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덕이며 가다가 지쳐서 때려침
(원제) Keeping up with the world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세상을 '따라잡기' 힘들까?
최선을 다해서 트렌디하려고 해도,
매 시즌 새로운 패션이 나온다.
옷을, 신발을, 악세서리, 화장품을 계속 사야 하고
새로운 물건을 써 봐야 하고
가고 싶은 새로운 멋진 장소의 사진은 끊임없이 인터넷에 올라온다.
힙한 거리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맛집은 계속 발굴되고
먹어보아야 할 신메뉴는 끝도없이 업데이트 된다.
유명 인플루언서는 항상 바뀌고,
인터넷에서 '꼭 봐야 할 영상'은 늘어나고,
해볼 가치가 있는 게임은 계속 출시되고,
써볼만한 앱은 계속 추가 되고,
한번쯤 정주행 해야 할 티비 시리즈는 계~~속 나온다고!
이 공부가 유망하다고 하더니, 자격증 딸 때쯤엔 저 공부가 취업 잘된다고 하고.
읽어볼 책 목록을 다 체크했다 싶으면 또 죽기전에 읽어야 할 책들이 늘어나고
취미생활도 이것 저것 해 봤다 싶으면 또 새로운 클래스가 오픈된다.
최신 전자기기, 최신 카메라,
신형 차 사려고 열심히 돈 모았더니
그 돈 다 모을때쯤에는 이미 한물간 중고가 되어 있다.
성형조차 원하는 대로 하려고 꾸역꾸역 돈 모아서 가면 이미 그 얼굴은 촌스런 얼굴이 되버린다.
집은 어떻고.
열심히 집값 모으면 이미 올라 있다. 그 돈으로 못 산다. 못 따라 잡는다.
세태를 따라가려면 힘들고 피곤하고 지친다.
우리는 절대로 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다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게 자본주의의 속성이기도 하다.
새로운게 나와야 판매해서 생산자들의 자본이 늘어나니까.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 더 멋지게, 더더더.
나를 둘러싼 세계는 항상 나보다 빨리 변하고,
나는 항상 한발짝 늦는 것만 같고,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도 가져야 할 것, 해야할 일은 줄어들지 않는 것만 같다.
굴려도 굴려도 떨어져내려오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피곤하다.
그래서 세상을 따라잡는 것 대신
그냥 내 자신이 되는 게 더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늦게 가는 시계는 영원히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멈춘 시계는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올바른 시간을 가르키니까,
세상이 어떻게 정신없이 흘러가든
그냥 내가 내 타이밍대로, 내 취향대로 살면
언젠가 한번쯤은 세상과 내가 맞아떨어질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안오면 어쩔 수 없고.
막상 그냥 나답게 살자, 고 생각했는데
그게 더 어렵다.
나를 이리저리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 틈에서,
어떻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차단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출 것인가.
수많은 흔들림과 도전과 실패와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겨우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고 도전하되, 휩쓸리지는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