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 레]
밤늦게 레에 도착해서 줄리 커플이랑 칠레 커플이랑 숙소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 줄리네가 어떤 티벳 아저씨네 숙소를 잡아 주었다. 일인용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나에게 양보하고 두 커플은 다른 숙소로 갔다. 난 그저 감사할 따름 이었다. 두 커플도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고 다같이 맥주 마시러 나왔는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술을 안 판다는 거다. 피자 시켜 먹고 수다 떨고 있으려니 주인 아저씨가 경찰 순시가 끝났다고 맥주를 팔 테지만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는 말라고 했다.
다음날 버스표, 투어 등을 알아보고 다녔다.
판공초 가려면 퍼밋까지 받아야 하는데 퍼밋 비용만 600루피고, 스리나가르 가는 길은 막혔고, 오늘 와이파이도 안된다. 난리 법석이군.
우선 판공초랑 누브라 밸리 트랙킹을 갈까 생각했다.
레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서 줄리 커플과 헤어지기로 했다. 둘은 시간이 없어서 바로 택시 타고 스리나가르로 이동한다고. 아쉬웠지만 작별인사.
kc에서 뗌뚝 먹고 있는데 다른 여행자들을 만났다. 티벳 출신 미국인인 텐진 그리고 다른 미국인 여행자 둘 레니와 존. 텐진은 첨 봤을 때 일본사람인가 했는데 텐진도 나 보고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고 해서 서로 웃었다.
존이 엄마랑 연락해야 된다고 와이파이가 안터지는 것에 대해 걱정해서 내가 마마보이냐고 놀렸는데, 엄마가 걱정이 많다고 현지 애들이 미국인이라고 접근해서 강도 당하고 그럴까봐 걱정한다고 했다. 남자도 여행할때 걱정을 하는구나. 하긴 남자든 여자든 잘못 걸리면 털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첫째날은 이때 만난 친구들과 레 구경을 다녔다.
예전에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라다크가 어떻게 '문명화' 되어 가는지에 대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내가 라다크에 갈 거라는 상상은 해본적 조차 없었다! 그런데 내가 라다크에 와 있다니.고원지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높은 산맥이 어딜 보나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폭우가 쏟아져서 허둥지둥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드디어 대망의 판공초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냥 가면 되는 줄 알았지 그렇게 판공초 가는 길이 멀고 힘든 줄 몰랐다.
풍경은 좋았지만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때 힘들었던 건 지금까지 생각난다.
다행히 날씨는 엄청 좋아서 실제 파란 호수를 만났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내가 판공초에 오다니.
호수 이쪽은 인도 땅이지만 70%는 은 중국 땅(티벳 땅) 이라고 한다. 국경 지대라 서로 분쟁도 일어난다.
세 얼간이에서 판공초를 보았을 때, 3가지 감정이었다.
멋지다, 세상에 저런 곳이 있다니.
두번째로 언젠간 나도 꼭 가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에이, 내가 어떻게 저 곳을 가보겠어.
대체 언제. 어떻게. 돈도 시간도 없는 내가 저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말도 안돼. 꿈일 뿐이야.
허황된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하고 갈 곳으로 판공초를 떠올렸다.
그렇게 가보고 싶으면 가보자고. 생각만 하지 말고 가면 되지.
용기를 냈다. 이왕 퇴사라는 용기를 낸거,
용기 내서 생각만 하던 것들 해 보자고.
어떤 일을 하려면 항상 안되는 이유가 따라온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다 핑계일 뿐이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나이키 로고처럼, 저스트 두잇.
그리고 나는 정말로 이곳에 왔다.
판공초는 상상한 것 그대로 처럼 멋있었고 새파란 물은 비현실적이었지만,
실제 물 맛은 조금 짜고 이상했다.
말 그대로 호수를 바라보고 별을 보는 일밖에 할 일이 없는 아주아주 조용한 곳이다.
판공초에 오고 나서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은 이렇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한편으로 목적 달성의 허무함도 배웠다.
그 곳에 가기까지 무지 힘들었다.
한국에서 인도까지 와서 개고생 했고, 델리에서 맥간으로, 맥간에서 마날리 레까지 환상적이지만 길고 길었던 여정을 거쳤다. 그래서 판공초에 왔는데,
여기서 레전드 샷을 찍었다고 내가 갑자기 sns스타가 된것도 아니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것을 이룩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풀린 것도 아니고 내 앞에는 여전히 돌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소설이나 게임에서는 이렇게 목표를 달성하면 그게 아름다운 엔딩이 되던데.
실제로 삶은 목표 달성이 곧 엔딩이 아니더라고.
내 엔딩은 죽을때 엔딩인거지, 목표를 달성하면 그 뿐, 그저 새로운 챕터의 시작일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거기 가서 호수 한번 보고 사진찍고 오는건데 왜 가냐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나는 판공초에 가서 고민하던 답은 찾을 것도 아니고
목표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을 얻은 것도 아니다(그러기에는 고생한 댓가가 너무 컸다)
하지만 그때 그 곳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던 파란 호수, 공기중의 냄새, 바람 소리, 압도적인 산맥, 먼지가 일던 흙길의 느낌은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그 순간을 수집했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다니는 지도. 그 순간의 느낌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 같은 기억들.
내가 찾던 답은, 삶의 지혜와 행복은 판공초가 아니라 판공초까지 가던 길, 그리고 판공초에서 내려와 또 다른 곳을 가는 그 길들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