가 찍힌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내 옆에 사람이 인터뷰 당한 적은 있지만..(나는 티비 나올 재질이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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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 촬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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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배우보다는 오히려 경찰 아저씨들이 멋지다.

인도에서는 경찰이나 군인들이 굉장히 잘생기고 키도 크다. 아무래도 뽑는 기준이 있는 것 같다. 남을 제압할 만한 덩치들을 뽑는 건가.

암리차르 버스 터미널로 가서 정오 다람살라 행 버스를 탔다. 로컬 버스 였는데 다람살라 가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껴서 타야 했다. 날도 덥고 3명 앉는 자리에 나, 페니, 뚱뚱한 인도 아저씩 이렇게 앉았는데 도저히 못가겠어서 결국 내가 맨 뒷 자리 아무도 없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salman_khan_police_o-gthumb-gwdata1200-ghdata1200-gfitdatamax.jpg 이 분은 영화 배우지만 , 경찰들이 이런 느낌 이랄까?


이렇게 빈 자리가 있는데 왜 낑겨 앉느냐, 하는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오분 안에 몸소 체험 할 수 있었다.

차에 충격 완충장치가 없다.

그래서 덜컹, 하면 그냥 사람이 용수철마냥 튀어오른다ㅋㅋㅋㅋㅋㅋㅋ

처음에 엉덩이가 진짜 거짓말 안하고 만화에서 보듯이 좌석에서 50센티 이상 떨어졌다. 앞으로 날아갈뻔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진짜 웃겼다.

그래도 혼자 마음 편히 오는게 나아서 창문 열고 바람 맞으면서 밖 구경하면서 왔다.

SAM_0520.jpg 자동차와 짐마차가 뒤섞여 있는 뿌연 인도의 도로



도시를 구경하며, 마을을 구경하며, 인도에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 뜨거운 인도의 텁텁한 먼지섞인, 특유의 냄새가 섞인 공기를 담아서 한국에 선물로 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인도만의 공기.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이 느낌을 가질 수는 없겠지. 직접 와서 온몸으로 개고생을 해봐야 느낄 수 있는 거다 인도는.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올라오더니 설탕물을 주길래 한잔 마셨다. 다행히 배탈은 나지 않았다.

여기서도 또 버스가 잠시 정차해서 쉬는 틈을 타 구걸꾼들이 창문 밖에서 손을 들이 밀고 드라이버 눈치보면서 올라와서 손 내밀었다가 내려가고 그렇다.

내가 걸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심히 불편한 이유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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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죄책감이 든다. 저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렇다면 왜 외면하는가.

한명에게 보인 자비의 마음이 오해를 받아 우르르 나에게 몰려올까봐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서.

또 만만해 보일까봐. 만만해 보이면 돈을 주세요가 아니라 거의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름 당하게 되니까.

만약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이 오히려 악순환의 고리가 되면 어쩌나. 들은 대로 당사자가 아닌 조직만 배 불리게 된다면? 서울 지하철에서 기어다니던 아저씨에게 소심하던 내가 용기내어 돈을 드렸는데 일어나서 걸어나가시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어리석은 거라면?

어차피 줘봤자 달라질 것도 없으면.

외국인은 돈이 많다, 적선을 잘한다 라는 그 생각을 강화시켜 주는게 좋은 것인가. 차라리 근절시키는 캠페인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준 도움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 나의 마음 자체가 중요하니 그냥 내가 주고 싶으면 주고 아니면 말자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적선한 만큼 나의 죄가 덜어진다든가, 아니면 적선한 만큼 하늘 창고에 부를 쌓는 거라는 종교적인 생각도 해 본다.


혹은 이 모든 이유들은 결국 나도 돈이 없다, 나도 한푼이라도 아쉬운 배낭여행자다, 내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나의 가장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가리기 위한 핑계일 뿐일까.

왜 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구걸해서 대강 살려고 하는 거지? 자존심이 없나?

심지어 애들을 이용해서 구걸을 하다니. 저런 철면피들에게는 한푼도 못준다!


이런 판단조차 가진 자의 오만한 판단일까.

나도 모르게 숨어있는 나의 꼰대적인 모습. 내가 가장 경멸하던 모습.

뼛속까지 내면화한 산업화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

니가 덜 노력해서 그런거야. 부러우면 너도 열심히 살아. 너도 더 노오력 해. 왜 니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가난한 걸 나에게 뜯어가려고 하는거야.

나도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왜 너를 도와줘야 해. 내가 왜 너를 배려해야해.

나는 그런 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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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단순히 천원도 안되는 돈 몇푼 적선 하네 마네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빗장 하나를 열어 버렸다.

진짜 유치한 생각이다. 차라리 태생부터 귀족이면 마음이 더 너그러울텐데, 이게 바로 졸부의 마음인가.

어쩌면 나는 그 사람들보다 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룬거야. 내가 한거야. 건드리지마.

이것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의 행복과 목표를 위해 살아온 사람의 한계인 것 같다. 기대했던 미래의 보상이 조금이라도 공정하지 못한게 아닌지 촉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 그러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고 나누지 못하는 사람.



아무도 모르게, 나조차 모르게 숨겨놓았었던 나의 마음.

우리 사업부에서 공채에 정규직은 전부 남자였고 사업부에 있던 여직원들은 전부 비정규직에서 시작한 초대졸자들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공채 정규직으로 입사했고, 그 당시 내가 막내인데 사업부 여직원들 중 경력 몇십년 된 분과 월급이 비슷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질투를 받았고, 텃세도 받았고 (그 외에도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항상 내가 양보해라, 내가 이해해라, 내가 너그럽게 대해라 라는 조언을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때 내가 더 나은 상황에 있으니까, 내가 대인배의 마음으로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 생각은 했지만 사실은 화가 났던 거다.

억울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 가서 취업준비 피땀 흘려 해서 여기에 들어왔는데, 내가 왜 죄지은 사람처럼 숙이고 눈치보면서, 나보다 못한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도록 조용히 있어야 해? 나도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야. 나도 정당하게 내 권리를 누릴 (잘난척을 할) 권한이 있다고!



요즘 많은 사회 갈등이 사실 뚜껑 열어보면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온통 억울함 뿐이다.

내가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서 이 나이까지 올라왔는데 왜 이 지위와 권한을 포기하고 물러나야 해? (세대 갈등)

나는 참고 이 꼭대기까지 올라왔는데 왜 이제와서 아랫사람을 봐줘야 해? (선후배 갈등)

나는 공부하고 노력해서 시험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희는 왜 무임승차 해? (정규직/비정규직 갈등, 전문직/비전문직 갈등)

내가 개같이 열심히 노력해서 돈 벌었는데 내가 왜 다른 사람(사회)에게 나눠줘야 해? (복지,세금 확대/ 축소 갈등)

내가 내 돈 내고 행동하는데 왜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되냐고, 내가 왜 너의 입장을 생각해줘야 하냐고(갑을 관계)

공정한 게임에서 순위는 당연한거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나도 억울함을 그렇게 토로했었던 적이 있다.

억울하다고. 나는 이렇게 잘났는데, 잘난 대접을 못받는다고 억울하다고.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빤히 보더니

그래, 그래도 너는 정말 좋겠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노력을 안해서 너처럼 좋은 학교를 못가고 정규직으로 취직을 못해놓고 너를 질투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시작이 달라서 노력을 해도 너만큼 안되었을 수도 있어.'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뒤통수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다.

그래, 우리 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둘째딸로 태어나서 갖은 고생 다하고 공부도 못하고 어찌어찌 젊은 시절 비정규직으로 회사에 취업해서, 나같은 사람들을 엄청 부러워했던 사람. 젊었을때 그렇게 부러움과 열등감에 가득차 있었던 사람이 자식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온 몸으로 밀어 올려서, 그 자식은 이렇게 자신이 부러워하던 자리에 있게 되었다.

엄마를 생각하면, 어떻게 내가 감히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나 돌아보게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니까 결국 그 이야기던데.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공정한 게임일 수 있냐고.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들 비슷한 출발선일 거라고 착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여전히, 그렇지 않다고. 그러니까 공정한 게임을 만드는 동시에 출발선을 좀 더 비슷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다면 출발선을 비슷하게 만드는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골치아픈 일인 것이다.



평등한 교육 기회를 주면 되지 않냐, 라고 하면 또 과연 모든 사람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돈 많은 사람은 처음부터 좋은교육을 받아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등등.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포기 하는 것 같다.

원래 그래. 그냥 받아들여.

예전 정유라 말대로 '돈도 실력이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아.

사회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대신 노오오오력 해서 이 사회에서도 위로 올라가면 되잖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다 보면, 더 나아가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냥, 이 사회에 최대한 편입해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아마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억울함을 가지고 살 것이다.

그 와중에 억울함에 함몰되지 않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억울하다는 걸 인지하고,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도록 짧은 생 원 없이 살고,

억울함 보다는 감사함과 너그러움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아가려고 노력 하는 수 밖에.



SAM_0238.jpg 황량한 도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가던 버스 맨 뒷자리도 뺏겨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이 뚱땡이 아저씨가 절반 자리를 여전히 차지하고 있어서 죽을 맛이었다.

나도 뚱뚱해서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이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다. 내가 말라서 손해 보는 것 같다!!!!! 억울하다!!!!!!!



참 이상하게 인도는 못 먹어서 마르거나 체질 자체가 마른 사람도 많지만 진짜 배 나오고 뚱뚱한 사람들도 정말 많다. 특히 남자들은 왜 그렇게 다들 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진짜 죽지 못해 살아서 버티고 있는데 버스가 드디어 히말찬 지역으로 진입했다. 드디어 녹색이 나오고 숲과 나무들이 나오고 좀 선선해지기 시작한다. 이 버스를 타고 7시간을 오다니. 대견하다 내 자신.

벌써부터 사람들의 얼굴이 달라진다. 펀잡 지방은 대부분 골격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 하고 얼굴도 크고, 목도 굵고, 수염도 왕창 나고 (여자들은 다 스카프를 쓰고 있어서 잘 안보이지만 역시 서양인들처럼 생겼다) 그렇게 생겼는데 히말찬 지역만 해도 좀 얼굴 골격이 밍밍(?)해 진다.



다람살라에 도착해서 또 버스를 타고 맥그로드 간지로 와서 여기서 다시 다람콧까지 올라가야 한다.

옆에서 승용차 타고 빵빵거리며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부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승용차 탈 수 있는걸, 안 타고

일부러 배낭 메고 여기까지 와서 걸어다니고 있다는 걸 되새긴다.

이게 집을 떠난 내가 선택한 길이다. 차 따위도, 편안함 따위도 필요 없다고, 그냥 나를 자유롭게 해 달라고 선택한 길.



11시 반에 식당에서 출발해서 집에 도착하니 밤 8시가 훌쩍 넘었다.

하루가 갔다. 정말 긴 여정이었다.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핫 샤워를 하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밥 먹기전 샤워하고 나와서 페니가 아 배 아파!를 외쳤고,

이것이 또다른 뜻밖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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