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다람콧] 나에게 좋은 시간을 보냈냐고 묻는다면
다람콧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은 처음부터 '이게 뭐야'였다.
우선 팀장부터 무슨 40살 먹은 인도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27살이었다. 오마이갓. 정말...?
두번째로 분명 10명 이상 큰 팀이었는데 다 취소하고 나랑 페니가 참가자 둘이었다.
거기다 학교에서 봉사활동 한대며. 학교는 문 닫았다.
뭐지..?
숙소 주인이든 팀장이든 뭔가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돈만 밝히는 느낌이라 심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다른 팀이 숙소로 왔는데, 보니까 이 팀장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이따위인 것 같았다.
다른 팀은 사람도 많고 다른 학교 가서 정말 봉사활동다운 봉사활동을 하는 느낌인데 우리는 뭐 그냥 방치 상태였다. 그 팀을 보니까 우리 팀이 더 비교가 되고 나는 더 열이 받았다. 이게 뭔 짓이여.
지금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워캠측에 강력하게 항의했어야 하는데 항의도 안했다.
내가 그렇게 호구다.
다른 팀에 나보다 어린 한국인 여자애가 한명 있었는데, 이야기도 조금 나누고 나중에 피자도 같이 먹으러 갔다. 개량한복을 입고 봉사활동을 왔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나랑 페니 둘만 있어서 그나마 둘이 짝짜꿍이 맞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맞지 않았다. 페니는 완전 어렸고(고등학교 막 졸업), 무지 징징거렸고, 이기적이었고, 100% 프랑스인이었고(프랑스 교환학생 경험으로 프랑스인의 문화와 성향을 대략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 곁에서 어쩔줄 모르고 휘둘려 다니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아니 나 뿐아니라 아시아권 사람들이 서양권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대개 휘둘리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배려와 존중, '우리'와 '단체', '큰 그림'을 생각해야 한다고 배우니까. 하지만 반대 문화는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내세우기, 개인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화적인 측면도 큰 것 같다. 어찌됐든 페니와 같이 있을 때만 해도 나는 그래도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도 내가 언니니까 받아줘야지, 그래도 내가 챙겨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는게 문제다.
학교에 그림 그려 달라는 첫 일거리를 받았다.
아침도 무지 먹기 싫었지만 억지로 먹고, 일을 시작하기 전 페인트를 사러 나가야 한단다.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또 산을 넘어 하염없이 걸었다.
이 사람들은 여기 쳐박혀 살면서 이렇게 매일 왔다갔다 하는걸까.
건강에 좋을 것 같다.
나는, 죽을 것 같다.
페인트 사러 갔다 왔는데 오전이 다 지났고 이미 지쳐버렸다.
페인트 냄새도 토 나온다.
그림 그리는 것도 의미 없는 것만 같다.
비맞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빨래 해달라고 내놨는데 그게 아직 덜 마르기는 커녕 빨지도 않았다고 한다
옷이 하나도 없어서 반바지를 빌려 입었다.
빨래 공짜인줄 알았는데 다 해주고 나더니 돈도 받았다.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겠어.
페니랑 나랑 처음 봤는데 둘이 심지어 더블침대도 같이 썼다.
화장실에서는 엄청 큰 벌레가 나왔다.
둘다 잠 못들고 뒤척였다.
담요에서 나는 먼지 때문에 밤새 목이 붓고 알레르기가 나서 죽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때려치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지 않았던 이유는
인도에 갈때 이미 나는 기대도 높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을 만큼 여러번 크게 데였었기 때문이다.
미국만 가면 다 잘될거라는 생각은 가서 부딪히면서 깨졌고,
대학만 가면 성공할거라는 생각은 가서 학교 다니면서 깨졌고,
유럽에 가면 판타스틱할 거라는 생각은 가서 살면서 깨졌고,
배낭여행을 가면 꿈만 같을 거라는 생각은 가서 여행 다녀보면서 깨졌고,
취직만 되면 모든게 풀릴거라는 생각은 회사 다니면서 깨졌다.
세상에는 뭐든지 100% 환상적이고 어메이징한건 없더라.
그런건 상상속에나 기대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고
실제로는 무슨 흠이라도, 상상도 못했던 다른 면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겠지.
환상적이고 어메이징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어떤 상황에서더라도 이야, 그래도 이런 경험도 해보다니, 정말 대단하고 어이없고 웃기다! 라고 생각하는
태도에 달렸다.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도 100%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그 시간을 망쳐버리는 그 짓을
나도 많이 해봤고, 그런 사람들도 많이 봤다.
기대와 달라도 괜찮고, 좀 망쳐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서 이 시간을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게 보냈다면
완벽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여전히 이 시간을 환상적이고 어메이징한 시간이었다고 기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