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생일파티 #2

#2

by Clare Kang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땡볕의 여름, 세 남매는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의 숲을 지나고 있었다. 휘청휘청 휘어질 만큼 키가 큰 나무들에 초록색의 나뭇잎이 가지가 부러지도록 잔뜩 달려서 숲의 푸르름을 더했다. 공기는 여느 때보다 시원하고 맑았다. 떨어진 나뭇가지가 딱 딱 하고 부러지는 소리는 온갖 새소리에 더불어 상쾌한 느낌을 주기까지 했다. 레스휘나가 밝고 경쾌한 목소리가 시링크스에게 질문했다.


“그냥 확 태워버리면 안 될까, 이런 숲?”

“무슨 소리야 갑자기?”

“아아 귀찮잖아 이거.”


물론 숲은 아름답다. 그리고 숲은 가드리안 저택을 빙 둘러싸서 지켜주는 훌륭한 성벽이다. 그러나 도시, 아니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 숲을 지나야 하는 것이 가드리안가의 세 남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대로는커녕 오솔길 하나 나지 않은 저택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가려면 맹수의 위협은 물론이고, 길을 새로 내야 한다는 단점 또한 있었다. 물론 그 길을 매번 외출 때마다 내야 한다는 단점에 레스휘나는 신경질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들의 숲’이라는 이름 역시 레스휘나가 지어준 이름인데, “애들이 달라붙는 것 같아서 귀찮아 이거.”라는 의미로 그녀가 멋대로 갖다 붙인 것이었다. 기껏 곱게 차려입은 게 전부 헛수고였다면서 레스휘나는 투덜투덜거렸다. 그녀의 불평은 아이들의 숲을 지나 마을의 숙소에 다다라서 근사한 저녁식사가 테이블을 가득 메울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크하하하. 꼬마야. 지금 나는 강도고 너는 피해자란다.”


그는 친절하게 레스휘나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 말 그대로. 현재 세 남매가 선택한 숙소의 식당은 그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아니 점령이라고 해도 있는 사람이라고는 오직 그 혼자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아아, 시끄럽긴. 그런 건 알겠지만 그것보단 지금 배고프단 말이야.”


레스휘나는 차갑게 대꾸했다. 같은 테이블, 그녀의 왼쪽에 앉아있던 세르시우스는 천천히 그녀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아 불안해.’


그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순조로운 저녁 식사시간이 중단되었고,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당 한가운데에서 큰소리로 떠벌거리는 저 남자의 입을 조용히 틀어막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날이 파랗게 선 단도를 보니 그것도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레스휘나의 오른쪽에 않아있는 시링크스는 묵묵히 강도의 말도 레스휘나의 말도 듣지 않고 새우껍질을 정성스럽게 발라내고 있었다. 이 작은 여관에 묵는 사람에게 강도란 당황할만한 일이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이 강도에게 이 세 사람의 반응이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보통 평범한 반응이라면 ‘가진 건 전부 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 라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놓는 것이다. 하지만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물론 그녀의 정체를 알았더라면 절대 그런 소리는 할 수 없겠지만―여자아이가 한마디 한마디 대꾸하면서 자신의 말을 거의 무시하지 않는 것인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강도의 출몰로 두렵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독특한 세 남매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저기. 죄송하지만요.”


세르시우스는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강도는 ‘이건 또 뭐야.’라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세르시우스는 그 눈빛에 약간 움찔 하긴 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영업에 방해가 되는 건 알지만요. 다른 곳에 가서 일을 하시면 안 될까요? 하다못해 레스는 건들지 않아주시면 좋겠는데요.”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하지만 어쩌다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저런 사소한 강도 때문에 그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그로서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강도는 그에게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제발 이렇게 부탁할 때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레스가 안 그래 보여도 정말 정말 무서운 아이란 말이에요.”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강도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강도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핫핫. 이 몸이 누구인지 알아? 난 나이트메어 체슬륜이야.”


그가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히자 여관 내가 갑작스럽게 술렁거렸다. 그가 자신 있게 밝힌 자신의 별명은 ‘붉은 검의 나이트메어’라는 유명한 대도의 이름이었다. 그는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간 검을 들고 혼자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취미가 있었다. ‘체슬륜’이라는 이름을 들은 시링크스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에이- 거짓말.”


시링크스는 그 말을 강도에게 툭 던져 버리고 몇 마리째인지도 모르는 구운 새우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체슬륜이라고 소개한 강도의 이마에는 빠직 하고 힘줄이 솟아났다.


“바보 취급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시링크스를 향해 그의 오른손에 있던 날이 시퍼런 단도를 홱 집어던졌다. 그러나 시링크스는 섬세한 손놀림으로 벗기다 만 새우를 들어 단도를 막아내었다.


“나이트메어는 이런 허접때기 여관은 절대 털지 않아요.”


시링크스는 친절하게 배시시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자칭 체슬륜은 흠칫 놀라서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나이트메어라면 그 자랑스러운 붉은 검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시링크스는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지, 집에 두고 왔어!”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 질렀다. 순간 여관 식당의 술렁임이 멎었다. 그리고 새로운 술렁임이 소곤소곤 시작되었다. 시링크스는 구운 새우를 향해 손을 뻗다 말고 자칭 체슬륜에게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뻔뻔하시군요.”


그는 ‘하아-’하고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앉아있던 레스휘나가 입을 열었다.


“시스, 앉아.”


시링크스는 그녀의 명령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레스휘나의 화난 것 같은 목소리에 그저 따르기로 생각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표정을 지켜보던 세르시우스는 안색이 창백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양 미간은 살짝 좁혀지고, 눈은 살짝 내리깐 후 오른쪽 입 근육이 세 번 미세하게 움직였고 두 눈에는 ‘불만’이란 단어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물론 그 경미한 변화를 눈치챈 것은 세르시우스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성호를 그으며 자칭 체슬륜을 위해 기도문을 살짝 읊었다. 레스휘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칭 체슬륜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깐 멈춰주세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은 한 여자에게로 옮겨졌다. 하얗게 빛나고 있는 긴 은발을 하나로 질끈 묶고, 고급스러운 제복을 갖춰 입은 여자가 천천히 무리의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여관의 침실에서 수면을 취하는 도중 소란스러워진 바람에 일어난 모양인지 모습이 약간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전혀 단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우시면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엄숙한 목소리로 레스휘나와 자칭 체슬륜에게 경고했다.


“흥! 댁이 뭔데 참견해서 이래라 저래라야?”


자칭 체슬륜이 그녀를 비웃었다.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당신이야말로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 보군요.”


그녀가 조금 놀랍다는 듯이 조소를 담은 표정으로 자칭 체슬륜을 노려보자 그제야 그는 그녀를 꼼꼼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진한 남색의 제복으로 하나밖에 없는 맞춤복처럼 몸에 딱 맞게 재단되어 있었다. 제복의 양쪽 팔에는 금색과 은색으로 아름답고 섬세하게 제국의 문장이 꼼꼼하게 수놓아져 있고, 금색 단추 하나하나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독수리가 정밀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하얀 바지의 왼쪽에는 길고 날카로운 검집과 은으로 되어있는 장식이 여러 가지 달려있었다. 가슴에는 역시 세밀하게 세공된 독수리 문양의 상징이 반짝반짝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분명 이것은 황실의 기사단 ‘검은 수리’의 제복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챈 것은 시링크스였다.


“제국 기사군요.”


그녀는 시링크스를 한번 쳐다보더니 미소 지으면서 자칭 체슬륜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시겠습니까?”


자칭 체슬륜도 그녀의 은빛 검을 발견했는지, 아니면 그녀가 기사라는 사실에 두려움 때문인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창밖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두고 보자 너희들! 이 모욕은 반드시 갚겠어!”


레스휘나는 한심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모욕을 줬다는 거야?”


시링크스는 그녀의 말에 킬킬거렸다. 어쨌든 자칭 체슬륜 덕분에 얼어붙었던―그러나 그가 가짜임이 들통나자 금세 녹아버렸던―분위기가 안정되었고, 사람들은 자칭 체슬륜이 오기 전에 하고 있었던 식사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안전하셔서 다행입니다.”


은발의 그녀가 레스휘나에게 말했다.


“별말씀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스휘나를 대신해서 세르시우스가 대답했다. 그는 앉아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서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식사라도 하시죠?”


세르시우스가 빈자리를 그녀에게 권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그녀의 배는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꼬르륵하는 소리를 냈다.


“어머. 배고프신가 보네. 사양하지 말고 드세요.”


레스휘나가 상냥하게 웃으면서 그녀에게 권유했다. 그녀의 엄격해 보이는 표정이 누그러지고 부끄러움 때문인지 두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세르시우스가 권한 빈자리에 앉았다. 레스휘나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고 세르시우스도 자리에 앉았다.


“구운 새우 맛있는데. 이거 좀 더 시켜드릴까요?”


시링크스가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여전히 새빨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링크스는 그런 그녀가 귀여운지 쿡쿡 웃다가 지나가던 종업원을 붙잡고 구운 새우를 주문했다.


“보시다시피 황실 기사단 검은 수리 소속의 홀리 에스힐튼입니다. 홀리 경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녀는 다소 딱딱한 말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시링크스. 이쪽은 제 여동생 레스휘나―이때 레스휘나는 왠지 그녀에게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쪽은 제 형인 세르시우스입니다. 저희 셋은 이 근방에 살고 있는 남매입니다.”


시링크스도 그녀에게 자신과 세르시우스와 레스휘나를 소개했다. 홀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습을 보아 귀한 자제분들인 것 같은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가문이신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순간 테이블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세 남매는 서로 눈빛을 잠시 교환한 후에 세르시우스가 입을 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가문이라 홀리 경께서는 잘 모르실 겁니다.”


홀리는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시우스는 조용히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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