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생일파티 #12

#12

by Clare Kang

밖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커다란 창문이 달린 방에서 성 안의 중심부에 위치한 리나의 침실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색 벽지로 벽을 깔끔하게 밀어둔 방에 작은 액자가 몇 개 걸려있었다. 크고 넓은 침대 위엔 초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꽤 두터운 이불이 자리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초들 이 침대 머리맡에서 조금 먼 곳에 있는 탁자에서 아른아른한 빛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시링크스는 새삼 ‘노는 방이랑 자는 방을 따로 한다니 귀족들이란 정말 사치스러운 사람들이군’하고 생각했다.


“바이올린은 음색이 슬퍼서 왠지 싫어.”


리나는 먼지더미 속에서 캐온(?) 바이올린 케이스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시링크스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경쾌한 곡도 연주할 수 있어요.”


리나는 관심 없다는 듯이 ‘흐응’하고 콧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바이올린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주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싫어. 조금만 더 있어줘.”


리나는 고집부렸다. 시링크스는 그녀를 보며 참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늘 그러했듯이 그녀의 고집을 받아들이기로 생각했다. 대신 적막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저 같은 사람이 있었나요?”


리나는 시링크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을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본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지니스는 우리 삼촌이야.”

“네?”


시링크스는 그녀의 동문서답과 같은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삼촌이긴 한데 우리 아버지랑 같은 핏줄은 아니야. 이복 삼촌이랄까 배다른 삼촌이랄까.”


그녀는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시링크스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그녀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복동생인 거지 지니스는. 어쨌든 그는 노예상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이쪽이 아닌 다른 반쪽 피가 좀 천하 다나 봐. 우리 가문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냥 그런 식으로 밖에서 떠돌고 있는데 하는 짓이 좀 괴짜 같아.”


그녀는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에이힐튼에는 사람이 많아서 납치 혹은 유괴 같은 걸로 돈을 벌어보고 싶어 하는 무리가 꽤 있거든. 지니스는 그런 무리 사이에 알려진 감정가 같은 사람이야.”

“감정가?”


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달리 표현할 만한 게 생각 안 나네. 좀 미안하긴 하지만. 보석에도 이게 얼마짜리다 하는 감정가들이 있잖아. 지니스는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무엇을 할 만한 녀석인가, 어디에 팔아먹을 만한 녀석인가. 혹은 귀족인가, 아닌가. 이런 거.”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판단한다니 왠지 좀 웃긴데.”

“하지만 인간이니까 가능한 거지. 암탉이 수탉의 가치를 판단하듯이.”


그녀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시링크스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이상한 사람이네.”

“그러니까 괴짜라고 했잖아.”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정의의 기사이기도 하지. 너 같이 귀족은 아니지만 팔기엔 너무 귀한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 집에 보내주거든.”

“가족한테 돌려주면 간단히 해결되잖아요.”

“오오, 넌 지니스가 아무렇게나 그들 사이에서 감정가 대우를 받게 된 것 같니?”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니스는 자기 나름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거라고. 그들이 어렵게 잡아온 사람을 ‘이 사람은 귀한 사람이니 그냥 돌려보내자’라고 하면 그들이 ‘그것 참 안타깝군. 그러세.’라고 하며 돌려보내 줄 것 같니?”

“…….”


시링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겉보기엔 우리 집에 파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야. 게다가 우리 집은 에이힐튼하고는 멀고 또 그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하지만 귀한 사람이 아니라면 판다는 거잖아요?”

“응.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게 나아.”

“어째서지요?”

“지니스에게 귀한 사람이 아닌 사람은 길거리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굶어가는 사람들이거나 버려진 아이들이니까.”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그들이 비록 노예가 되더라도 밥이랑 잠자리는 보장되니까.”


시링크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우리 집에 오는 귀한 사람들은 결국엔 가족이나 지인들이 와서 찾아가더라고. 너도 그렇겠지.”


리나는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켰다.


“너 같은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네 또래의 사람은 어쨌든 처음이야.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하인들도 그럴 거야. 우리는 너를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어.”


리나는 말없이 촛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긋 미소 지으며 시링크스를 쳐다보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해 줄래? 밝고 경쾌한 곡으로.”

“물론이죠.”


시링크스는 밝게 미소했다.




작은 여관의 2인실 방, 검은 머리의 청년, 소녀, 그리고 은발의 여성이 침대와 의자 등에 제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키가 큰 노인은 청년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문가에 서 있었다.


“체스가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요.”


세르시우스가 계면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체스라고 불린 키가 큰 노인은 조용하고 낮게 입을 열었다.


“떠날 채비를 하십시오. 아소반 영지로 모시라는 주인님의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는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는 대신 자신의 용무를 간단하게 전했다.


“하지만 시스가 없는데요!”


레스휘나가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체스는 그녀의 외침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이미 시링크스님이 계신 곳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하즈가 찾았다고요?”


세르시우스가 체스를 향해 물었다. 체스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 더 이상 어떤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떠날 준비를 하십시오.”


세르시우스와 레스휘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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