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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e Kang Dec 05. 2018

열아홉 번 밤의 이별

처음으로 춘수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춘수와 나에게로 온 지 약 500일 정도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때의 나는 이직 준비로 한창 바빴다. 심지어 내 새로운 직장은 입사와 동시에 미국 출장 일정이 함께 잡혀있었다. 약 3주간 미국 동부에 다녀와야 했다. 내 기억 속의 미국은 항상 급하게 준비해서 떠난 나라였다. 특히 미국 동부에는 내 친척들이 꽤 살고 있었고,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야 했다. 나는 출국 하루 전에 근처 면세점을 급하게 들려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춘수와 같이 가기엔 출장 기간이 다소 짧기도 짧았거니와 무엇보다 여러 가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고양이가 해외에 다녀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나보다 훨씬 많았고, 무엇보다 나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부모님은 같이 계시니 춘수에게 아주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떨어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면 문가에 앉아 졸린 눈으로 기다리는 너였는데. 내가 안 오면 영영 문가를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이렇게 밤새 기다릴까 봐 눈물이 핑 돌았다. 뭐라도 말해서 설명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춘수와 마지막 밤을 보내는 침대에서 웬일로 춘수가 내 옆에 나란히 누웠다. 나를 쳐다보는 그 모습에 결국 울컥하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나는 춘수를 옆에 두고 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춘수는 알겠다는 듯 내 옆에서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몇 밤만 자고 돌아올게. 돌아올 거야. 


춘수는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다만 그날 밤은 평소와 달리 꽤 오래 내 곁을 지켰다. 나는 잊지 않고 춘수의 사진과 털로 만든 팔찌를 챙겼다. 출국일 아침에도 떨어지는 게 싫어 춘수의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긴 비행시간 동안 고양이가 보고 싶어 사진을 봤는데, 사진을 보니 고양이가 더 보고 싶었다. 털로 만든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별달리 위안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도 결국 소리 없이 울었다.


미국에서의 첫날은 당연하게도 다소 어수선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사무실도 들렸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필요한 먹거리도 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일, 새로운 동료, 그리고 새로운 환경. 적응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첫날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침대에 누우니 피곤이 쏟아졌다. 그대로 누워 잠들었다. 


그리고 시차 때문인지 새벽에 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돌아누워 핸드폰을 보는데 뭔가 어른어른거렸다. 춘수인가 했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새삼 내 옆에 고양이가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올랐다. 고양이가 너무 그리웠다. 나에겐 너무 긴 월요일이었다. 


한국에 아침이 찾아올 무렵, 집으로 영상통화를 했다. 제일 먼저 고양이 안부를 물었다. 고양이는 잘 지내고 있단다. 시차 때문인지 복잡한 마음 때문인지. 기약 없는 이별도 아닌 고작 3주를 떠나온 건데 밤새 내 고양이를 그리워했다. 


네가 나를 잊지 않기를.

그렇지만 네가 나를 너무 그리워하며 기다리지 않기를.


열아홉 번의 밤을 지나면, 다시 너에게 돌아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적응을 그럭저럭 했을 때도 마음은 늘 고양이를 그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틈틈이 가족들과 페이스타임을 했다. 요즘은 내가 없어서 엄마 옆에서 잔단다. 묘하게도 다행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내가 없는데 잘 먹고 잘 산다니. 난 이렇게 네 생각만 해도 힘든데 말이야. 그래도 밤새 울지 않아서 다행이다. 밤새 기다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고, 아무 탈 없어서 다행이다. 


오랜 시간 고양이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귀국길에 오르자 설렜다. 하지만 귀국과 귀가는 생각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분명 현관까지 마중 나온 고양이를 보며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내가 온 것이 믿기지 않는지, 혹은 내가 다시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몇 번이나 나를 확인하며 따라다녔다. 그런 모습에 기쁘고 행복했던 것은 맞지만, 고양이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지새웠던 밤이 너무 과분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양이를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에 연민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습의 나를 좋아했고, 불쌍하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어떤 노래 가사처럼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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