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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e Kang Jul 26. 2018

고양이와 삶의 밸런스

2000년도쯤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을 탄 것처럼, 2017-18년을 대표하는 말은 '워라밸'이라고 생각한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Work-life balance라는 영어 표현으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비단 일과 삶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춘수가 한참 뛰어다니던 아깽이 시절, 나에게도 고양이와 (나의) 삶의 밸런스가 필요했다. 춘수는 대게 낮에는 늘어지게 잠을 자지만, 저녁이 되면 목이 빠지도록 나의 퇴근을 기다렸다. 퇴근해서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으면 춘수는 내 앞으로 총총 튀어왔다. 여러 가지 장난감을 사용해 춘수와 함께 집 복도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가끔 내가 핸드폰을 보거나 랩탑을 보는 등 딴짓을 하고 있으면 옆으로 와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러면 나는 춘수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춘수가 기운이 빠지도록 놀아주곤 했다.


춘수는 아직 보호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어린 고양이였고, 내 취미는 춘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 삶에 춘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컸다. 그렇지만 내가 즐겨하는 다른 취미, 독서나 핸드메이드, 또는 게임 플레이 같은 것에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취미생활에 앞서 내 어린 고양이 춘수를 위해 내 시간을 더 많이 내어주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춘수의 여가시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바로 내 취미 중 하나인 게임이 신작이 나왔던 것이다. 나는 금세 그 게임에 빠져버렸고 퇴근 후 나는 게임기를 붙잡기에 바빴다. 춘수는 물론 이 손바닥만 한 기계를 매우 못마땅해했다. 나중에는 내가 게임기를 손에 들고 있기만 해도 옆에 와서 놀아달라고 시끄럽게 울어댔다. 자신에게 온전히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어야 할 시간인데 내가 다른데 관심을 쏟고 있으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춘수가 옆에서 울어댈 때면 게임을 잠시 관두고 춘수와 놀아주는데 집중했다.


퇴근 후 시간을 춘수에게 내어주면서 잠을 자기 전에 짬짬이 게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도 참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춘수는 잘 때 내 옆에서 자는데,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게임하는 게 역시 못마땅했다. 그래서 나와 게임기 사이를 가로막고 잠을 잘 때까지 버티곤 했다. 결국 잠들기 전에 하는 게임도 포기했다.


"아니 오늘은 많이 놀아줬잖아. 누나 게임 좀 하게 해줘."

춘수에게 우는 소리도 해봤다. 하지만 춘수는 이런 내 맘을 알아주지 못했다.


나는 내 취미생활을 위한 새로운 대책을 세웠다. 바로 춘수가 보지 않을 때 몰래 게임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집에서 춘수 몰래 게임을 한다는 것은 꽤 만만치 않아서 결국 회사 출퇴근하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식사 후 남는 시간 등을 활용해서 게임을 하게 되었다. 혹은 주말과 같은 휴일에는 하루 종일 놀아줄 필요가 없으니 주말을 이용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을 '춘수와 내 삶의 밸런스'라는 뜻으로 춘라밸이라고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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