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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Nov 08. 2021

첫 시작은 대개 고생스럽다, 그런 거다.

[9월 첫째주]


흐로닝언에서의 꿈같은 휴가가 지나고, 드디어 엘과 작별을 고하고,

 혼자 틸부르흐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짐을 이고 지고, 3번이나 기차를 갈아 타면서,

3시간에 걸쳐 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온라인 수업을 함께 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간 예약해  호텔 방에 체크인을 완료했다.



이제부터 홈리스 생활의 시작이다.

어쩌다 보니 집을 구할 시기를 다 놓치고, 무작정 가면 뭐가 되겠지 하고 왔는데,

막상 하우스 뷰잉을 몇개 가 보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방은 하나인데 계약하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은 거의 수십명이었다.


거기다 대체 무슨 근거로 입주자를 선정하는지조차 모르겠다.

신분증이랑, 재정증명이랑 자기소개서까지 써서 내라고 하면서 집주인 마음대로 선정한다는데,



뭐 이런 상황이 다 있어???

월세를 100만원을 내겠다는데 방이 없어?

허 참.

아파트와 원룸, 오피스텔들이 끊임없이 들어서는 한국 출신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고 보면 집을 못 구해서 발을 동동 굴렀던 적이 몇번 있긴 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처럼 절박하진 않았다.

어디든 돈이 없지 방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2021년 새학기 네덜란드는 정말,

 인생 처음으로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에 가장 가까웠다.


암스테르담이 이렇게 몰려드는 사람들에 비해 집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작년에 네덜란드로 오지 않았던 학생들+올해 신입생들이 합쳐져서 암스테르담  아니라 전국적으로 숙소 문제로 아우성이었다.



단순히 머무를 곳의 문제가 아니다.

단기 거주할 곳이야 에어비앤비든, 호텔이든, 친구 집에 얹혀 살든 어떻게든 마련하면 된다.

그런데 집 주소가 정해져야 공식적으로 거주 등록을 할 수 있고,

거주 등록이 되어야 주민번호같은 공식 번호를 받게 되어 은행 계좌도 열고, 백신 어플도 사용할  있게 되는  정말로 '여행자' 신분이 아니라 '거주자'로서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있게 되는 것이다.



네덜란드만의 문제도 아니다.

옆나라 벨기에에서도 난리다. 심지어 틸부르흐는 벨기에랑 가까워서 차끌고 여기로 집 구하러 온 사람들까지 있다.

거기서도 답이 없다며.



이거 어떡하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록, 정보를 알아보면 알아 볼수록,

이거  무식해서 용감하게 왔구나 싶다.


네덜란드에서 나의 집을 찾을 때까지 버틸 수야 있겠지만

가장 불안한 것은, 대체 언제 찾을  있을 것인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집 못 구한 외국인 학생들이 득실득실 하고,

심지어 이번학기에 포기하고 돌아가겠다는 사람들,

페이스북에서는 더치 세입자만 받겠다는 포스팅이 가득하다.



그러고보니 호주에서 정착할 때 일주일 이상 호스텔에서 지내면서 초조하게 집을 구한 적이 있다.

2년 전이지만 그 때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는 극명하게 기억난다.

빨리 '내 집', '내 방', '내 공간'에서 쉬고 싶다는 마음.

그래도 그때는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았을 ,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진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집이 없으면 위로 올리기라도 해서 돈을 더 벌자, 라고 생각하지만

네덜란드, 아니 대체로 유럽 사람들은 굳이 나의 복지를 포기하면서까지 (못생긴 고층 빌딩에 침식당하지 않을 권리) 돈을 벌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집안 환경이 부자인 사람과  그대로  한칸도 없던 사람의 생각 차이랄까.


거기다 우리는 '자국인'이 살 곳이 없어서 필사적으로 거주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면,

유럽같은 경우는 이민 들어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거주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 처지라

당연스럽게 

 포용할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 거주민을 늘리느냐, 라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국경을 막아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라는 이야기가 함께 나오고 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한국 투기, 버블은 저리 가라 수준이고

점점 세입자 가려 받기, 같은 그룹끼리 모여 살기, 반외국인 감정도 심해지고 있다.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나라건, 원래 자기들이 살던 방식으로 살고 싶어 하니까.

다만 변화를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외국인 '유학생'들은 사회적으로 좀 다른 이야기이다.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그룹'이라기 보다는, 돈을 갖다 주는 '고객'이니까.

특히 EU아닌 다른 나라의 학생들은 학비를 수십배를 내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학교 차원에서 유치하려고 난리다.



유치 하면 뭐해, 지금 살 집도 제대로 지원 안해주고!

내 학비로 지금 먹여살리는 학생들이 몇명인데 지금,

기숙사 하나도 제대로 제공해 주지 않고

 집은  책임이다, 라고  그어버리는 거냐고!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받는다.


열이 받아서 학교 하우징 오피스, 교수님들, 학과장까지 각각 다 메일을 보내고 난리를 쳤지만

나 혼자만 난리 치는 것도 아니고 나와 같은 학생들이 너무 많기에

학교에서도 어떻게  줄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집을 구할 수 있는 찬스들을 다 놓쳐버린 내 탓이지...하며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기로 했다.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개인이 매물이 매물 올리는 사이트들은 사이트들대로 다 뒤지고,

매물마다 오퍼 넣고, 페이스북도 (가망성 없어 보이지만) 실시간으로 메세지 보내고,

서류도 계속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학교 수업은, 2주간 인트로라고 해서 엄청 몰아쳐서

매일 매일 과제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내가 1조라서 조별 발표까지 해야 했다!




흐로닝언에서의 휴가가 꿈결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호텔방에 쳐박혀 있다 보니,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하다.


일주일간 호텔에 머문다면 좀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건 거의 뭐 모텔보다 못한 수준의 방이다.

방에 미니 냉장고조차 없어 빵이나 먹으면서 살고 있다.

심지어 전기포트도 없어서 컵라면도 못끓여 먹고, 결국 프론트에 가서 전기 포트 달라고 했다.



학교도 처음 2주간 온라인 수업이고,

호텔도 시내와 동떨어져 있어 나가기도 불편하다.

말도 안통하는 낯선 도시에는 

온통 낯선 얼굴이 가득하고,

슈퍼마켓을 가기조차 두렵다.


버스를 타는 것 조차, 길을 찾는 것 조차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 조차,

너무 걱정스럽고 겁이 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까지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하긴,

이미 낯선 곳에서 몇번이나 겪은 감정이다.

바깥 세상이 너무 두려운 것.

겉으로는 씩씩하게 잘 다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도 원래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라 걱정과 불안에 잠식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히 무섭겠지만

막상 나가서 좀 걸어다녀보고 탐험해 보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구글 맵을 보고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한번 가 보는 것.

오늘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보는 .



한번은 용기를 내서 호텔 앞에 있는 전기 스쿠터를 기웃거리다가

어플을 다운 받고 전기 스쿠터를 몰고 틸부르흐를 돌아다니기까지 해 봤다.

물론 20분 걸릴 거리를 40분 동안 아주 천천히 갔지만...

전기 스쿠터야 익숙하지만 운전 법규를 어길까봐 긴장이 되어 진땀 흘렸다.

그래도 한번 타보니 이제 제법 자신감이 붙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자전거를 드디어 마련했다.

 구하기도 스트레스 받는데 중고 자전거 구하기는 못해먹겠다, 거기다 자동차 고장나듯이 이것도 고장나면  고치느라 스트레스 받고, 이것 저것 따져봤을  그냥 빌리기로 했다.


요즘 네덜란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비즈니스 모델인 swapfiet는 이미 엘과 엘의 친구들이 추천해 주었다.

한마디로 자전거 구독 서비스인데, 한달에 얼마 내고 자전거 빌리는 것이다.

학생 할인, 3개월 할인이 들어가서 어느정도 가격이 괜찮았다.

거기다 1년 이내면 굳이 자전거 살 필요 없이 빌려 타도 크게 가격 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고,

가장 큰 장점은 문제가 있으면 그냥 다 고쳐주거나 자전거 바꿔준다는 것이다.

골치아플 필요가 없다.


현재 골치가 너무 아픈 나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메리트였다.

그런데 그놈의 swapfiet 조차 삼고초려해서 받아야 했다.

처음 갔을 때는 그 긴긴 줄을 기다리고 난 후에 내 한국 하나은행카드가 안먹힌다는 것을 알고 난 후 터덜터덜 돌아왔고, 두번째는 긴긴 줄을 기다렸는데 자전거가 다 빠졌대.

세번째 가서 드디어 가장 좋은 자전거, green + green bell  색깔까지 깔맞춤 하고 핸드 브레이크가 있는 자전거를 받을  있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걸렸지만 너무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받아서 행복하다.

어쩌면 내 슬리퍼에 써져있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good things take time

좋은 것들은 오는데 시간이 걸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버텨보자.

낯선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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