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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Sep 20. 2022

늦게 시작해도, 죽을 때까지 하면 되지 않을까?

파이어족, 그 정반대의 삶


요즘 대부분 사람들의 꿈이 최대한 빨리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빠른 은퇴'를 하여 남은 여생을 '돈 걱정 없이'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한다. 

빠르면 40대부터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시중에는 엄청난 방법론이 난무한다.

물려받은 것도 그리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최대한 빨리 취직하여 허리띠를 졸라모아 '투자'를 할 목돈을 마련한 뒤 그 종잣돈을 요리조리 굴려,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벌게 만드는 법'인 것 같다.

물론 그 와중에 자칫 잘못 코인이나 주식에 투자하면 돈이 없어지는 거고, '공부'해서 안전하게 (어느정도 운이 따라야 한다 생각한다) 성공적으로 투자하면 파이어 족의 길에 가까워지는 거고. 


지긋지긋한 사회생활과 돈 버는 기계같은 삶을 벗어나 돈 걱정없이 마음대로 사는 삶이라니 참으로 상상만 해도 참 즐겁고, 행복할 것 같긴 하다. 내가 첫 취직하고 나서 이 '파이어 족'의 삶을 얼마나 부모님이, 세상이 나에게 장밋빛 미래로 보여주었던지. 넌 4년제 대학 졸업해 좋은 직장까지 '남보다 빨리' 취직 했으니 이미 이 청사진의 3분의 1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제 내가 할 일은, 꾸준히, 열심히 회사 다니며 목돈을 모으는 거라고. 


나도 그 미래에 혹하긴 했는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나의 '젊음'을 '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행다니고 놀러다니는 건,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빠른 은퇴하고 나서, 가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빨라도 40, 50대잖아! 

40대에 할 파티가 20대의 파티와 같을까? 50대에 여행지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이 20대에 찍은 사진이랑 같냐고. 나의 불타는 20대와 30대를, 또다시 '미래'를 위해 미뤄야 한다고?

이미 나는 이 사회와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완전히 포기해야 했던 나의 10대 시절을 돌아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나는 10대에만 할 수 있는 일탈을 해보고 싶었고, 반항을 더 하고 싶었고, 연애도 하고 여튼 뭔가 학교와 공부말고 뭘 더 하고 싶었는데, 그놈의 20대를 위해, 그리고 내 남은 인생을 위해 10대를 포기(가 아니라 투자)해야 한다는 말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두렵기도 했다.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인생 실패'한다고 하니까. 실패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20대가 되어서 돌아본 나의 10대는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나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돈도 벌어본 적도 없고, 연애는 커녕 남자사람 친구조차 없었다. 특히나 외국 친구들과 비교하면 나의 자괴감은 더 심해졌다. '수능공부' 해서 심지어 내가 SKY를 가거나 의대 이런 곳을 간 것도, 내가 꼭 가고 싶었던 대학을 간 것도 아니다.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다. (20대 중반의 내가 스스로를 평가하기에는) 


그렇게 후회하고 있었기에, 두번 다시,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그 당시 나는 굳게 다짐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젊음을. 



그리고 지금 열심히 목돈을 모아서 나중에 계획한 것처럼 되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라는게 꼭 그 목돈이 나갈 일이 생기고, 쓸 일이 생기고, 투자가 실패하기도 하고,

결혼, 육아 같은 다른 우선순위들이 생긴다. 결국 60,70이 되어도 경제적 자유를 얻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있어?

나는 '언젠가'를 믿지 않는다.





그렇게 첫 회사를 퇴사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면서 살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가장 우선순위는 '안정'과 '인정'이 아니기에 가능한 선택이고, 나는 '돈'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투자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버텨낼 수 있는 길이다.

그래도 가끔 빠른 은퇴에 대한 조언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나도 하루 빨리 다시 자리 잡아서 돈 모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닐까..또 겁주잖아. 난 결국 돈 없는 노인네가 되고 말거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사람들과 순서가 좀 바뀌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노는 걸, 나는 먼저 노는 것일 뿐이다. 그 사람들이 빨리 은퇴할 때, 나는 대신 죽을 때까지 일하면 된다. 

죽을 때까지 일한다니 끔찍하게 들리지만, 어차피 나는 놀기만 하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게 살아 봤는데 별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재미도 없었다. 

'은퇴'를 목표로 하는 일을 하면서 내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영영 '은퇴'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돈만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진짜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걸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다 해도, 더 멀리까지 가면 되지. 적은 돈이라도 더 오랫동안 꾸준히 들어오는 수입이 훨씬 중요하다는 게 재테크의 기본이잖아? 


그런 일을 하려고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투자해 온 거고, 앞으로 투자의 결실이 조금씩 천천히, 나타나리라 믿는다. 천천히 가도, 더 멀리까지 행복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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