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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un 06. 2020

인도 아줌마들과 택시 여행_1

[인도-마날리]

시작은 게스트 하우스 주인 아줌마 사트나가 동네 아줌마들이랑 계(?)같은 걸 들어서 같이 주말 여행 갈건데, 페니와 나를 같이 가자고 꼬신 것부터였다.


나는 어차피 이후에 마날리를 거쳐 계속 북쪽으로 올라갈 예정이라 안 간다고 했는데 페니가 몸이 좀 나아지니까 제발 가자고 나에게 매달리고 사트나도 나를 푸시하면서 만약 안가면 영영 삐지겠다고 협박했다. 

그냥 강력하게 안간다고 마음을 정했어야 하는데,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나 자신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말았다.

결국 새벽 5시반에 일어나서 마날리행 택시를 탔다. 짐을 대충 싸서 며칠째 그칠 기미 없이 비가 쏟아지는 다람콧을 떠났다. 동네 아줌마들이랑 나 페니까지 합쳐서 총 14명이 차 2대로 가는데 자리가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 나는 또! 덩치가 작다는 이유로 맨 뒤에 구겨 앉혀졌다.


바이바이 다람콧의 소들




맥그로드 간지에서 마날리는 택시로 5-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혀서 오전 7시에 출발했는데 도착한건 저녁 6시였다. 거의 12시간을 길에서, 택시 안에서 보냈다. 잠도 못자고 비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12시간동안 달렸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같다. 사실 km로만 따지면 4시간이면 갈 길인데 길이 곧지도 않고(모든 산을 다 오르락 내리락 한다.) 거의 1차선 길이다. 반대편에서 큰 버스나 트럭이 오면 멈춰서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버스나 트럭 뒤로 차들이 줄줄이 따라 온다는 거다. 우리 운전기사 아저씨는 버스가 지나가면 길 옆으로 차를 대고 아예 시동을 끄고 차들이 다 지나가길 기다렸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창밖이 보이지도 않았고, 아줌마 두명은 멀미를 해서 토도 두세번이나 했다. 내가 멀미 안하는 몸을 타고났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구불구불한 길 코너를 돌때마다 뭐가 나올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거울 같은 것도 없어서 맞은편에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경적을 빠앙~~~하고 울리면서 코너를 돈다. 그래서 차들이 경적을 계속 울리면서 다니는 거였다. 


큰 트럭 뒤에는 '경적 울리지 마시오'가 아닌 '경적을 울리시오' 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미친듯이 화려한 인도 트럭 (출처 구글)


일차선인 다리를 만날 때마다 멈춰서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사고 난 차도 두번이나 봐서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나 너무 목숨 내놓고 여행 다니는 건가. 안전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후진국 여행은 비추다. 덜컹덜컹 울렁울렁 꼬불꼬불한 길을 곡예하듯이 달리니 어느 순간 놀이기구같이 느껴진다. 요즘도 아주 가끔 놀이공원을 갈때가 있는데 인공적으로 만든 놀이기구들이 애들 장난같이 썰렁하고 시시하다. 하긴 진짜 목숨걸고 타는 라이드랑 어떻게 놀이기구가 비교가 되겠어. 


중간에 종종 쉬고, 타이어 바람도 넣고, 타이어 터져서 타이어도 갈고, 그러면서 12시간이나 걸려서 마날리에 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바깥 구경도 나름 재미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길들, 다랑이 논밭들, 곳곳에 색색깔로 박혀있는 집들, 택시에서 내내 흘러 나오는 인도 뽕짝  노래, 종종 나오는 차밭, 길옆을 지나가는 동물들. 염소떼를 몰고가는 목동, 어슬렁거리는 소들과 양들, 여우같은 야생동물까지.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3km나 되는 긴 터널을 뚫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흙탕물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흐르는 비아스 강이 나올 때쯤 페니가 거의 죽으려고 했고 우리는 깔리 사원에 도착했다. 

아줌마들이 있어서 우린 같이 사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힌두승려가 이마에 주황색 뭘 찍어줬고, 설탕과자도 줬다. 


인도 아줌마들의 여행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사원구경과 쇼핑이다. 페니와 나는 거기를 끌려다니면서 돈을 뜯기고 사기 당한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처음에 출발할때는 총 일인당 1000루피 이렇게 들거라더니 막상 출발하고 나니까 택시비만 인당 2000루피 숙소비따로, 밥값따로...막 이런 소리를 해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와 같이 가고 싶어서 가자고 한게 아니라 돈 더 나누려고 가자고 한거다. 5시간 걸린다더니 12시간 걸리고, 다람콧 떠나면 비도 안온다더니 여행하는 3일내내 비가 와서 정말 최악이었다.  와 이렇게 사기를 치네.

 


뉴마날리는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이 놀러와서 묵는 곳으로 관광객 천지였다. 날씨가 그래서인지 인도도 대부분 밤 늦게까지 가게문을 열고 활동한다. 7시에 도착했는데 저녁밥을 10시에 먹는다고 했다.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옥수수 하나 먹고 왔는데 너무 배고프고 음식도 안맞는다. 페니는 옆에서 끊임없이 징징대고 나는 이 3일을 어떻게 버티고 돌아갈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저녁 먹을 때까지 뉴마날리 구경하고 쇼핑하고 다녔다. 

심지어 과일가게에서 리치 샀는데 여기서도 사기 당했다. 어쩐지 나한테 리치 팔던 애가 계속 낄낄 웃더라니. 왜 웃냐고 하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랬다. 뒤돌아서서 리치 먹어보니까 이렇고 시고 맛없는 덜익은 리치는 처음 먹어본다. 그것도 더블로 값을 부른것 같다. 기분이 심히 나빠졌다. 점점 인도사람들이 사기꾼들로 보이기 시작한다. 

어디서 난 한국어 조끼를 입고 있는 아저씨


사트나의 시동생이 운영한다는 숙소로 돌아와서 식사가 뭔지 보니까 완전 허접한 인도식 백반을 대충 먹는게 아닌가. 입맛도 없고, 맛도 없고, 불편하고 해서 먹는둥 마는 둥 하고 그냥 잤다. 단체 움직이는데 대체 뭘 하는지 몇시에 어딜 가는지도 안알려 준다.



 아침은 사트나 동생 집 (인도 현지인 집)에 가서 대접 받았는데 진짜 인도 중산층(?)사람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가볼 수 있었다. (차마 사진은 찍지 못했다)

큰이모가 왜 인도가 싫다고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런 가난한 상황에서 큰이모 세대는 겨우 벗어났는데 뭐하러 그걸 다시 경험하고 싶겠어.


뉴마날리에서 올드 마날리로 올라가서 구경하고 바쉬싯에 들러서 온천을 구경했다. 나는 다시 올 곳들이라 미리 구경해본다고 마음을 편히 가지기로 했다.



.





아줌마들이 리프트를 타고 싶대서 500루피나 내고 비오고 경치도 안보이는데 굳이 산으로 리프트를 타러 갔다. 한국에서 온 나는 남산 케이블카 같은게 뭐가 신기한가 했는데 인도 아줌마들한테는 그냥 이걸 타는 자체가 신기하고 행복하고 좋은 거였다. 





아줌마들 무리 중 25살인 젊은 엄마가 있었다. 벌써 애가 둘이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찬찬히 보니 덩치는 크지만 진짜 어려보이고 순진해 보인다. 이야기를 좀 했는데 이 여행도 재미없고, 애 키우는 것도 재미없고 모든게 재미 없다고 했다. 그래도 돈버는 일은 하기 싫고 그래서 집에서 애를 보는게 낫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나보다 어린 이 친구에게 있어 주어진 최대한의 자유는 아이를 맡기고 이 늙은 아줌마들과 함께 주말에 12시간 넘게 차를 타고 겨우 마날리나 왔다가 가는 거다. 


결혼도 부모님이 정해준대로, 해야 하니까 하고. 아들 낳아야 하니까 딸 하나 낳고 아들까지 하나 낳았고, 재미 없어도 살아야 하니까 살고 그렇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 세대가 젊었을 때 이랬을까. 

할머니의 딸들은 할머니보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게 되었고 그 딸의 딸인 나는 이제 인생에서 훨씬 많은 선택지를 가지게 되어서 이렇게 인도를 여행하고 있다. 나에게 이러한 선택지가 주어지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아주 긴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있었던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이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써야지. 내가 받은 만큼 나도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삶과 더 큰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더 자유로운 선택,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다양한 삶속에서 더 다양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다.



 



리프트 타고 내려와서 택시타고 가다가 중간에 또 멈춰서 자기들끼리 우루루 내려서 어디론가 갔다. 그런데 대체 여긴 어딘지, 왜 멈춘건지, 화장실 간건지 물어봐도 말도 안해주고 어, 화장실 가 이러고 나서 사라진다. 

정말 답답하다. 몇시에 다시 만나는지 어디서 밥을 먹는건지 설명을 해줘야 할거 아냐! 페니는 자기는 모르겠고, 참치 샌드위치나 먹을거라고 가버리고 나는 점점 열이 받기 시작했다. 하긴 그래도 우리를 놓고 가진 않겠지. 



내가 초조하게 아줌마들을 찾아냈더니 근처 식당에서 밥먹고 있다. 자기들은 여기서 밥먹을 거라고 너 알아서 이러는데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냥 아줌마들이랑 맘편히 밥 먹고 싶었다. 그런데 페니는 페니대로 내가 챙겨야 하고 (같이 안다니면 삐지니까). 기껏 자기 생각해서 페니한테 다시 왔더니, 나보고 그 사람들도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하니까 우리도 그냥 우리 하고 싶은대로 하자 그러면서 한국인은 시간과 스케줄에 집착한다고 내가 너무 타이트 하다는게 아닌가!


내가 지금 잘못 한거야?! 내가 한국인이라 혼자 열받는거야? 단체 여행하면 당연히 서로 지켜야 하는 게 있는게 아닌가? 지금 내가 누구땜에 더 짜증나는데 나보고 뭐? tight?? strict??!! 거기서 확 소리질렀어야 하는건데. 또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는 나는 여기서 얼굴 붉히면 가는 내내 어색하다, 가서도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데 어색하다, 우리 둘만 붙어있는데 어색하다, 그러니까 참았다.

대신 나도 나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까페에 가버렸다. 

Naggar 라는 까페였다. 



우리는 언덕 위쪽에 있었고 까페 통창 밑으로 비구름이 내려앉은 산 전체가 보였다. 

나중에 보니 유명한 치즈케잌으로 까페였다. 

항상 뭔가를 하는게 안하는 것보다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처음으로 어떨때는 하지 않는게 할 때보다 나을 때도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냥 나 자신의 결정을 믿고 따라야 했었다.

괜히 남의 소리에 흔들렸다가 오히려 더 큰 후회가 남는다. 

이렇게 온갖 고생과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더 믿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차 속에서 죽도록 고생했던 느낌은 머나먼 기억의 심연으로으로 가라앉고  까페에 앉아서 부슬비가 내리는 창밖을 구경했었던 그 기억만 내게 반짝거리는 보석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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