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격적인 열정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이번에도 나는 나의 '본능적인 직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나의 직감이란,
지금 이 순간 혼자 머리 싸매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보다
두번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를, 지금 현재를 최선을 다해 누리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마케팅에 그 뜻이 변질되기 전부터 YOLO의 삶을 추구했던 사람이고
나의 우선순위는 안정과 돈보다는 최대한 열심히 경험하는 것,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로 나 또한 고민한다.
그놈의 돈 돈 돈!
돈이 없는데 어떻게 여행을 다니며, 돈이 없는데 어떻게 인생을 즐긴단 말인가?
지금 있는 돈을 다 쓰면 미래에는 무슨 돈으로 먹고 산단 말인가?
노후 대비까지는 말하지도 말고, 할지도 모를 결혼비용까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다른 집으로 이사갈 때 넣어야 할 보증금조차 없는데, 어쩌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한국 갈 비행기 표 값이라도 있을까.ㅋㅋㅋㅋ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를 괴롭힌다.
나를 잠 못 이루게 하고, 고민하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이 생각들은, 결국 '불안'이다.
돈이 정말 한푼도 없는데 월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닥칠까봐 불안하고,
기약없는 백수로 살아야 할 까봐 불안하고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내가 '여행'이라는 '사치'를 누려도 되는건지 불안하다.
잘못된 선택인지 불안하고, 이 불안감은 나의 자존감까지 건드린다.
나는 현재를 즐겨도 되는 사람인가?
내가 그런 '좋은 곳'에 가고 '좋은 시간'을 보낼 자격이 있을까?
이렇게 (거의) 빈털터리에 미래도 알 수 없는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행복을 막고 있는 감정을 파악하게 되니,
덜 불안해졌다.
그리고 사실 이 불안은 나에게 익숙하기도 하다. 나는 20대 내내 같은 불안과 싸우면서 강해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다시 불안에 휩싸였던 건,
30대가 되면 이런 불안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었기 때문이다.
근데 좀 더 나이를 먹고 경험치가 찼다고 해서, 뿅 하고 모든 상황과 내 자신이 변하는 건 아니구나.
(따지고 보면 참으로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절절히 깨닫는 걸까)
불안하긴 하지만,
당연히 대학원 졸업 후 취직전까지 불안하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고,
돈이 없긴 하지만 여름까진 버틸 수 있다. 정 안되면 돈 빌릴 구석이 있다.
불안보다 더 확실한 건, '정착'을 시작하면 두번 다시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나의 자유.
그리고 돈 말고도 가치있는 무언가를 나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
전에는 몰랐는데, 이걸 깨달으면서 나는 충분히 여행하고 삶을 누릴 자격이 된다는 걸 알았다.
돈이 없다, 돈이 없다 하지만, 따져보니
나는 돈이 있는 사람과 같은 것을, 아니 혹은 훨씬 더 특별한 것을 누리고 있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 한국에서 300만원을 들여서 마요르카를 간다면
나는 30만원으로 마요르카를 갔다.
유럽에 사니까, 시간이 널널하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기간에, 싼 비행기 표를 찾아서,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무를 수 있다.
거기다 친구 집에서 먹고 자니까 숙소비도 안 들고,
관광지가 아닌 현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집밥은 얼마나 맛있던지.
6년전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엘레나를 키프로스에서 만나면서는
여러 생각에 휩싸였다.
6년 전부터 키프로스로 놀러오라던 이야기를 했는데,
심지어 내가 유럽으로 이사 온 후 8개월이 지나서야
엘레나를 만나게 되었다. 엘레나는 엘레나대로 바쁘고, 나는 나대로 바쁘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 엘레나가 놀러온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는 다음번에 제주도를 가자고 했었다. 코로나 전에 우리는 정말 제주도 갈 줄 알았다. 엘레나 엄마도 한국에 놀러올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했던 '미래'란 얼마나 예측 불가능 한 것이었던가.
'다음 번'에, 내가 한국에 없을 수도 있고, 엘레나가 키프로스에 없을 수도 있다.
이번 기회를 '돈'과 '불안'이라는 이유로 놓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른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던 나의 16년 전 미국 친구들을, 나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너무 믿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기회가 있다.
불안은 뒤로 미뤄두고,
2022년의 여름을 최대한 불태우겠다, 다짐하고 최대한 열심히 살려고 한다.
돌아보면 나는 선택을 해 놓고도 그 선택에 얽매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지 못했던 때들이 있었다.
같은 실수를 최대한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여행다니면서 멋진 사진들을 찍다 보니, 나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참으로 멋져진다.
인스타그램만 보면 이렇게 멋진 삶이 없다.
아름다운 해변, 뮤직 페스티벌, 다이빙....
별로 다른 사람들을 부럽게 만드려고 사진을 업로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얼핏 그런 생각이 든다.
누가 보면 참 잘 사는 줄 알겠다고.
근데 그렇게 부러울 것도 없다.
나는 나대로 포기한 것이 있고, 감당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여행하는 대신 나는 옷도, 화장품도, 신발도 안산다.
머리도 안하고, 네일도, 관리, 마사지도 안 받는다.
명품도 하나도 없고, 최신 전자제품도 없다. 아직도 아이폰 7 쓰고, 에어팟 1세대를 쓴다.
고프로랑 애플워치, 그리고 애플 펜슬을 쓸 수 있는 최신 아이패드는 좀 갖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삶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대로 내가 보기에 멋지고, 부러운 것들이 있고,
그리고 그들은 그들대로 포기한 것이 있고, 감당하고 있는 것들이 있겠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완벽한 길은 없다.
모든 것에는 장 단점과 앞 뒤가 있고,
시간은 물처럼 흘러간다.
남을 부러워 할 것도 없고, 남을 부럽게 할 필요도 없다.
그런 것에 낭비하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
feat. 장기하 '부럽지가 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