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04(수) 말라가-코르도바, 메스키타
코르도바는 스페인에 오기 전까지 들를지 말지를 두고 고민했던 곳이다. 코르도바에 가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우선 가는 것부터가 수많은 변수들의 연속이었다. 말라가 숙소에서는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걸었다. 걸어서 15~20분 거리였는데, 그 이상으로 시간이 남아 있어 음료수 하나 정도 사 먹고 버스에 타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라가에서 각지로 가는 버스들이 다 있었지만 코르도바로 가는 버스만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버스가 출발할 시간까지는 10분 남짓 남았는데 이 터미널이 아니면 곤란하다. 다급한 마음에 버스 회사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로 가 “코르도바?”라고 물으니 이 터미널이 아니라고 한다. 의구심이 같은 크기의 절망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냐고 되물으니 이틀 전 론다에서 말라가로 올 때 내렸던 기차역 뒤편이란다. 그 역까지는 1km 정도였다. 남은 시간을 고려하면 뛰어도 닿기 힘든 거리다. 짐이 무거웠고, 가는 길에 횡단보도도 있어 멈춰야만 하는 시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답은 택시였다. 택시 앱을 켰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택시를 부른다 해도 7~8분 안에 코르도바행 버스 앞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마침 눈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보이는 택시를 잡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보행자 신호가 걸려서 서 있던 택시에 탈 수 있었다. 휴대폰에 저장해둔 버스 승차권 사진을 보여주며 시간 안에 터미널에 도착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스페인 기사는 느긋했다. 걱정하는 나를 보며 코르도바까지 택시로 가는 건 어떠냐는 농담까지 던졌다.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어도 안 통하는 양반이었다. 괜히 밉보였다간 버스 시간 1분 뒤에 터미널에 내려주지는 않을까 싶어서 싫은 내색도 하면 안 됐다. 무지가 두려움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소비자가 갑인 상황은 끝난다. 길도 모르고 목적지까지 원하는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더 모르는 상황. 운전수에 기대야만 했던 내 마음은 종교적 믿음에 가까웠다.
매 초가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던 핸디캡 속에서도 느긋한 기사는 능숙한 운전으로 버스 시간보다 2분 빠르게 나를 터미널에 내려줬다. 7유로를 주고 도망치듯 떠나는 나를 불러 거스름돈까지 챙겨준 기사를 뒤로하고 남는 2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플랫폼 찾기였다. 다행히 입구에서 코르도바행 버스가 있는 곳을 발견했고,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친 버스회사 직원이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낸 뒤부터는 뛰지 않고 유유히 걸어서 짐과 몸을 차례로 버스에 실었다.
기분 좋은 흥분으로 바뀐 안도감은 말라가에서 코르도바까지 가는 2시간 동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도착 후 숙소까지는 걸어서 갈 거리였고, 짐을 풀어놓은 뒤 씻고 조금 쉰 다음 거리로 나섰다.
사람들은 메스키타(Mezquita)를 보기 위해 코르도바를 찾는다. 스페인어로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뜻하는 메스키타는 코르도바에만 있지는 않지만, 이곳의 메스키타는 관광객을 불러 모을 만큼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 안에 가톨릭 성당이 들어가 있는 초유의 창작이다.
여기엔 또 들으면 그럴싸한 사연이 숨어 있다. 국토회복운동이 끝난 뒤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이슬람 왕국을 대표하는 메스키타 안에 가톨릭 정신의 뿌리를 박아 넣은 것이다. 수세기 뒤 타국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려는 목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지만, 당시 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곳은 관광지가 됐다. 때로는 무리수로 보이는 것도 역사가 되고 볼거리가 되고 돈이 된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을 여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