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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Apr 12. 2020

[일상리뷰]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나이브스 아웃 -  - 라이언 존슨


추리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모두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이브스 아웃이라는 추리영화가 나와서 기대가 컸다.

최고의 서프라이즈를 위해 일부러 예고편이나 시놉시스 등은 모두 보지 않고 참았다.

한국어로 '나이브스'라고 써져 있어서 나이브스가 뭔가 했더니 칼들(knives)이었다. 

칼을 빼들다 이런 느낌인데 오오 칼이라니! 좋다 느낌 좋다!

거기다 영화 시작 부분부터 나오는 저택의 모습들, 그 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 무빙, 그리고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방식까지 아주 마음에 들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보고 나서 이제 내가 추리영화에 살짝 식상해진 건가 싶어 걱정했다. 

등장인물들의 소개, 어느정도 스토리와 긴장이 쌓일 때 터지는 살인사건, 그리고 탐정이 한명씩 수사하는 모습을 탐정의 시점으로 따라가는 카메라, 그리고 진짜 범인 소개와 반전? 플롯이 너무 뻔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감독은 그런 추리 영화를 기대한 관객의 예측을 아주 멋지게 반전시켰다.



우선 처음부터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바로 수사가 시작되는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이 소개된다. 

이 때 우리는 가족들 그러니까 수사 당하는 사람들이 처음 경찰관과 탐정을 만남과 동시에 함께 그들을 소개받게 된다. 가족들이 경찰 수사관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열심히 하는데 화면 저 뒤쪽에서 거만하게 앉아 피아노 건반을 띵 띵 치는 사람이 있다. 등장인물들도 대체 누구세요? 하고 관객 또한 함께 궁금해진다. 저기..누구신데 뒤에 앉아계신거죠?



그 사람이 바로 이 살인사건을 해결한 탐정 아저씨!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마지막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아저씨다! 아니 뼛속부터 영국인인 아저씨가 미국 남부 사투리로 연기 하는걸 보자니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됐다. 이 말투는 완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랭크 언더우드 말투인데 갑자기 케빈 스페이시가 생각나네 감옥 가셨으려나..


마르타(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


등장인물 소개를 하면서 또 하나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관객이 탐정과 함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진실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탐정이 질문을 할때 각 등장인물들은 진실을 회상하고, 회상 장면을 통해 우리도 진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진실을 모르는 건 오직 탐정 이라고! 주인공 격인 간병인 마르타가 등장할 때부터 관객은 마르타의 시점을 따라가게 된다. 



이 영화가 추리 영화이긴 한데, 추리할 거리가 없다! 추리를 하는 건 탐정 그리고 경관들 뿐이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마르타와 주인 할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마르타의 실제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부터 이 영화는 추리영화가 아니라 스릴러 영화가 된다. 추리영화처럼 진실을 찾아가는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마르타가 진실을 숨기는 걸 응원하고 주먹을 꼭 쥐고 탐정 아저씨한테 들킬까 안들킬까 조마조마 하게 숨죽이고 지켜보게 된다.



마르타의 시점을 따라가다 보니 마르타가 듣는 정보는 우리도 그제야 듣게 되고, 마르타가 눈치 못챈 사실은 우리도 눈치 못채고, 마르타가 관찰한 집안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도 함께 보게 된다. 

집안 사람들의 캐릭터도 참으로 다양하다. 첫째 딸은 자수성가했다고 자부심이 강하지만 사실 아버지가 처음 사업 시작할 때 자금 지원을 해줘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고, 둘째 며느리는 요즘 힙한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는 스킨케어 회사 대표이지만 사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파산 한 상태다. 셋째는 아빠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아빠의 저작권을 이용해 돈을 벌고 넘겨받을 생각을 하고 있지 본인이 독립적으로 무엇인가를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또 자식들이나 파트너 캐릭터도 다양한데 그 다양한 캐릭터들이 마치 요즘 미국 사회의 백인 중산층들의 일면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미국사회는 실제로 예전에 잘나갔던 미국에 기대어 그 유산을 눈독들이면서 사는 것이 아니냐는 거다.

첫째 딸처럼 내가 자수성가 했다고, 우리가 잘나서 성공했다고 하지만 정말 현대 미국산업이 스스로 자수성가 했나? 지금까지 이뤄놓은 자본과 기술 등을 물려받아서 지금도 부를 축적하고 있는 거지. 

둘째 며느리처럼 진보적 가치를 지니고 영혼의 자유로움 을 제창하면서 글루텐 프리,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외치지만 사실은 알맹이 없이 파산하는 상황이고 셋째처럼 기업가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만들어진걸 가지고 2차 3차 컨텐츠 재탕하면서 단물 빨고 살고 있다고. 그 다음 세대인 손자 손녀 세대는 더 한심하다.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한 랜섬은 오만하고 방탕하고 어떤 짓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진짜 나쁜 놈이고, 메그는 진보적이고 정의를 외치지만 자기 학비도 못내고 친구를 배신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제이콥은 네오 나치다. (참으로 부모들이 잘 키웠다..)




이런 집안의 부를 마르타가 상속받게 된거다. 

그 전까지 모든 사람들은 얼마나 마르타에게 잘 해줬는지 모른다. 

마르타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마르타가 상속자가 된 순간 모두들 칼을 빼 든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객들은 진짜 마르타가 상속을 받아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마르타에게 상속해 주긴 했지만,

마르타의 실수로 할아버지가 죽은 건데?

또 할아버지 재산인데 할아버지 가족이 받는게 맞지 않아? 



그러다가 사건이 진행되고 진짜 범인이 밝혀지고, 

마르타와 그들의 명확한 차이가 드러나면서 마르타가 상속자가 되는 것이 맞다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돈을 가질 것인가, 사람 하나를 살릴 것인가 하는 선택지가 있을 때, 이 가족 모두는 아마도 돈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면서. 아무도 보지 않았고 아무도 모를 것이니까. (어쩌면 나 또한.)


그런데 마르타는 돈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것을 택했다. 

할아버지의 죽음 조차 마르타의 말을 듣지 않은 할아버지의 탓이었지, 자신의 일을 누구보다도 성실히 했고 진실되고(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할 정도로), 똑똑한(오목을 이기는 마르타) 마르타의 탓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미국 사회는 돈과 이기심 에 눈이 멀어 자기 앞에 있는 것이 진짜 칼인지 가짜 칼인지도 모르고 적을 찌른답시고 휘둘러대는 랜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이민자들이 미국을 장악하고 있다고 소리치는 미국 사회에 진짜 그것이 이민자의 탓인가 돌아보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을 차지할 만큼 성실하고 진실되고 똑똑하고 선하고 용감한가. 만약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에 침투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결과가 아닐까? 그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 모습을 한번 보자, 유산에 길들여져 무능하고 부패한 우리 자신을. 



해피엔딩. 권선징악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라면, 혹은 그런 세상이 올바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세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대저택에서 유산을 놓고 전전긍긍하면서 싸우는 가족이 나은가, 작은 집에서도 서로를 챙기면서 사는 가족이 나은가. 그놈의 돈이 뭐기에. 


배우들도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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