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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참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10월 셋째주]

by ClaraSue

10월의 마지막을 앞두고, 벌써 block 1이 슬슬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그 말은 곧 과제 제출과 시험이 몰려있다는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한 학기는 block 1과 2로 진행되는데 한국에서 한 학기가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나누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수업 하나가 한 학기가 아닌 한 블록에 마무리 지어지는 거라, 10월 시험이 중간 점검이라기 보다는 과목 마무리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다행히 이번 블록에 내가 쳐야할 시험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개인 에세이가 2개에 팀 에세이가 3개나 되었다.

아카데믹 에세이를 쓰는 것은 맘에 드는 주제 선정을 고민하는 것부터 내 주장을 뒷받침할 학술 논문을 방대한 자료 속에서 찾아내는 것, 거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글쓰기까지 너무나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거기다 팀 에세이는 회의도 매번 해야 하고, 남이 쓴 글은 꼼꼼히 읽고 의미있는 피드백을 주는 것(내가 읽었다는 것을 티 내기 위해) 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2주 이상 모든 활동을 스탑하고 논문 읽기, 에세이 쓰기와 시험공부에만 집중했다. 시험 기간이 닥치면 하던 방식대로.

스포츠 센터 수업을 들으러 갈 시간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네덜란드 어 공부 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영화나 미드 보는 것도 모두 시험이 끝난 후로 미뤘다. 친구들과 약속도 잡지 않았고, 주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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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부족하다고 더 압박을 느꼈던 것은 모든 것을 영어로 읽고 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유학을 오면서 그정도는 각오하고 오긴 했다. 네덜란드 학생들도 영어가 제 2외국어이기는 마찬가지라 내 마음이 좀 더 편하긴 하다.


하지만 걔네들은 나보다 아카데믹 라이팅 트레이닝이 학사 과정에서 훨씬 잘 되어 있다. 적어도 영어로 공식 졸업 논문을 쓰고 학사 졸업을 했다고. 나는 한국에서 학사 할 때 영어 논문이라는 것을 읽어 본 적도 없고 한국어로도 제대로 된 논문을 쓰지도 못했다. 졸업 논문은 후루룩 뚝딱 어떻게 제출 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혼자 트레이닝 해서 여기까지 왔고, 그러다 보니 아카데믹 에세이 쓰기에 자신감도 없는 데다가 영어가 모국어인 애들을 보면 자격지심까지 느껴진다. 모국어로 공부하면 얼마나 편할까.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논문을 읽으면 정말 빨리 읽을 자신이 있는데.

한국어로 논문 쓰면 더 유려한 단어들을 구사해서 멋지게 쓸 자신이 있는데.

하아.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 종이에 써진 글을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도저히 논문들을 전부 프린트 할 수가 없으니(돈이 아깝기도 하고) 노트북과 아이패드로 저장해서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북목은 심해지고, 눈은 빠질 것 같고.



나의 스케줄이란 아침에 일어나 대강 시리얼 먹고 도서관 가서 세시간 정도 있다가 집에 와서 점심 먹고, 다시 집이나 도서관에 가서 6시 반까지 있다가 집에서 와서 저녁 먹는 것이었다. 뭔가를 해 먹고 설거지 하고 그러면 벌써 8시. 그러면 다시 잘때까지 과제 한다.


이렇게 해도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초조한데, 가면 갈수록 집중도도 떨어지고 특히나 심각하게 우울해졌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다같이 공부하니까 괜찮았던 걸까?

그래도 간신히 모든 것이 과제 제출 일에 맞추어 끝나가긴 했는데, 막판에 가서는 거의 나가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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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암스테르담에 사는 한국 친구가 주말에 놀러와서 거의 3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기념식을 내 나름대로 치렀다. 오랫만에 한국어로 맘껏 수다떨면서 회포를 풀고, 공원을 산책하면서 화창했던 날씨를 마음껏 만끽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 언젠간 한번 들어가보고 싶다, 생각만 했던 까페도 둘이 방문했다. 가난한 유학생 신분으로 분위기 좋은 까페나 음식점 한번 가는 것 조차 비쌀까봐 마음에 걸려서 못갔는데, 특별한 날에 한번쯤 갈 수 있잖아! 하고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걸로 퉁쳤다.


한국에서 돈벌때는 심심할 때 맨날 찾아 가던게 분위기 좋은 맛집이었는데,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내가 선택한 삶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문만 보고 논문만 쓰고 있는 고시생같은 삶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길이라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나는 외국 생활을 즐기려고 유학 온 것도 아니다.

돈벌이에 얽매이지 않고, 가족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나 혼자 공부만 하는 삶이 내가 꿈꾸던 삶이기도 했다. (물론 영원히 이렇게 살고 싶진 않지만..)


그건 꿈꿀 때 얘기고, 그 생각을 하면 지금이 참 행복하게 느껴지지만(과제와 시험이 마무리 되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막상 현실의 하루하루를 특별한 일 없이 공부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참 팍팍하고 지치는 일이다. 유학생의 삶이건, 회사원의 삶이건, 백수의 삶이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에서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깨달은 것은, 이렇게 극단적으로 살면 안되겠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벼락치기/시험기간 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로 미뤄야 한다는 이 극단적인 마음가짐을 바꿔야한다! 특히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없이 혼자일 때는 더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특히 아무리 시간이 없다해도 운동은 꼭 해야 장기전이 가능할 듯 하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리고 중간중간 공부 말고 뭔가 다른 것을 좀 할 필요도 있는 듯 하다. 셜록 홈즈가 추리하다가 바이올린 켜듯이,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찾아야지. 나 자신을 너무 몰아세워봤자 효율성만 떨어지고 우울감만 높아지니까.



블록 1이 끝나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다음 블록이 시작된다.

두번째 블록은 덜 극단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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