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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Nov 11. 2021

네덜란드에서 집 구하기

[9월 셋째주]

드디어 나에게도 그 때가 왔나보다.

나도, 정착하고 싶다.

나의 집, 나만의 공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나라도 정하지 못한 마당에,

지금까지 어딘가에 집을 사서 정착한다는 욕심이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돌아갈 나의 집(정확히 말하면 엄마 아빠 집)이 있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했을 수도 있겠다.


대신 어디든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향, 벽에 걸 수 있는 천, 사진과 엽서들, 나의 인형.

문제는 호텔방이든 다락방이든 '나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 네덜란드 사태를 겪으며 나에게, 아니 인간에게 '집'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얼마나 처절하게 느꼈는지,

이제 홈리스 이야기가 나오면 귀를 쫑긋하고 보고 듣고 읽게 된다.

'집'이 없는 인간은 기본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가 없다.




예전에 엄마가 처음으로 땅 몇평을 산 이야기를 하면서,

그게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구도 나를 내쫓지 않을 곳,

모든 것을 잃어도 텐트 치고라도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곳,

물가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 없이, 통장의 숫자가 아닌

내가 내 발 딛고 서있을 수 있는 나의 자산,

땅이 꺼지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현실적인 기반.

엄마와 달리 불안정한 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엄마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무데도 갈 곳이 없다,는 상황을 몇번 겪고 나서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명의로 된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드디어 네덜란드에서 내 명의의 집은 아니지만

기적처럼 일년간 살 곳을 구하게 되었다.



기적.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틸벅에 도착해서 처음 하우스 뷰잉을 갔다와서 엄마에게 기도가 필요하다고 전화했을 때,

정말 나는 기도 말고는 여기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몇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 스튜디오(원룸) 렌트하는 회사에 다이렉트로 신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청자, 대기자도 많을 뿐더러 선착순으로 뽑힐 때도 있고, 회원가입 오래 한 순서대로 뽑힐 때도 있고, 랜덤으로 뽑힐 수도 있어서 쉽지 않다.

나는 웨이팅 리스트에라도 올려주라고 열심히 독촉 이메일을 보내는 것밖에 못했다.


두번째로 부동산 통하는 건데,

이것도 일대일로 매물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매물 하나 보여주고,

신청자 있는대로 다 받아서 집주인에게 신청자 서류를 전달해 주면 집주인이 뽑는 방식이다.

무슨 근거로 집주인이 뽑는지는 알려주지도 않는다.

수수료 받는게 불법이라는데 수수료도 내놓으라고 한다.

수수료 내고서라도 집만 구해주라고 하고 있는데 여전히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세번째로 개인거래 웹사이트 통해서 거래 하는 건데,

무슨 회원가입 하는데도 돈 내라고 하고,

심지어 전화번호도 안 알려주고 집 주인한테 메세지만 보내라고 해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기 위험도 높고.

부동산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매물이 겹치도 답장도 잘 안온다.


네번째로 페이스북 그룹에서 사람들이 방 빼면서 다음 세입자 찾는 포스트를 노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도 워낙 경쟁자가 치열해서 무슨 방 하나 올라오면

댓글만 순식간에 50개가 넘게 달리고 실제 메시지나 이메일은 100개 넘게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네덜란드 사람만 구한다는 글이 50%나 된다.

치사하게...

대체 내 메세지가 읽히기나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은 매물이 페이스북에 보일때마다 혹시나 하며 메세지를 구구절절히 써서 보내봤다.

그리고 답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메시지 보낸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답장이 온 것이다!

나보고 내일 당장 하우스 뷰잉을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운 좋게 그 메시지도 거의 1분만에 확인해서 답장도 총알같이 보냈다.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괜히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하우스 메이트 뽑는 인터뷰에 거의 30명 가까이 초대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나 말고도 수십명이 와 있을까봐, 희망고문이 될까봐 걱정하면서 갔는데

의외로 티파티 같은 분위기였고 나 포함 두세명 뿐이었다.


각자 자기소개 하고, 궁금한 것 물어보고 훈훈한 시간을 나름 보내고 돌아서는데,

방은 너무나 마음에 들지만, 동시에 자신감이 가면 갈수록 사라졌다.

내가 너무 잘난척 했나? 너무 말이 많았나? 더 간절해 보일걸 그랬나?

얼마나 그 만남을 되새기면서 좌절했다가 이불킥했다가 기도했다가 애써 마음 접자 싶기도 했다가 그렇게 마음이 복잡했는지 모른다.



초조하게 메세지를 기다리다가 다음날 답을 받았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도저히 메시지를 열어볼 수가 없었다.

만약 미안하게 됐다고 하면 너무 좌절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망설이다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good news가 보인 순간 나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 하느님이 누구의 마음을 움직여 나를 선택되게 만드셨을까.

아니면 어떤 조상님이 월주신께 빌어 살짝 방향을 틀어 주신 걸까.(다음 웹툰 쌍갑포차 세계관)


감사한 마음은 정말 크다.

심지어 엘네 가족, 내 더치 친구들도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하지만 나는 운 뿐만 아니라 나의 스토리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내가 20대를 헛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항상, 내 이력서에 제대로 쓸 수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채운다고 보낸 시간이

사실 별 볼일 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었을까 불안했다.

그 시간에 한 우물을 파면서 나의 ‘커리어’를 쌓았어야 했던게 아닐까.


그런데 나의 그 ‘스토리’ 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긴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그래서 100개가 넘는 이야기 중에 내 이야기를 골랐고,

나를 만나고자 했고,

그리고 나를 같이 살고 싶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었다.

물론 뽑히지 않았다고 해서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건 아니었을 거지만,

다시 한번 내 삶에 자신감을 더 가져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다.




나의 새 하우스는 시내 기차역 바로 앞에 있고, 총 8명이 같이 산다.

샤워 2개와 화장실 2개는 공용이지만 방세가 내 예상보다 훨씬 저렴하고

내가 항상 꿈꾸던 다락방 느낌에, 핑크색 벽과 개인 부엌이 있는,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방 중에서 제일 큰 방이다.


기대했던 것 보다 일이 잘 풀려서 심지어 불안하기 까지 하다.

이거, 갑자기 계약서 안써준다고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이렇게 좋은 딜을 구할 수가 있나?


아니, 왜 이렇게 뼛속까지 거지 근성이 있어?

좋은 것을 얻어도 감히 누리지를 못해 왜?

당당히 누리자! 내가 얻을 것을 감사하면서!




그렇게 나는 무사히 계약서를 받고 나의 네덜란드 보금자리에 입성해서

본격적으로 공식적인 거주 서류를 마무리 했다.


IND(이민국)가서 지문 등록 완료 하고,

 시청에서 거주 등록 하고 주민번호 받고,

주민번호로 드디어 공식적인 은행 계좌 신청도 하고,

코로나 백신 어플도 깔아서 QR코드 신청도 하고, 보험 보조금도 신청했다.

학생증도 나왔고, 네덜란드 신분증도 나왔다.

집 주소가 정해지니 드디어 한국에서 겨울옷도 부칠 수 있었다.

겨우 두세줄로 설명이 끝나버리는 이 일들은 사실 집 입주 후부터 거의 한달이 걸렸다.



그래도 프랑스보다는 빨라서 나는 꽤 만족한다.

그러고보면 프랑스가 정말 느린 국가였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유럽애들도 동의했다.

그런 나라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22살에 어리버리하게 살았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내 자신이 조금 불쌍해진다.

한참을 나는 내 자신을 자책했었다. 내가 결국 해내지 못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거라고.

하지만 그저 나는 어렸고, 철이 없었고, 경험이 없었을 뿐이다.

그 허접했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이제야 22살의 나를 받아들여 준다.




아직까지도  집이  낯설다.

특히 침대, 부엌, 책상 말고도, 큰 소파가 있다는 사실이,

'거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어색하게 만든다.

좁아터진 원룸에서 조금만 공간이 넓어져도

인간의 삶의 질이 이렇게 올라가는구나.


아직까지 집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이 많아 미친듯이 좋아할 수가 없다.

또 다른 운이 그들에게도 찾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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