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찍어준 사진은 왜 형편없을까?

190912(목) 빌바오-바욘, 비아리츠

by 여행일기

마드리드를 떠난 지 정확히 24시간 만에 빌바오를 떠났다. 빌바오에서는 오전 8시에 버스에 올라타 2시간여를 지나 프랑스 남부 해변을 볼 수 있는 바욘으로 갔다. 스페인과 프랑스 모두 솅겐조약(유럽연합 회원국 간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국경 개방 조약)으로 묶여 있어 국경을 넘어도 검문 절차가 없고, 여권에 새 도장도 찍히지 않는다. 화폐도 유로화로 통일되어 있어 도로 위 표지판에서 유독 하이픈(-)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프랑스에 왔다는 걸 실감케 하는 요소는 없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북한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는 이 역시 신기한 일이다. 40명이 탄 차가 국경을 넘는데 아무도 잡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가 내린 곳에서 숙소까지 걸어서 15분에 불과해 낯선 언어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스페인어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단어 몇 개라도 아는 것이 여행자의 자신감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 전 정비를 마치는 도시 정도로 의미가 축소되어 있지만, 바욘은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유명 휴양지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비행기로 파리까지 온 순례자들이 며칠 시내 구경을 한 뒤 바욘으로 와서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하고 생장삐에드뽀흐(이하 생장)로 이동해 그곳에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800km 가까운 거리를 걸어간다.


바욘에서 묵었던 숙소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이주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순례길 애플리케이션에 나오는 숙소 이름이 주인장 이름(Socorro Aguirre)과 같은데, ‘socorro’는 스페인어로 구조를 요청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하면 “사람 살려!”같은 거다. 검색해보니 콜롬비아 중부에 소코로라는 도시가 있고, 미국 뉴멕시코주와 텍사스주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도시가 있다. 주인장 성만 보고 중남미 출신일 거라 짐작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2016년 말부터 3개월 동안 남미 일주를 해서 그런지 마음의 거리가 멀지 않았다. 이 할머니도 내가 콜롬비아에 다녀온 적 있다고 하자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1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60대 이상 자영업자가 자리에 앉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대부분 자식 자랑으로 끝나는 건 만국 공통이다. 이 집에서 나갈 때쯤이면 할머니 슬하 1남 1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한국에서 택시를 적잖이 타봐서 적절한 리액션과 질문을 곁들이며 잘 넘어갈 수 있었다. 할머니가 영어를 못해서 조금은 다행이었다.


다시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 얘기하자면, 할머니는 여권을 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날 자리에 앉힌 뒤에 먹거리부터 내왔다. 11시~12시 사이 어정쩡한 시간에 이것저것 먹으니 점심을 따로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시간을 벌었다.


우선 한 달이 넘는 걸음을 위한 장비를 사야 했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비아리츠 해변을 보려는 계획이 있었다. 내 계획을 궁금해하던 할머니는 나를 스포츠용품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빠르게 쇼핑을 마쳐 일정이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렀다. 알아듣기도 힘든 스페인어로 하는 이야기를 1시간 넘게 들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건 순전히 이때 들었던 고마운 감정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쇼핑까지 예정보다 일찍 끝낸 뒤엔 각종 트레킹 용품이 든 가방을 손에 쥐고 비아리츠 해변으로 갔다. 스페인에서 본 해변과는 또 다른 파도가 나를 바다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순례길을 앞두고 빨랫감을 더하고 싶지 않아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대신 사진은 평소보다 많이 남겼다.

이 해변은 내가 ‘외국인이 찍어준 사진이 형편없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장소로도 기억에 남았다. 한국 여행자들은 사진을 부탁할 때도 되도록 한국인에게 맡기려고 한다. 해외여행 중 외국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본 사람이라면 사진이 흔들린 채로 나오거나, 내가 원하는 구도와 달리 배경이 어딘지도 모르게 내 전신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사진을 받아 들고 당혹스러웠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의문조차 사라져 사진을 찍을 때면 한국인만 찾게 된 베테랑 여행자는 비아리츠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우연히 발견했다. 해변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한 서양인 남성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해변을 배경으로 허리 위로만 나온 전형적인 ‘한국식 인증샷’을 원했는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남의 카메라를 받아 든 이 남자는 지시를 무시하고 전신을 담았다. 뷰파인더 속 하늘과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위치는 돌로 된 난간이 차지하고 있었다.


사진 속 웃고 있는 나와 사진을 확인하는 내 표정의 불일치를 눈치챈 남자는 다시 찍고 싶은지 물었고, 이미 속마음을 들킨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상체만 나오게 다시 한번만 찍어달라고 솔직히 전했다.


그러자 이번엔 다소 놀란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되묻더니 이전 사진보다 조금 구도를 올려서 찍어줬다. 내가 신은 신발 브랜드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만 살짝 올렸다. 이번에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돈 주고 고용한 사람도 아닌데 세 번이나 시킬 수 없어서 OK 사인을 냈다.


시종일관 정중하고 친절했던 이 독일인 중년 남성은 “독일에서는 전신이 다 나오게 찍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왜 그렇게 찍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상반신만 나오게 찍어달라는 내 부탁이 얼마나 자신을 놀라게 했는지 설명했다.


이 아저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외국인들이 그저 성의가 없거나 사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껏 여행하며 외국인들이 찍어준 사진을 보면 일관적으로 사진 안에 사람의 전신이 들어가 있다. 내 부탁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믿는 ‘사진의 모범적인 예’의 틀을 깨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날 담아주려 했던 것 같다.


이후엔 숙소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숙소로 왔다. 내가 저녁을 먹었다는 걸 알 리 없는 할머니는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들어온 나에게 저녁을 차려줬다. 한국인이라면 저녁을 먹은 뒤였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저녁 먹기 이를 수도 있는 시간. 그게 8시였다. 덕분에 저녁을 두 번 먹었다.


같이 식사한 사람 중 50대는 돼 보이는 프랑스 남자도 있었는데, 자기 지역 방식이라며 수프를 다 먹은 접시에 와인을 약간 따라 마시고는 같이 앉은 사람들에게도 해보라고 권했다. 얼핏 역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템플스테이를 할 때 다 먹은 밥그릇을 단무지로 닦고 물을 부어 마신 기억을 떠올리며 흉내를 내봤다. 물 대신 와인이 섞인 것이 큰 차이긴 했으나 침전물이 있는 막걸리라 생각하면 그것도 생경하지 않다.


식사가 끝난 뒤 할머니는 자신과 저녁을 함께한 손님 3명에게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았는지 누구도 빼지 않고 그릇을 치운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세비야에서 숙소 스태프와 했던 게임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할머니와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없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던, 한국과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고 영어를 포함한 네 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 영어와 스페인어를 번갈아 쓰며 할머니와 나 사이에서 통역을 맡았던 크로아티아 청년, 이미 몇 해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고 이곳에서 나에게 템플스테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프랑스 아저씨와 함께 2시간 동안 웃으면서 게임을 즐겼다. 프랑스적인 것 별로 없는 프랑스에서의 첫날은 꽤나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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