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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Nov 10. 2021

언제 네덜란드 캠핑장에서 살아보겠어

[2021. 9월 둘째주]


새학기가 시작하면서 외국인 학생들  문제가 네덜란드 국가 문제로 부상했다.

여기저기서 시위를 하고

결국 노숙하거나 텐트치고 자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학교에서도 뭐라도 해야 하긴 하니, 결국 숙소 임대를 계약해서 임시 숙소에 거주할 사람을 모집했다.

이메일을 보고 다급한 마음에 (호스텔, 호텔, 에어비앤비도 다 찼다.) 얼른 들어가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일주일간 예약한 호텔을 체크아웃함과 동시에 임시 숙소 체크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따지고 보면 딱히 할인을 많이 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한달 반 동안 살 곳이 생겼다는게 감사한 거지 뭐.


문제는 이 숙소가, 시내에 있는게 아니라

교외에 위치한 Beeks Bergin 이라는 할리데이 파크 안의 오두막이라는 것이다!




단것 쓴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 덥석 신청 하고, 택시 타고 할리데이 파크 리셉션까진 갔는데,

갑자기 리셉션에서 지도를 주면서 숙소 위치를 표시해 준다.

파크 안에는 거의 잠실 석촌호수 급 호수가 있다.

그리고... 숙소는 그 호수 건너편에 있었다.



나보고 양손에 이민가방을 끌고 거의 30분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라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갈수록 태산이다!



결국 파크 내 코끼리 열차(?)같은 것을 두번이나 갈아 타고,

지나가는 직원 골프카트까지 붙잡아서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더블베드 하나가 간신히 들어가는 방 하나가 1인실이었고 벙커베드가 있는 방이 2인실이었다.



다행히 운 좋게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더블베드가 있는 1인실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돈 내고 이 집에 3명이 산다는 건 바가지 요금이다.


그래도 도착했다는 마음에,

뜨뜻한 샤워를 마치고 전자렌지에 햇반도 돌려 먹었다.

전자렌지가, 냉장고가, 가스렌지가 어찌나 반갑던지!



밥을 먹으면서  남들은 이런 챌린지따위 하지 않고

이런 챌린지를 최대한 피하고 (챌린지라 쓰고 고생이라 읽는다) 안정적인 삶을 찾으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푸시하는가.

무엇을 하겠다고.

무엇을 더 이루려고. 무엇을 더 얻을려고. 무엇을 더 배우려고.



그래도 코로나때문에 집에서 2년간 거의 챌린지 없이 참으로 심심하고도 무난하게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변화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 겪고 있다는 기분.

여기서는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수다 떨 이야깃 거리들이 생긴다.


언제 이렇게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됐지?



셋이 들어와야 하는데 한명만 체크인 했다.

Eva는 아일랜드 출신인데 어차피 수업이 한달 반 남고, 그 후에 인턴십이 정해져 있어

그냥 임시 숙소에서만 머무르다 집으로 돌아갈거라고 한다.

나름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밥도 같이 해 먹는다.



인간적으로 시내랑 너무 멀어서 장 본 것을 이고 지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것 조차 너무나 힘들다.

학교까지 자전거로 편도 40분 넘게 걸리는데,

그렇게 왔다갔다 하고 나면 땀에 흠뻑 젖어서

집에 오면 샤워하고, 밥먹고, 학교 과제 좀 하다가 자게 된다.

반 강제로 규칙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몸이 힘드니까 정신이 덜 힘든것도 같다.

거의 기계적으로 페달을 밟으면서 잡념이 사라진다.


특히 아침에 호수에 물안개가 펼쳐질 때,

저녁에 호수 너머로 노을이 질 때,

한밤중에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볼 때.


여전히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걸 잊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캠핑을 즐긴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에도 캠핑장에는 사람들이 꽤 있다.

가족들과 놀러와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럼기도 하고.




그동안 여행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정말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 받느라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는 것이

돌아보면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집을 구하는데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다간,

나중에 지금을 돌아봤을 때,

내가 살다 살다 holiday park에서도 살아봤었는데.

그때  나도 캠핑   같고 호수도 가까워서 매일 백조  구경하고 그랬는데.

왜 그때 조금 더 그 상황을 누리지 못했는지

미래의 나는 

참으로 안타까워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가 안타까워하지 않도록 최대한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햇볕이 쨍한 날에 의자 꺼내 놓고 공원에서 책 읽듯이 학교 과제 하고,

호숫가로 산책도 나갔다.


이런 집들도 있다



다행히도 날씨가 좋은 편이라 아직 한번도 쏟아지는 비를 뜷고 학교에 가야 했던 적은 없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있는데 그냥 방수 바람막이 쓰고 다닌다.

자전거 바지 따위도 안입고 그냥 딱딱한 안장에 앉아서 다니니까

가랑이가 찢어질것 같았는데 이제 굳은살이 박혔는지(?) 점점 덜 아프다.


본격적인 네덜란드인이 되어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시작은 대개 고생스럽다,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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