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정도 정이었음을
지난 월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그 소식 들었냐는 메시지와 함께 끔찍한 소식을 마주했다.
터키/시리아 에서 강진이 발생해 수천명이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팀에서도 함께 일하는 터키/중동 팀과 연락을 취해보느라 정신 없었고, 우리 조직에도 터키/중동 오피스가 있기에 상황 파악을 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한다고 메일과 메신저가 딩동딩동 울려댔다.
차마 뉴스와 유튜브 영상들을 클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폐허가 되었는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재난의 규모가 너무도 크다.
하긴, 항상 세계 어디에선가 무슨 일, 특히나 끔찍한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나름 여러나라 출신 친구들이 많이 있으면, 이곳 저곳을 많이 방문하고 나면, 안 좋은 점이 있다.
그런 끔찍한 일들이 개인적인 일이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고, 실제 상황을 직접 당사자에게 들으며 마치 나의 일처럼 걱정하게 된다. 내 친구의 일이니까.
영어식대로 표현하자면 , 그 재난에 실제 '얼굴'을 대입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키이우에 가족이 있는 친구 이야기이고, 얼마전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홍수는 오클랜드에 사는 친구 이야기이다. 텍사스에서 전기가 끊겼다고 하면 거기 사는 친구를 걱정하고, 서울에서 참사났다고 하면 한국 지인들에게 문자를 돌린다.
터키에서 일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몇명이나 되는 터키 출신 친구들이 생각났다. 다들 무사하려나, 그들의 가족들은 무사하려나. 그래도 그들 대부분은 터키가 아닌 타국에 있어서 마음이 놓였는데, 한 명이 마음에 걸렸다. 몇달 전 까지만 해도 함께 석사 과정을 듣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방학이 시작하자 마자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있고, 그래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친구가 터키에 있다는 건 아는데, 이스탄불 출신이고 가족들도 다 대도시에 있어서 에이, 설마 하는 생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매번, 내가 친구들의 안위를 확인할 때마다 운 좋게도 심각한 상황이 없었기에 나는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이 친구는 지난 여름에 내가 손절한 친구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는 척하면서 안부를 묻기도 어색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월요일 오전, 스쳐지나간 생각으로만 남았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갑자기 다른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나의 터키 친구가, 이번 지진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장난을 치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의 터키 친구는 인턴십을 하기 위해 난민 지원 센터에 가 있었고, 그 곳에서 머무른 호텔이 이번 지진에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그 호텔은 지어진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신식 호텔이었는데, 내진 설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터키 친구는 시신이 확인되어 뉴스에 신원 확인자 프로필이 뜨게 되었다.
터키에서 법학공부를 하고 로펌에서 일하다가 네덜란드로 석사 유학후 다시 귀국한 내 친구는 그렇게 순식간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리 학과의 터키 출신 교수님이 그 친구의 학사 학위 교수님과 링크드인으로 아는 사이인데, 그를 통해서 사고 소식을 알게 되었고, 우리 학과에 전달이 되었고, 함께 석사 수학한 동문들에게 전달이 된 것이다.
만약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영영 그 친구의 소식을 몰랐을 수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그 친구가 벌써 이 세상을 뜬지도 모르고, 걔는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하면서 떠들고 다녔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석사 초반부터 함께 친해진 친구들 중 하나여서 다 같이 우리 집에도 여러번 놀러 오고, 내가 밥도 해주고, 같이 춤도 추고, 파티도 하고, 그랬었는데. 같이 공부하면서는 팀 프로젝트도 같이 하고, 페이퍼도 같이 쓰고, 게임하면서 서로의 비밀도 알게 된, 그렇게 나름 친해진 사이였다.
물론 다 같이 어울릴때는 잘 지냈지만, 나는 그 친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껄끄럽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보통 성격내기가 아니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정말 '쎈' 성격이라고나 할까.
법학과 출신답게 엄청 똑똑하고 말도 잘하는데다가 자신이 맞다는 확신이 굉장히 강한 친구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친구들과도 멀어져갔다. 맨 마지막에는 그 친구와 함께 살았던 친구가 크게 싸우고 모두가 실망하게 되면서 그 친구는 모두와 손절한 것이 다름없이 되어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걔가 어떻게 그렇수가 있냐, 하면서 우리 그런 애 잊자, 라고 했었는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이러네 저러네 했어도, 나는 그 친구를 '싫어한 거'였지, '증오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직 25살밖에 안된 앞길이 창창하고, 똑똑하고, 잘난체 하는 젊은이를 '싫어할' 날이, 나에게는 많이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죽음은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뚜렷하게 알게 해 준다. 그리고 언제나 따라오는 후회.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잘해줄걸.
그 친구의 태도, 자세, 말투, 행동, 아직까지 다 생생하게 떠오른다.
떠오를 수록 내가 손절한 이유도 잘 알겠다.
하지만 손절하더라도, 그래도 이렇게 네가 빨리 사라질 것을 알았다면 조금 더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그 친구의 잘못은 죽음에 비하면 너무도 쉽게 용서할 수 있는 하찮은 것인데.
누군가를 미워하기에는, 우리 사랑할 날도 부족하다는 말이 오늘따라 마음 깊이 박힌다.
차라리 친했더라면 나는 마음껏 슬퍼할 테고, 차라리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했다면 나는 마음껏 기뻐할텐데, 미운 정이 든 친구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한다니 이건 이것대로 마음이 아프네.
이번 지진으로 그 친구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상도 못하던 시간에, 상상도 못하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아니 지금도,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던, 그리고 싫어하던 사람들을 예상치 못하게 잃고 슬퍼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참으로 운이 좋아서 정말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한 적이 없지만, 얼마나 황망할까. 그리고 과연 나의 죽음은 과연 얼마나 멀리 있을 것인가.
다시 한 번, 사랑할 시간도 부족하다.
더 열심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삶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