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일도, 집도, 차도 없지만 무작정 뉴욕으로 왔다.
9-10월쯤 원서 개혁?을 한 차례 한 이후로 서류 통과는 잘 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인터뷰는 여전히 어렵다.
열심히 준비하고 나서도 막상 인터뷰가 끝나면 후회한다. 아, 이 질문에는 이런 단어를 쓰며 답할 걸, 좀 더 센스있게 받아칠 걸... 확실히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하다.
이번주에 결과가 나오는 곳이 한 군데 있다.
DC에 위치한 National Democratic Institute이란 엔지오인데 직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 하는 일도 유엔의 연장선이며 내 career path와도 유관해서 만약 된다면 이리로 가고 싶다.
유진이 집에서 머문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
시차적응과 엇갈리는 스케줄 때문에 아직도 제대로 밥을 먹으면서 딮톡하지 못한 것 같다. 또, 유진이가 엄청 외향적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집순이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집에 오래 있는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
UN Women에서 3주 휴가가 어제 시작됐는데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니 당황스럽다.
백수여도 좀 기품있게, 운동도 하고, 카페가서 독서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했는데 그게 다 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뉴욕 물가는 정말인지 최악이다. 짐바브웨 물가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뉴욕은 짐바브웨 2.5배이다. 망할놈의 세금과 팁 문화.
이상하게 요즘 네일 아트에 꽂혔다. 방금 엄지 손가락을 칠해서 일기 쓰는게 어렵다.
어느덧 2021년 끝자락이다.
한달 후면 28이 된다.
어우 - 내가 상상했던 28살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28살이면 어른이 되고도 한참 후의 나이같다. 그치만 28살을 한 달 남긴 나는 안정적인 직업도, 내 집이라고 할 곳도, 배우자도, 모아놓은 돈도 없다.
다른 사람들도 다 준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겠지라는 자기 위안을 해본다.
10월, 11월, 매일 짐바브웨 오피스를 나가면서 바빴는지 일기를 한 장도 못 썼다.
바쁘긴 했다. 11월에 각종 행사가 몰렸으니. 또 잡 써칭이 한창이기도 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짐바브웨를 떤난다고 생각했을 떄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아쉽고 그랬는데 지금은 또 아무렇지 않다.
2주 정도 머물렀던 한국 생활도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확실히 한국에 사는게 편하다.
Mainstream의 삶. 이방인이 아닌 삶. 부모님의 따듯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 삶.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자주 해외로 나가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아진다.
부모님과의 사이도 점점 좋아짐을 느낀다. 이번 2주 동안은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와도 아빠와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두 분의 생신을 성공리에 축하드렸고 특히 아빠랑 더 깊은 속내를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2022년 새해에는 새로운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이 일기장을 한 번 더 펼쳐볼 일이 있을까 싶다. 아직 대여섯장 정도 남았지만 새해는 새로운 일기장으로 시작하고 싶다.
지난 1년간 크 위안이 되어준 일기장.
힘들 때, 지칠 때, 혼란스러울 때마다 한 자 한 자 내 느낌과 생각을 써내려갔고
끝날 때 쯤이면 생각 정리가 많이 되었다.
2022년에도 꾸준히 일기를 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