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무엇'이 아니다

190824(토) 바르셀로네타, 몬주익 매직분수

by 여행일기

시내에서 2~3km만 가면 바다가 있다는 건 바르셀로나가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지중해 하면 생각나는 그림을 기대할 만큼은 아니지만 물놀이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다. 해변 바로 앞에 마트가 있어 바가지를 쓸 염려도 적다.


햇살은 한국보다 뜨겁지만 습하지 않아 불쾌지수는 낮다. 물론 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햇볕에 탄 자국만 봐도 전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햇빛이 강하다는 것은 기억해둬야 한다.


저녁에는 몬주익에서 음악이 나오는 분수쇼를 즐겼다. 서울에서도 분수가 나오는 곳을 자주 지나가곤 했지만, 가만히 앉아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만을 바라보는 데 집중했던 순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같은 경험을 반복하면서도 살던 곳에선 하지 않던 새로운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게 여행이다.


살던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행지에서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자주 지나는 곳은 눈여겨보지 않고 지나친다. 하지만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자각하고 현재 일어나는 일에 몰두하게끔 하는 것이 여행이 일상과 다른 점이다. 여행자에게는 오늘 뭐 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다양하게 지어내는 능력이 있다.


서울에서는 시간에 쫓겨 20분 안에 밥을 먹고 다시 일하는 날도 많았다. 공무원 시절에는 밥 먹으러 나갈 시간도 없어 도시락을 배달시켜 먹거나 1명이 나가서 햄버거를 사 오면 그걸로 팀원들이 같이 끼니를 때우던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식사는 그저 일을 지속하기 위한 연료를 주입하는 작업이었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기는 싫었다.

1.jpg 여행을 결정하는 것. '무엇인지'가 아니라 '어떤 마음인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건 일터에선 화장실 가는 시간에 견줄 만큼 짧았던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고, 수단에 불과했던 것들이 목적이 되는 삶을 잠깐이라도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음식은 대체로 수단이기보다 목적이다. ‘먹방 투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무엇을 위한 과정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


음악을 들으며 분수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몬주익에서 보는 매직 분수쇼가 반포대교 음악분수보다 더 아름다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다르니 같은 분수도 다르게 보인다. 몬주익 언덕을 돌아 황영조 기념비와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볼 수 있어서 더 뜻깊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보고 스포츠에 빠져들기 시작해 스포츠기자까지 했던 나에겐 다른 어떤 장소보다 깊은 의미가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르셀로나에서 박하사탕을 떠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