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 미술관은 바깥만 한 바퀴 돌면 된다?

190911(수) 마드리드-빌바오, 산마메스, 구겐하임 미술관

by 여행일기

스페인은 크게 카스티야, 카탈루냐, 안달루시아, 바스크 등 여러 지역으로 나뉜다. 카탈루냐에서 시작된 나의 여행은 안달루시아와 카스티야를 거쳐 바스크까지 이어졌다. 오전 이른 시간에 마드리드를 떠나는 기차를 타고 5시간가량 지나 도착한 곳은 바스크의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인 빌바오였다.


바스크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빌바오를 대표하는 축구팀 아틀레틱 빌바오는 이 지역의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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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팀은 바스크 출신 선수만 쓴다. 타 지역 선수는 영입하지 않는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독특한 순혈주의가 낳은 장기계약 사례도 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지난 2018년 초 이나키 윌리엄스와 7년 재계약을 맺었고, 1년 뒤 계약기간을 2028년 6월까지 연장했다. 1994년생인 윌리엄스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계약이다. 가나인 아버지와 라이베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바스크 혈통은 아니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이 빌바오였던 덕에 바스크인으로 인정받았다.


고집에 가까운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기도 하다. 스페인 프로축구 1부리그(프리메라리가)에서 한 번도 강등을 당하지 않은 팀은 단 셋인데, 사람들에게 세 팀을 대라고 하면 셋 중 두 팀이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서도 나머지 하나를 두고 답이 엇갈린다. 나머지 한 팀이 바로 아틀레틱 빌바오다. 프로스포츠에서 구단이 내세우는 명분이나 방침, 가치는 성적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이 팀이 바스크 출신 선수만으로 팀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계속 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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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내가 탄 기차는 빌바오에 섰고, 숙소만 잠시 들렀다가 짐만 놓고 바로 향한 곳도 아틀레틱 빌바오의 홈구장 산마메스(San Mamés)였다. 2013년부터 쓰기 시작한 신축구장 산마메스는 완다메트로폴리타노와 함께 스페인에서도 손에 꼽을 멋진 새 축구장이다. 유럽 전역에서 열리는 유로 2020(4년마다 열리는 UEFA 유로 대회는 매 대회 개최국이 있지만, 2020년 대회는 대회 60주년을 맞아 유럽 전역 12개 도시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최는 연기된 상태다.)의 무대로도 활용될 곳이기도 하다. 스페인 구장 중에서는 산마메스에서만 유로 2020 경기가 열린다.


스페인 축구장을 여러 군데 다녀보니 세계적 빅클럽과 지역 내에서만 인기가 있는 팀을 구분하는 기준이 한 가지 더 생겼다. 경기장 투어를 할 때 직원이 가이드가 되어 설명을 해주면서 안내하는 팀들 중엔 세계적인 빅클럽이 없었다. 빅클럽은 설명이 필요 없는 팀이기 때문일까?


아틀레틱 빌바오의 경우 직원이 투어 손님들을 이끌고 다니며 이해를 도왔다. 이 팀이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같은 빅클럽은 아니라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으나 직원의 이야기에서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다소 배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스크의 순수성을 이어가면서 강등되지 않고 쌓아나가는 시즌들이 더 누적되다 보면 언젠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레스터시티가 만든 동화 같은 시즌도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조금 여유 있게 도시를 둘러보고 싶었지만 빌바오에서는 1박만 하기로 한 터라 경기장을 나온 뒤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에 가야 했다. 구겐하임은 하루 전에 갔던 프라도와 달리 현대미술의 경향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앤디 워홀을 비롯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이곳에서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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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술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현대미술은 더 난해하다. 그리고 난해한 현대미술은 현지인에 비해 한 자리에 서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행자에겐 더더욱 불친절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현대미술은 불친절하다는 명제가 거짓이 되기도 한다. 미술관 외부에 설치된 조형물들의 직관적 아름다움은 알기 힘든 상징과 함의로 가득한 작품과 초심자 사이에 놓인 높고 단단한 벽을 조금이나마 허물어준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보기에 예쁘거나 친숙한 것들은 문 밖에만 있어서 입장료 내고 들어갈 필요 없이 바깥만 한 바퀴 돌면 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미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작가들이 만든 대중 친화적 조형물들은 어쩌면 나도 현대미술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금방 깰 게 확실하지만, 잠시라도 착각 속에 빠져 있을 때 인간은 비루한 현실을 잠시 잊고 예술이 주는 위안에 몸과 마음을 맡길 준비를 더 쉽게 마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니 외부 조형물들이 일종의 애피타이저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굳이 먼 곳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까지 가서 애피타이저만 먹고 오긴 이래저래 아쉽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깥만 한 바퀴 돌고 내부엔 입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엔 아무래도 동의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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