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다

[인도-레]

by ClaraSue


날씨가 우기고 길이 막히고 어쨌다고 해서 못 올라가는 건가 하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는데 다행히 버스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 모자를 깜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지 얼마 안된 모자인데....이동할때마다 뭔가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 숄, 이어폰, 양말, 빨래줄, 우산. 그래도 지갑/여권 같은건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버스에 탄 사람들과 이틀동안 지내면서 레까지 가는거다. 현지인 여행자들(단체) 가 절반정도였고 나머지 10명 정도가 나같은 외국인 여행자였다.


외국인 여행자들 중에는 한국인 아주머니 2명도 있었는데 그 분들께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지 못했던 게 아직도 마음에 좀 걸린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은 너무나 반가운데, 그 두 분은 내가 피해 온 모든 것을 떠오르게 만들었다.(그 분들 탓이 아니다) 두분은 가이드 자유여행을 구매해서 오신 분들이신데 인도인 가이드가 숙소, 식당, 교통, 관광 다 처리를 해 준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자유배낭여행 느낌이 나는 가이드 여행이라니. 가장 골치아픈 부분들을 다 외주 주고 여행의 가장 좋은 부분 -생각없이 즐기기고 느끼기만 하는 부분-만 가질 수 있다니 참으로 편하다.

내가 그런 여행을 가고 싶다라기 보다는, 그런 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일이라면 내가 잘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분은 나이가 있으신 학교 일본어 선생님이셨고 한분은 회사에서 아주 일하다가 퇴직하신 싱글이셨다. 아줌마라고 하면 둘다 발끈하실 테지만, 어찌됐든 나에게는 두명의 아줌마였다.

나도 얼마 안있으면 아줌마 한명이 되겠지. 아니, 어쩌면 벌써 아줌마로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다 그 나이대가 되어 가는 거지. 그걸 인정할 수 없으면 요절할 수밖에...



반가워서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거겠지만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나의 선생님과 나의 상사가 생각났다. 나의 인생에 대해 묻고 - 어디 출신인지, 어디 학교 나왔는지, 무슨 공부를,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건지! - 나의 대답에 따른 자기의 생각 혹은 평가을 말한다. 잘 선택했다는 둥, 그래도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둥.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사람은 덜 불편해 하는 것 같고, 나이가 어린 사람은 더 불편해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게 되었다. 외국에까지 나와서 한국사람과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어쩌면 한국 커뮤니티 자체에서 느끼는 은근한 압박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다 이해할 것이다.

성적, 학교와 직장, 지위로 나라는 인간 자체를 평가받는 느낌,

나에 대한 신뢰보다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오지랖,

적령기에 대한 집착,

가족,사회,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까지.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밤에 텐트도 함께 썼다.

두명의 가이드역할을 하셨던 인도인 아저씨가 나를 엄청 반가워했는데 내가 통역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 다 음식도 입에 안맞고 멀미나 고산병도 와서 인도 여행이 힘드신것 같았다. 내가 나름 잘 다니는 건가 아니면 젊음인가.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어.






내 옆자리에는 유럽에서 온 나이 좀 있어보이는 언니가 앉았는데 나한테 말걸지 말라는 포스가 너무 강해서 나도 별로 말걸지 않았다. 나중에는 조금 이야기를 했는데 독일 사람이고, 델리에 살고 있고 지금 표정이 안 좋은건 버스 여행이 너무 힘들다는 거다. 마날리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더 친절하게 인사라도 잘 하고 챙겨줄걸.

왜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그렇게 예민하고 날카로웠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존감도 낮았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내 스스로가 나를 믿지 못했고 인정하지도 못해서 혹시 남이 그걸 알아채고 나를 무시할까봐 전전긍긍했고,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닌 척, 쎈 척도 엄청 한 것 같다.

악순환이었다. 그럴 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는 더욱 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으니까.

동시에 이런 못난 나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돌봐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 주길 바랬다. 정작 나 자신은 나를 싫어했으면서.




그때 나는 성장통을 심하게 앓았고, 그래서 아프고 분노했는데 대체 뭐가 왜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행복하지 않긴 한데 대체 왜 행복하지 않은 건지 몰랐다.

내가 나를 바라보면 외적인 부분이나 내면적인 부분이나 온통 단점만 보였다.

남들한테 이야기해봤자 다들 이해하지 못했고, (그 정도면 충분한것 같은데 너는 뭐가 문제야?)

나 스스로도 대체 왜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건지 이해가 안됐고,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온통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질문, 질문들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내가 퇴사한다면,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 본다면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다음의 미래는 괜찮은 걸까? 라는 질문까지! 질문만 넘치고 답은 없었다.



인도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신 알게 된 것은 모든 사람은 다 그렇게 느낀다는 것. 당연한 것이니 그러니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나의 방황과 시행착오들은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는 것.

그리고 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사실.



돌아보면 풋내기 여행자였던 나를 그 와중에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노르웨이에서 온 줄리 커플.

둘다 영어를 너무 잘해서 처음에는 미국인인줄 알았는데 둘만은 다른 말로 이야기 하길래 어디 사람일까 궁금했었다. 줄리는 북유럽 사람이기라고 하기에는 아시안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엄마가 일본인이라고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또 한국계라고. 재일 한국인인가 싶다.

혼혈이라 정말 분위기 있게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성격은 더 좋다. 커플이 둘 다 성격이 정말 좋았다!

여행중에 만난 커플은 조금 부담스러워서 쭈뼛쭈뼛하는 나를 마치 동생 챙기듯 잘 챙겨줬다.


알고보니 각자 또 같이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줄리는 노르웨이 여행잡지에서 일하고 남편은 NGO에서 일하는데 전세계를 누비며 일하고 있다. 둘이 이렇게 여행할때는 룰이 있는데 각자10kg 안 넘는 작은 배낭만 메고 다니기(너무 무거우면 힘들어서 짜증나니까, 각자 짐은 각자 알아서 책임진다), 과도한 애정표현 하지 않기,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 있으면 무조건 영어 쓰기.


줄리 커플 말고도 두 커플이 더 있었다. 한 커플은 미친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프랑스 노부부였고 한 커플은 딱 봐도 자유영혼으로 보이는 칠레에서 온 커플이었다. 칠레 커플은 진짜 히피란 이런 사람들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너무나 여유롭고 편해 보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편하게 만들어 준다. 벽이 없다.

이 커플도 여행 베테랑 커플인데 줄리 커플이나 칠레 커플이나 애정표현을 막 하지 않는데도 든든하고 편안한 동지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아 부러워! 나도 언제 나와 함께 여행 다닐 수 있는 동지를 만나게 될까! 인도여행을 함께 하면 서로 끝장을 보고 깨지거나 혹은 완전 돈독해진다는데 과연 누가 나와 인도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을까?



마날리를 출발한 버스는 로탕 패스라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높은 길로 올라갔다.

안개가 너무 짙어 그야말로 한치 앞도 안보였다. 갑자기 맞은편에 확 트럭이 나타나고 그런다.

로탕 패스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꼭대기에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대체 왜 내리라고 한건지도 몰랐다.

인도 애들은 만년설 위에서 사진찍고 놀고 난리 났다. 안개껴서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뭐하는 거야 빨리 가지하고 나는 또 투덜댔다.




그런데 서서히 버스가 언덕을 내려오는 도중에 갑자기 안개가 확 걷히면서 히말라야 설산의 모습이 창밖으로 나타났다. 버스 전체에 감탄사가 퍼졌다.



나도 모르게 그 장관을 보고 눈물이 왈칵 났다.

사람들이 정말 멋진 걸 보면 눈물이 난다고 해서 무슨 감성 폭발하는 소리냐고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내가, 그런 경험을 했다. 모든 인간의 안에는 신성함이 깃들여 있다고 했다.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까마득하게 잊고 있지만 그래서 장엄하고 위대하고 신성한 것을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고 했다. 로탕패스에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을 보면서 '아, 내가 이걸 보러, 이 멀리까지, 이 고생을 하면서 왔구나' 깨달았다. 이렇게 크고 웅장한 대자연은 처음이다. 인도에서 겪었던 다른 모든 힘든 순간들도 이해가 됐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던 건지 눈이 확 트였다.


북인도에도 히말라야 산맥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이 무식장이가, 여기까지 와서 히말라야를 따라 올라가고 있다. 나이트 버스를 안타고 데이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레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정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니까. 레로 가는 길은 눈이나 비로 산사태가 나 수시로 막힌다. 운 나쁘면 가다가 길이 치워질 때까지 밥도 못먹고 버티고 있어야 하는 상황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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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큰 산들이 있다니. 그리고 그 밑에서 인간은 얼마나 하잘것 없고 작은 존재인건지.이런 산맥 아래 사는 사람들은 종교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신이시여..'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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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깰람 숙소에 오후 4시에 도착해 쉬다가 저녁을 먹고 호텔 앞에 쳐진 텐트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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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비에 숙박비도 다 포함되어 있다. 텐트 안에 야전 침대가 서너개쯤 준비되어 있는데 아주 오랫만에 캠핑하는 느낌이었다. 저녁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인도인 애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남인도에서 여행 온 무리였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특히 정치와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했다.

인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쟁이 정말 치열하다고 한다.

의사만 해도 숫자가 너무 많고 저소득층이 많아 수입도 적고, 취직이 힘들고, 그 와중에 펀잡이라고, 무슬림이라고, 힌디라고 서로서로 싫어하고 편 가르고, 어딜 가나 다 그렇구나 사람 사는 사회가.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짜이 한잔 마시고 출발했다. 여전히 하늘에 닿아있는 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경이로웠지만 이틀째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 구경만 하다 보니 너무 피곤해져서 잠 못자는 내가 조금 졸았다. 다행이 어제 오늘 날씨는 굉장히 좋다. 칠레 커플도 정말 많은 멋진 풍경들을 보았는데 이번 여행길은 힘들지만 손꼽히는 풍광이라고 했다. amazing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그 웅장함이 표현이 되지 않아서 그냥 나 혼자 최대한 감상하기로 했다.

중간에 버스 기사 아저씨가 옆자리에도 앉혀줘서 맨 앞자리에서 풍경들을 영화보듯 감상하면서 갔다.

그래도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버스를 타고 가니 다들 지쳐서 죽을 맛이었다.

1박 2일간 버스여행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은 여정이 끝날때쯤 동지애같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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