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생일파티 #8

#8

by Clare Kang

골목마다 활기찬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빵 굽는 냄새, 향수 냄새, 좌판의 과일 냄새 등 여러 가지 냄새가 섞인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이 많아서 더 이상 말을 타고 다닐 수가 없어, 그들은 말에서 내려 힘겹게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쳐 갔다. 큰 도시라지만 마구간이 딸린 여관은 중심부에나 있기 때문에 그곳까지 가야 했던 것이었다. 저녁시간이기 때문인지 거리는 끊임없이 붐볐고 그들은 불안해하는 말을 어르고 달래며 겨우겨우 인파를 헤치고 나갔다.


“이 도시의 명물은 사람이 아닐까?”


레스휘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세르시우스는 그녀의 말에 크게 웃었다. 힘겨운 사투(?) 끝에 다다른 여관도 사람이 북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잡은 방을 놓칠세라 그들은 서둘러 방 두 개의 값을 치렀다.


“휴우- 정말 사람들은 이렇게 부딪치면서 사는 게 좋은 걸까?”


여관의 작은 아이가 안내해준 2인실의 방에서 시링크스가 혼잣말을 우물우물거렸다. 2인실이라서 그런지 방은 좁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넓지도 않았다. 양쪽 벽을 따라 침대가 하나씩 놓여있고 가운데에 먼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창문이 하나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창문 앞에는 간소하게 마련된 나무 탁자와 그 탁자에 맞는 나무의자가 하나 있었다.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나무를 적당히 잘라 만든 것 같은 키다리 옷걸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창문은 커튼은커녕 천 쪼가리 조차 달려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붉은 햇빛이 고스란히 오른편에 있는 침대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의 오른편으로 미닫이문이 하나 있었는데 아마 이불 따위를 넣어두는 벽장인 것 같았다. 시링크스는 떠들썩한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창문을 쳐다보다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세르시우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쿡쿡 웃으면서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게 인간하고 우리의 다른 점이겠지.”

“흐응. 하지만 저렇게 보여도 다들 지나치게 개인적이잖아. 그렇게 개인적일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남한테 간섭 같은 건 안 하고 사는 게 편할 텐데.”


시링크스는 침대 위를 한가하게 뒹굴 거리면서 이것저것 생각했다. 세르시우스는 나무의자에 앉으면서 팔을 쭉 뻗었다. 오랫동안 말을 타서인지 온 몸이 뻐근했다.


“시스, 밥 먹으러 갈까?”


세르시우스가 시링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세르시우스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시링크스는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었다.


“하하. 피곤했나 보네.”


세르시우스는 벽장에서 담요를 하나 꺼내 시링크스에게 조심스럽게 덮어주고 방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바로 홀리를 발견했다.


“레스는 자고 있나요?”

“네.”


그녀 역시 레스휘나의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럼 같이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시스도 자고 있어요.”


홀리는 세르시우스의 제안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은 복잡한 인파를 뚫고 여관 밖으로 나갔다. 도시의 한 복판에는 큰 분수대가 있는 광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다른 곳에 비해 인파가 적었다. 게다가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산책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 홀리 경. 우리 저거 한 번 먹어볼래요? 왠지 맛있어 보이는데.”


호두 모양의 빵을 구워 팔고 있는 좌판을 보고 세르시우스가 어린아이처럼 들떠 소리쳤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그는 뛰어가 그 빵을 한 봉지 사들고 홀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진짜 호두가 들어있대요. 음. 호두가 비싸서 호두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 걸까?”


세르시우스는 한 개를 꺼내 먼저 먹으려다가 이내 홀리에게 건네주었다. 홀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세르시우스는 다시 한 개를 꺼내 입에 넣었다.


“앗! 잠깐...”


홀리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세르시우스는 간신히 호두과자를 뱉지 않을 수 있었을 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혔다.


“뜨거운 거라서 식혀 먹어야 하는 건데…….”


홀리는 미안하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는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세르시우스는 그것을 겨우 삼킨 후에야 뜨거워진 입안을 데우기 위해 입으로 숨을 몇 번 들이켰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그는 스스로가 멋쩍은 듯이 웃어 보였다.


그들은 분수대 옆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며 호두과자를 먹었다. 그들 앞으로 아이들 몇 명이 와- 소리를 내며 뛰어가기도 했다. 세르시우스의 눈은 그런 아이들을 뒤쫓다가 다른데도 옮겨졌다. 호두과자가 잔뜩 담겼던 종이봉투가 깨끗하게 비어버렸지만 그들은 한참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멍하니 누군가가 가로등의 불을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세르시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털며 말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아직 저녁도 안 먹었는데.”


세르시우스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세스형! 어디 갔다 온 거야!!”


세르시우스가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링크스가 소리쳤다. 세르시우스는 그를 무시하고 자신의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해가 졌기 때문인지 침대는 더 이상 붉은색도 아니었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배고파.”


시링크스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세르시우스는 침대에 누운 채 물끄러미 시링크스를 쳐다보았다.


“세스 오빠!!”


문이 덜컥하는 소리가 들리고, 레스휘나가 질풍처럼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배고파!”


그녀는 강력하고 간단하게 그녀의 의사를 표시했다. 세르시우스는 그녀의 얼굴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제군들! 저녁식사를 사수할 것을 임명한다!”

“옛썰!”


두 동생은 세르시우스의 명령에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며 대꾸하고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세르시우스는 그들을 따라가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인지 레스휘나가 자고 있던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고개를 집어넣었다. 그는 홀리가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홀리 경? 식사하셔야죠.”


그는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홀리는 이에 대답하듯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후, 시스. 내일은 기대하라고.”


디저트로 나온 코코아를 홀짝거리던 레스휘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시링크스를 쳐다보았다.


“가끔은 시스 생각도 해줘라, 레스.”

“알았어, 큰 오빠.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녀는 걱정 말라는 듯이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꼬면서 말했다. 시링크스는 내일 그녀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못내 부루퉁한 표정으로 코코아를 마셨다.


“홀리 경은 별다른 예정이 없으세요?”


세르시우스가 물었다. 홀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볼까 해요.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하세요.”


“아뇨. 지금까지 신세 진 데다가 앞으로도 져야 할 것 같은데 또 폐를 끼치면 죄송하죠. 여행물품 같은 건 혼자 준비해도 괜찮아요.”


세르시우스는 문제없다는 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리고 간절히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던 시링크스의 염원과는 달리 날이 밝았다.


“시스!”


일어나기가 무섭게 레스휘나는 시링크스의 침대로 뛰어와 그를 격하게 흔들어 깨웠다. 마지못해 일어난 시링크스가 눈을 비비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녀는 그가 확실하게 잠에서 깰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 흔들어 댔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날이 밝았단 말이야! 소중한 24시간을 이렇게 낭비하면 어떻게 해.”


평소의 그녀 답지 않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레스휘나를 시링크스는 잠에 덜 깬 표정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시링크스가 느릿느릿 세수를 하고 돌아오자 레스휘나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커다란 상자를 건네주었다.


“받아.”

“뭔데?”


시링크스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밝은 분홍색 리본이 매듭져 있는 상자를 건네받았다. 레스휘나는 재잘재잘 말을 이었다.


“그거 입고 같이 쇼핑하러 가자.”


‘절대로 열고 싶지 않아.’


시링크스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제의 내기가 아니더라도 레스휘나의 요구라면 어떻게든 들어주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한숨을 포옥 내쉬면서 상자 뚜껑을 열었다.


“이건……!”


시링크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세르시우스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침대에 털썩 앉았다. 시링크스는 급하게 상자에서 옷을 꺼내보았다. 그 옷은 고급염료로 물들였는지 흰색에서 푸른색까지 색의 변화가 자연스러운 부드러운 비단을 사용해서 한 땀 한 땀의 간격이 조밀하고 촘촘한 게 보통 재단사가 재단한 옷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었고, 날렵하게 살린 허리 곡선과, 소매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프릴이 잔뜩 달려 있었으며, 게다가 작은 보석들이 옷의 여기저기 달려있고, 어깨와 등, 소매를 금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은, 드레스였다.


“……이걸 지금 나보고 입으라고?”


시링크스는 어이없음과 의심스러움을 반씩 섞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레스휘나를 쳐다보았다.


“응. 빨리 갈아입어. 시스는 아직 나랑 사이즈가 비슷해서 다행이야.”


레스휘나는 생긋생긋 웃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그녀는 ‘안 입으면 알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시링크스는 굳은 얼굴로 레스휘나와 옷을 번갈아 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시링크스가 레스휘나와 세르시우스 앞으로 돌아온 것은 그가 옷 갈아입으러 떠난 지 한참 후였다. 처음 입는 드레스이기에 낑낑대며 입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밖으로 걸어 나오기가 굉장하게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불편한지 옷을 둘러보며 소매를 잡아당겼다. 세르시우스와 레스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링크스를 쳐다보았다.


“생각 외로 정말 잘 어울리는데, 시스? 그거 그냥 줄까?”


레스휘나는 그에게 달려가서 이리저리 위아래로 둘러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야, 시스. 너 원래 여자였던 거 아닐까?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


세르시우스도 한마디 거들었다. 레스휘나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뒤적뒤적 새로운 상자를 꺼냈다. 먼젓번의 상자보다 약간 작은 상자였다.


“이쪽은 이 날을 위해 미리 사둔 거.”


그리고 그녀가 직접 상자의 뚜껑을 열어 시링크스에게 보여주었다. 옷에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가죽부츠였다. 시링크스는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타이트한 여성용 신발을 억지로 구겨 신고 레스휘나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세르시우스는 그들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잠시 좇았지만 그들은 금세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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