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차별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차별
나는 1남 1녀 중 둘째 겸 막내다. 3살 위의 오빠가 있다.
그리고 엄마는 항상 얘기했다. 자긴 차별이 없이 키웠다고. 본인이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남녀차별을 너무 심하게 받았기 때문에 자기 자식에게는 그 대물림을 하지 않았노라고.
그렇다면 내가 겪어오고 느꼈던 것들은 뭘까. 뭐였을까.
대학 4학년, 나는 졸업을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계획했다. 미리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면 나중에 등록금이 올라도 더 낼 필요가 없고, 당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인턴이나 마케터 등의 활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국 휴학은 하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가 돈을 벌 때 빨리 졸업하라고 했다. 아니 등록금이 미리 내면 오르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냥 졸업하는 기간만 늦어지는 것인데 그것조차 안된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대로 휴학 없이 졸업했다. 휴학하고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을 못했던 것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원했다. 좀 더 공부하고 싶었다. 특히 해외로 유학 가는 것을 원했다. 미대를 나왔기 때문인지 내 친구들 중 상당수가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나도 더 넓고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집에 돈이 없단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진학도 유학도 모두 접었다.
초등학생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학업의 길을 마치고 주어진 시간 역시 나에게는 괴로웠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해마다 거듭되는 취업난 때문인지, 혹은 취직할 의사가 부족했던지. 나는 졸업 후 6개월 정도 부지런히 취직 준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취직이라는 허들은 나에게 너무 높았다. 이력서는 줄줄이 퇴짜를 맞았고, 간혹 면접을 보더라도 좋은 피드백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늦은 밤, 불 켜진 테헤란로를 보며 “이렇게 사무실이 많은데 너 일할 자리는 없다니.” 하는 엄마의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뭐라도 하란다.
그래서 뭐라도 해보겠다고 사진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사진 찍는 것도 좀 배우고, 어쨌든 "신입"이라는 딱지는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을 그리 녹록지 않았고, 스튜디오의 근무조건은 열악했다. 세전 월 180만 원에 주말 없는 출근. 주말에 더 고객이 많은 스튜디오의 특성을 이해했지만 다른 친구들과 휴일이 맞지 않아 혼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내 전공과 연관 있다고 생각했던 사진 스튜디오는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심지어 사람들 얼굴을 수정하고 예쁘게 만들어주는 것만 반복되어 무료감을 느꼈다. 출근하면서 또 퇴근하면서 얼마나 눈물로 날을 지새웠던가. 그래서 결국 스튜디오는 관뒀다.
국비지원 교육을 통해 겨우 취업을 했고, 성희롱과 욕설을 받아내며 야근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도 뿌듯했다. 경제적으로 집에서 독립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빠는 좀 달랐다. 오빠는 대학 4학년에 자퇴를 했고, 다른 대학교를 갔지만 그 학교 역시 한 학기만에 관뒀다. 심지어 그 학교에서 집으로 성적표가 날아왔을 때야 적절한 퇴학 절차 없이 그냥 무단으로 학교를 관뒀단 것을 알았다. 오빠는 미국을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집에 없던 돈이 생겼다! 그는 미국으로 갔고 틈틈이 집에 연락해 백만 원, 이백만 원하는 돈을 달라고 했다. 엄마는 매번 집에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나에게 하소연했다. 이제 성인인데 뭘 그리 뒷바라지하냐 했더니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하더라. 이미 보낸 대학이 두 갠데, 나온 건 오빠인데. 이럴 거면 나도 좀 막 나가는 삶을 살 걸 싶었다.
엄마는 오빠가 돈을 달라고 할 때면 나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등 떠밀려 취직한 사회 초년생인데 뭐 얼마나 돈이 있겠냐만. 그래도 외국 가서 고생하지 말라고 나도 되는대로 돈을 보탰다. 그게 그의 사치스러운 삶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못한 채. 미국에서 여행도 참 많이 다녔더라. 난 회사에서 휴가 쓰기도 참 힘들었는데.
오빠가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직장인 5년 차였다. 그는 서른 넘도록 부모님 돈 받아 학교를 다녔고, 난 서른이 되기도 전에 돈을 벌러다닌지 5년인 것이다. 근데 오빠가 취직을 해도 참 씁쓸했다. 그는 해외에서 다져진 고학력을 인정받아 대기업에 떡하니 입사했고 그의 첫 연봉은 내 3년 차 연봉보다 높았다. 이런 게 상대적 박탈감이구나 싶었다. 돈을 많이 들이니까 돈도 많이 버는구나.
지금 오빠의 연봉은 내 연봉의 3배 정도 된다. 좋겠네. 내 인생은 너무 쓰레기 같다. 그간 노력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 같다. 사회계급이 이렇게 달라지는데 내가 여기서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