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긴 시간일 수도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고양이에겐 역시 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무더운 여름에 내 곁에 다가온 고양이도 어느새 1년이란 시간이 흘러 어른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의 수명에 빗대어 보면 3-4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성묘라고 생각하지만 사료나 간식 등에 흔히 표기하는 '1년 이상의 고양이'가 된 것이다.
나는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고양이는 아프거나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지만, 성묘가 되면 제법 면역력도 생기기 때문에 아파도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은 한번 흘러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된다. 춘수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1살이 된 춘수는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소파나 식탁에 스스로 올라갈 수 있고 높은 캣타워도 순식간에 오른다. 1kg 채 되지 않던 어린 고양이는 그렇게도 소파며 침대에 올려달라며 야옹거렸는데 말이다. 2kg이 넘지 않아 중성화 수술하는 것도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혹여 그전에 발정이 올까 봐 얼마나 마음을 태웠는지 모른다. 낯을 가릴 줄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을 봐도 숨을 줄 몰랐던 고양이였다. 요즘은 현관에서 인기척이 나면 주위를 살피며 한껏 긴장한 채로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가족이 오면 마중 나오기도 한다. 띠리릭하는 도어록 소리가 나면 총총걸음으로 마중 나온다. 복슬복슬한 꼬리를 세워 맞이해준다.
어서 와. 오늘도 수고했어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
쭉 같이 시간을 보내서 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춘수가 야옹하면 응, 간식 줄까? 춘수가 야옹하면 응, 화장실 치워줘? 하게 된다. 아직 알 수 없는 말도 많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어떠랴. 우리는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를 알아간다. 서로 방해되지 않게 침대에서 자는 법이라던가, 상냥하게 아침밥을 요구하는 법이라던가. 춘수의 행동, 몸짓, 소리가 하나의 문장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두 손 안에 폭 안겨들어오던 어린 아기 고양이가 어느새 어른 고양이가 된 것처럼, 어른 고양이는 금세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겠지. 나는 또 그 순간을 바라면서, 바라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와 이별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별을 쉽게 준비하지 못한다.
네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는데, 춘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