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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un 02. 2020

조금 더 나 자신이 되는 연습_명상과 요가

[인도] 다람콧


페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밤새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더니 급기야 아침에 열이 오르고 도저히 못일어나겠다고 울기 시작했다. 점심먹고 페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게 되었다. 



다람콧에 있는 아유르베다 병원(우리나라로 치면 한의원같은) 현대 의학과 인도 전통 치료법을 같이 쓰는 의사선생님이 있었다. 페니는 저혈압에 음식 잘 못먹고 배탈나서 탈수증도 좀 있는거였다. 

다행히 나는 아무렇지 않다. 

페니는 죽는다고 울고 불고 하는데 이런 말 하면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얼마나 아픈지 와닿지가 않았다.

'아프다'는 말의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한국에서는 통증이 5일때 정도를 아프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 사람도 통증이 5일때 똑같이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3일때 아프다고 할까 아니면 7일때 그제서야 좀 아프다고 하는걸까. 

매운 음식을 가지고 맵다고 하는 것이 개인적, 문화적으로 다른 것처럼 아프다는 말도 그런 것 같다.


같은 한국 사람이 어떠어떠하게, 이만큼 아프다고 하면 아하! 하고 이해가 되는데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아픈 것을 다른 나라 말로 설명을 하면 그만큼 공감이 되지 않는다. 



아파 죽겠다와 , sick 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가, 서로를 정말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의 감정은 각자의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고, 각자의 언어는 그 집단의 문화 전체를 담고 있다.

그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언어를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번역해서 간신히 이러이러한 뜻이겠거니 하고 짐작 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페니는 거기에서 수액 맞고 쉬도록 하고, 나는 오후 내내 뒹굴거리며 놀았다. 지난 주에 우리가 벽화 그리고 있었들 때 관심을 보이던 프랑스 언니 한명이 합류했다. 또 프랑스 사람이긴 하지만 확실히 동생보다 언니가 낫다. 내가 덜 돌봐줘도 된다는 점에서.

 다른 리더가 이끄는 팀이 게하에 들어왔는데 훨씬 재미있어 보인다. 우리는 왜 2명 뿐이야? 


페니를 데리고 오는데 걔가 훌쩍이면서 파인애플을 먹고 싶다고 해서 택시를 멈춰서서 샀다. 주방가서 부탁해서 썰어다 날랐더니 시원하지도 않은 밍밍한 파인애플에서 양파 냄새 난다고 또 울어 제꼈다. 미치겠네. 

나도 눈물이 줄줄 날만큼 아픈 적이 있어서 이해하려고 해 봤지만 이렇게 주변 민폐고 뭐고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해서 자기 멋대로 구는 사람은 감당이 안된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얘 병수발을 들고 있어야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감정을 최소한으로 표현하도록 배워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항상 튀지 말라,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말라, 내가 잘못하면 우리 집단 전체가 벌을 받는다, 우리 집안 전체에 먹칠을 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좋아하면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니까 표현을 자제하고, 나쁜 일이 있어도 너무 우울해하면 주변 사람들을 덩달아 힘들게 만드니까 표현을 자제하라고. 


특히나 감정을 너무 드러내는 것은 약점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픈데 아파 죽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광이고, 어른스럽게 최대한 참고 의연하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유치하고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너무 실망하거나 상처받은 티를 내면, 힘들다고 울면 약해 보이고 만만해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너무 믿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면, 이용당하고 뒷통수 맞기 십상일 거라고, 절대 그런 '틈'을 보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멋진 사람이라는 것은 차도녀라고 생각했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날것 같은 사람. 절대 약해 보이지 않고, 만만해 보이지 않고, 누구에게도 얕잡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사람. 



그러다가 여기서 다 컸는데도 제멋대로 구는 페니를 만났다.

그냥 좋은건 좋다고 표현하고, 엄청 좋으면 엄청 좋다고 날뛰고, 힘들면 힘들어 죽겠다고 주변 사람 신경 안쓰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애를 만났다. 

페니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페니를 보면서 반대로 나를 비추어 보게 된다.

내가 저렇게 날뛰다가는 엄마한테 푼수라고 등짝 한대 맞을텐데.

갑자기 푼수가 되지 않으려고, 지금껏 이렇게 푼수 아닌 척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푼수스러우면, 그냥 그렇게 날뛰고 철없고 주책맞고 칠칠맞고, 그리고, 그렇게 재미있게 살면 될텐데. 왜 그렇게 인정받고 멋진 사람이 되려고 쿨한 척 하고 살았을까. 






다음날 오전, 언니를 따라 명상센터에 갔다가 점심먹고 나 혼자 요가 센터에 갔다.

명상을 한다고 앉긴 앉았는데, 온갖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비우기란 몹시 힘들었다. 

명상이라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꾸준히 나가고 있는 명상 수업은 흥미롭다. 

첫번째 수업에는 숨쉬기에 집중했는데 두번째 수업은 숨쉬기에 집중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는 연습을 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어지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나 혼자 고고하게 존재하는 느낌을 받는데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왜나하면 사람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다 함께 얽혀 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그물을 인지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세번째 날에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연습했다.

티베트 명상의 하이라이트인 코끼리와 원숭이 그림 설명도 들었다. 

Shamatha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코끼리 길들이기, 뭐 이런 책들로 소개도 되었었다.



코끼리는 우리 마음이고 코끼리를 이끄는 원숭이는 욕망 덩어리다. 

그림을 보면 불 길을 지나가면서 원숭이랑 코끼리가 하얗게 되고, 점점 코끼리가 원숭이를 이끌어가다가 토끼도 등에 앉히기도 하고 (토끼는 무기력을 상징한다고 한다) 결국 원숭이를 떼 버린다.

불은 원숭이를 길들이고 코끼리를 하얗게 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의미한다. 

각 단계마다 명상을 돕기 위한 세세한 설명이 있다.



오히려 오후에 가서 연습한 요가 센터에서 머리가 텅 비는 경험을 맛보았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진 건 아니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딴 생각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쉬탕가 요가 기본 동작들을 따라 했는데, 핫요가가 아닌데도 땀이 나고 (에어컨이 없으니 핫요가 인가) 

동작 하나하나들을 길게 유지하다 보니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에 모든 집중을 쏟게 되었다. 숨 쉬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것.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스쿠버 다이빙을 배울때. 

코로 숨이 안쉬어 진다는 공포,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공포, 새로운 것에 대한 공포, 이런 나의 무의식중에 있는 공포를 누르기 위해 호흡기을 입에 물고 물 속에서 입으로 숨쉬는 것에만 집중한다. 

물 속에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오직 내가 숨쉬는 소리만 들린다. 들이 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그렇게 숨쉬기에 집중해 있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침착해진다. 

그런 느낌을, 요가하면서 받았다. 

주변 세상의 소음이 차단되고, 헉헉대는(?) 내 숨소리만 들릴때. 



내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멀리 사라지고 모든 것은 지금, 현재, 여기서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대한 생각만 남을 때. 



지금껏 인천에서도, 서울에서도 요가/필라테스 수업들을 몇번 들어봤지만 항상 다이어트 용 요가들이었다.

한번도 진지하게 임해본 적이 없었다.

인도에 와서 처음으로 요가에 대해, 요가가 가진 명상의 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앞으로의 요가 수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지금껏 더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려고 

머릿속으로 온갖 복잡한 계산기를 두들기면서도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는 연습을 했는데

여기에 와서 내가 맞는지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오히려  반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 그리고 머리를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다시 한 단계 전으로 내려간 느낌이 아니라 한 단계 성숙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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