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위해 미국에 잠깐 나갔을 때, 교수님을 통해 여러 회사를 투어 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회사가 기본적으로 펫 프렌들리 한 공간이라는 것에 나는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방문했던 회사들 중 영화제작사로도 유명한 리듬 앤 휴즈라는 회사가 제일 인상 깊었는데, 반려동물 전용 출입구도 있고 반려동물 전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아마 동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차원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한창 작업 중이던 "라이프 오브 파이"를 구경할 수 있었고, 돌아다니는 동안 많은 동물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최근엔 아마존의 펫 프렌들리 한 업무 환경을 다룬 기사가 나와 꿈의 직장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곤 한다.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업종의 회사들을 보면 대게 사무실에 상주하는 고양이 혹은 강아지 친구들이 있다. 내가 일했던 어떤 게임회사도 반려동물과는 별 상관없었지만 고양이를 키웠다. 내 친구도 작은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키우는데 회사에 동반 출근하며 "대리"라는 직함을 붙여줬다. 그 강아지 친구의 이름은 "콩이"인데 그래서 콩대리라고 불린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반려견, 반려묘와 함께 출근하는 환경은 드물고 건물 특이사항 등으로 인해 불가능한 곳이 훨씬 많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한동안 위워크(WeWork)라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는데, 위워크는 기본적으로 펫 프렌들리 한 공간이었다. 덕분에 반려동물 관련 업종이 제법 입주해 있기도 하다. 위 워크에 입주해 일하는 기간이 춘수를 반려하는 기간과 맞물려 나는 춘수와 함께 출근할 기회를 얻었다.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고, 혹시 알레르기가 없는지 미리 체크도 했다.
그 날, 춘수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슬링백에 넣어져 아무것도 모른 채 나와 함께 출근을 했다. 춘수는 사람에 대해 낯가리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넓은 사무실에 춘수와 함께 있는 기분은 새로웠다. 춘수는 낯선 장소 때문인지 가져간 물도 밥도 입에 대지 않았고, 구석에 숨어있었다. 귀퉁이에 숨어있는 모습을 보고 나몰라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자로 옮겨 담요로 굴처럼 만들어 주니 그곳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챙겨간 간식들은 잘 받아먹었다. 아무리 무섭고 겁나는 상황이어도 간식은 먹어야겠다니 그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춘수는 우리 사무실뿐만 아니라 옆 사무실에도 예쁜 고양이가 있다며 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예쁨을 독차지했다. 나에겐 익숙한 춘수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정말 귀엽고 예쁜 고양이였던 것 같다. 다행히 춘수는 사람들에게 낯가리는 성격은 아니었고, 사납게 굴지도 않았다.
"누나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춘수 츄르(고양이 간식) 벌어다주고 있어. 알겠니?"
우스갯소리지만 일하면서 그렇게 춘수에게 말하기도 했다. 춘수는 알아들었을까?
처음엔 너무 적응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것 같아서 점심때 다시 집에 돌려놓고 오려고 했다. 집에 데려가려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근데 엄마의 반응은 좀 달랐다.
"고양이가 낯선 데 가서 그럴 수 있지만, 그렇게 또 밖에도 나가보고 해야 애가 자라지.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가지고 고양이가 겁이 많은 거야. 좀 더 있어보고 정 안 되겠으면 데려와."
그래서 조금 더 춘수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생각 외로 춘수는 제법 잘 적응했고 그제야 맘이 좀 풀리는지 잠을 자기도 했다. 대부분 내 옆자리를 지켰지만 담요로 만든 굴을 나와 호기롭게 사무실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두 번 더 데려오면 아주 적응하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발견되어 (본인도 몰랐는데 춘수가 출근하면서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춘사원은 사무실로 출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나에겐 참 좋은 기억이었다. 춘수와 함께 일하니 의욕이 퐁퐁 샘솟고 회사가 썩 싫은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춘수는 낯설고 무서웠겠지만 언젠가 몇 번 더 함께 출근하게 되면 출근하는 생활에도 적응하지 않을까? 고양이와 함께 출근하는 것은 분명 내 욕심이겠지만 춘수에게도 그리 나쁜 시간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