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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Sep 03. 2022

나의 꿈은 미스 럼피우스가 되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남들이 보기엔 나는 너무나도 INFP.

전자책을 써 볼까, 이것저것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갑자기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다.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스킬/기술 하나 없는 나.

뭐든지 시도해 보고 즐길 순 있지만, 그 어느것도  '잘' 하지 못하는 나.


영어를 쭉 가르쳐왔으니 그 '기술'을 어떻게 개발해볼까 싶기도 하고

요가 티칭 자격증도 있으니 그걸 내세워볼까 싶기도 하다가도

이미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을 보면

나는 감히 나의 알량한 능력으로 어떻게...라는 생각이 들어 지레 포기하고 만다.



이럴 때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가 나를 한심하게 여기게 된다.

너 지금까지 헛살았구나

왜 그러고 살았어

뭐하고 살았니 남들이 다 전문성 쌓고 있을때.

잘 못 살았나봐.

내 인생에 대한 자신이 없어진다.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던 시기, 책을 읽어주던 내가 아이들보다 더 감동을 받은 동화책들이 있다.

그 중 한 권이었던 Miss Rumphius. 한국어로도 미스 럼피우스 라는 책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앨리스라는 꼬마가 자라서 루핀(루피너스)을 심는 미스 럼피우스가 되는 이야기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온 앨리스가 할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며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그리고 손녀딸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내용이다.

뉴질랜드에서 루핀으로 뒤덮인 들판을 보며 감동받아 선물용 루핀 씨앗을 가져온 적이 있다.

여름에 우리집 화단에 루핀이 피고, 세량리에 루핀이 가득하면 정말 예쁘겠다 생각했었는데, 결국 실패했지만 이후에 이 동화책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한창 그 당시 마을에서 '관광상품'으로 어떤 걸 심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루핀을 추천했지만 결국 마을에서는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결국 망했다...) 루핀이 가득핀 마을을 상상한게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던 손녀 앨리스의 입장에 공감 하던 나는

어느새 훌쩍 자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스 럼피우스의 입장이 더 공감가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미스 럼피우스처럼 푸른 하늘과 예술을 좋아하고, 여기저기 여행도 했다.

동화책의 결말처럼, 나도 그녀처럼 나중에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살수 있을까.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마지막까지 소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기술'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나는 그들과 나를 비교하다가 기가 죽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들이 '기술'을 연마하던 시기, 나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한 곳에서 전문성을 쌓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택했는데, 그것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더 강인하고 현명하게 만들어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대로 나의 여정을 통해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삶의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행복했던 시간 뿐 아니라 개고생하고 외로웠던 그 모든 시간을 거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내가 수집한 나의 경험들.

하지만 내 '이야기'가 과연 누가 얼마나 듣고 싶을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일까?

나는 남들이 자신의 '기술'을 풀어내어 돈을 버는만큼 내 '이야기'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모두가 '수익성 없는 일'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자영업자 집안 출신이다.

나의 첫번째 학위도 경영/비즈니스다.

그래서 나도 '수익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모든 것은 '수익화'로 귀결된다.

이것이 얼마나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 수익을 낼 수 없으면 가치가 없고, '창의성'은 얼마나 새로운 방법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에 대한 것이다. 성공한 사람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내는 사람, 자기 계발은 수익을 더 높이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고 채찍질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것.


내 이야기는 다른사람에 비해 '수익성'이 없다, 라는 신랄한 비판을 주변으로부터, 그리고 스스로에게서 듣고 우울해져 있는데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삐딱한 이상주의자가 고개를 들었다.

수익성을 생각했더라면 이미 퇴사를 하기전에, 인생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짜서 '체계적으로' 움직였겠지. 나는 수익을 내기 위해 여행을 하거나 도전을 하거나 나의 이야기를 수집한 것이 아니다.

그냥, 나는 '수익성'과는 거리가 먼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한거다. 돈 보다는 살아가는 것 자체에 충실한.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도 '수익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만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죽을 때까지 돈과 거리가 먼 삶을 살게 생겼군)



돈이 안벌리더라도, 대신 나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 특별한 사람이면서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며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수익성 있는 '기술'이 없을까만 고민하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어차피 다른 사람들처럼 높은 수익을 내고, 비싼 것들을 소유하거나 심지어 온전히 경제적인 자유를 얻어 일 안하고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고, 덜 사고 덜 쓰고, 지구에 최소한의 악영향만 끼치면서 살고 싶다.

남들과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남들과 똑같은 모습이 되려고,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자괴감을 느끼면서 정신없이 노를 젓다가

다시 깨닫는다.


나의 꿈은 (누군가에게는 우습겠지만) 미스 럼피우스처럼 늙어가는 것.

공부하고 여행하고 글을 쓰고 가르치고 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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