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리들의 집을 소개해줄게.”
피터는 불쑥 일어났다. 아이들은 피터를 따라 와르르 몰려다녔다.
“여기로 가면 우리들의 집으로 갈 수 있지.”
피터는 다소 크기가 작은 오두막을 가리켰다.
“하지만 거긴 너무 작은데? 우린 아이이긴 하지만 여덟 명이나 된다고.”
웬디가 대꾸했다. 웬디의 말에 피터는 킥킥 웃고는 작은 오두막으로 갔다. 쪼그리고 앉아 오두막 바닥이 된 나무판자를 하나 뒤집었다. 그러자 깊은 굴이 나타났다. 커다란 토끼가 살 것 같은 굴이었다.
“자, 닙스. 네가 시범을 보여봐.”
닙스라고 불린 소년은 재빨리 굴에 뛰어들었다. 닙스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괜찮은 거야?”
웬디가 물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웬디, 너도 가볼래?”
웬디는 조금 겁이 났다. 굴의 입구로 가서보니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웬디가 굴을 들여다보는데 닙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디, 어서 와!”
웬디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닙스가 한 것처럼 굴에 뛰어들었다.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을 탄 것 같았다. 웬디는 굴을 따라 빙글빙글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나뭇잎이 잔뜩 쌓인 푹신한 곳에 도착했다. 깜깜했던 굴 미끄럼틀과는 달리 도착한 곳은 제법 밝았다. 고개를 올려보니 덤불 같은 게 엮여서 지붕 역할을하는 것 같았다. 웬디는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먼저 도착해있던 닙스가 웬디를 좀 더 안쪽으로 안내했다. 웬디의 뒤를 이어 아이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피터는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모였는데도 그리 좁진 않았다.
“여기가 우리의 집이야, 웬디.”
피터는 여전히 으스대는 태도였다. 그리고 신나게 집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하다가 갑자기 오른손으로 턱선을 쓸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웬디가 지낼 방이 없네.”
그가 말하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며 자신의 방을 양보하겠노라고 했다. 피터는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좋아. 좋아. 너희들의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웬디는 나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어.”
웬디가 깜짝 놀란 얼굴로 피터를 쳐다보았다.
“웬디가 원한다면.”
피터는 덧붙였다. 웬디는 사실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피터의 말을 거절해도 괜찮은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을 자신의 방에서 쫓아내는 것이 괜찮은지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이들은 피터의 말을 듣자 마치 그게 제일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웬디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피터와 같은 방을 쓰는 게 결정 나버린 것 같았다.
“괜찮아, 웬디?”
피터는 재차 물었다. 웬디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게 불편하고 잘못된 선택이라면 그때 다른 의견을 제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터는 다시 신난 표정을 짓고 좀 더 안쪽에 있는 방으로 웬디를 안내했다.
“자, 여기가 바로 나의 방이야. 이젠 너의 방이 될 수도 있지.”
피터가 말했다. 초록색 나뭇잎 장식이 된 문을 보니 누가 봐도 피터의 방 같았다. 피터는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난장판 같은 실내가 그들 앞에 펼쳐졌다. 웬디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가 원한다면 가구의 위치를 옮겨도 좋아.”
피터는 웬디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웬디는 피터의 안내에 따라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발을 옮겼다. 다른 아이들도 웬디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피터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피터는 턱 끝으로 주방을 가리켰다. 아이들은 알겠다는 듯 주방으로 발을 옮겼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피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며 방문을 닫았다. 피터의 방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과 더러운 시트가 입혀진 침대, 낡은 촛대와 나무로 만든 옷장 따위가 너저분하게 섞여 있었다. 그리고 먼저 들어온 팅커 벨이 요란스럽게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웬디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팅커 벨은 웬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만둬, 팅크.”
피터가 손을 내저으며 팅커 벨이 웬디를 괴롭히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팅커 벨은 이리저리 피터의 손짓을 피해 집요하게 웬디의 머리 근처를 날아다녔다. 피터는 화가 난 표정으로 반짝이는 요정을 쳐다보았다.
“괜찮아, 피터. 팅커 벨을 쫓아내지 마.”
오히려 웬디가 피터를 말렸다.
“웬디 덕분에 안 쫓겨나는 줄 알아.”
피터는 웬디의 말에 입을 삐죽이며 팅커 벨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팅커 벨은 더는 웬디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지는 않았지만, 피터의 방을 이리저리 소란스럽게 날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