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를 방문하다
경찰서에 가기 전에 뭔가 따로 필요한 게 없는지 다시 살펴봤다. 무엇보다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것은 신분증과 은행의 송금 확인증을 가져가야 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도장을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없으면 오른쪽 손가락의 지문을 도장 삼아 찍는다) 제출할 수 있는 자료를 최대한 모아야 해서 판매자가 올린 게시글과 문자 및 쪽지를 주고받은 내역을 캡쳐해서 인쇄했다. 또한 판매자의 아이디 및 전화번호, 계좌번호를 토대로 다른 사기 내역은 없는지 검색했다. 물론 이게 거래 전에 선행된 것이라면 좋았겠지만 이미 사건이 일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침착하고 담담했다. 그래서 마치 회사 근처 카페를 어슬렁거리듯 지갑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한 손에 음료가 담긴 텀블러를 들고 제출서류를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경찰서를 향해 털레털레 절었다. 경찰서의 업무가 몇 시까지 할지 몰라 일단 무작정 경찰서를 방문했고, 민원실에서 먼저 진정서를 접수했다. 진정서는 진정인(나)과 피진정인(내 케이스에는 사기 판매자)의 간략한 신상과 사건 경과 등을 쓴다. 진정서를 다 작성한 다음 안내를 받아 입구에서 출입증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 범죄라 그런지 ‘경제범죄수사과’로 안내를 받았다. 경제범죄수사과로 가는 길은 한적했다. 미디어를 통해 보던 강력과가 아니어서 그런지 험악하거나 시끄럽거나 하는 분위기는 확연히 아니었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사무실 입구로 갔는데 번호키가 있어서 여길 들어가도 되나 잠시 망설였다. 살짝 밀어보니 열린다. 그래서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는 담당 경찰관 앞에 앉았다.
이제 진술서를 작성할 차례다. 3-4장 정도 되는 진술서에 사건의 내역과 내가 알고 있는 판매자의 정보를 쓴다.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거래다 보니 모르는 정보도 분명 있는데 이 부분은 비워두면 된다고 한다. 아는 대로 상세히 진술서를 작성하고 나면 준비해 간 도장을 찍는다. 나는 회사에서 사건을 겪고 또 바로 당일 경찰서를 방문했기 때문에 도장이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손가락에 빨간 인주를 묻혀 도장 대신 찍었다.
내가 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 담당 경찰관은 지급정지 요청을 한다는 전화를 했다. 로맨스 피싱이 어쩌고 하면서 지급정지 요청을 하는 것을 보니 은행에 전화하는 것 같았다. 관련 서류를 잔뜩 들고 있었는데 그 서류는 다 피해자에 관련된 것 같았다. 사기 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근데 이 사건 오늘 발생한 거네요?
경찰관이 제출한 증거 내역 중 입금내역을 확인하며 물었다. 가끔 판매자의 사정으로 의도하지 않게 연락 두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네가 너무 마음이 급했던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담긴 물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같은 아이디, 계좌번호, 전화번호로 피해가 있는 것을 이미 검색을 통해 찾았고, 사진이 도용되었다고 사진 게시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컴퓨터를 통해 몇 건 검색을 해보더니 다시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간식이 원래 이렇게 비싸요?”
이번에는 진술서에 작성된 피해 물품과 금액을 보고 경찰관이 물었다.
“여러 종류를 여러 개를 샀어요.”
“아아 그렇구나. 고양이도 돈이 많이 드네요.”
“동물 키우세요?”
“아, 네. 강아지 키워요.”
경찰관이 대답했다. 뭔가 일로 만난 사이지만 그래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어떤 강아지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음, 잘 아시려나? 킹 찰스 스패니얼이에요.”
“아, 알아요. 알아요.”
이직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견종이긴 했다. 하지만 펫트너 사무실에서 만난 킹 찰스 스패니얼인 드림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정말 귀여운 친구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경찰관은 다시 사건에 관해 설명해줬다. 이 사건은 판매자가 사는 곳을 추적해서 해당 지역으로 이관이 될 것이며, 이 사건은 피해자가 더 있는 것 같으니 다른 피해자가 신고할 경우 모아서 함께 수사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고 추가로 덧붙였다. 어차피 빨리 끝날 것 같진 않아 시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