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3(금) 바욘-생장삐에드뽀흐
두 발만 있다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바욘을 방문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나와 같은 생각으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장비보다 중요한 건 건강한 몸이다. 단순하고 뻔하고 진부한 얘기지만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 잠시 잊었던 단순한 진리를 뼈저리게 체감했다.
바욘 숙소 주인 할머니가 추천해준 집에서 점심을 기분 좋게 먹고 나오던 길이었다. 바욘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왼쪽 발목이 크게 꺾였다. 넘어지는 순간 걱정의 크기가 통증을 덮고도 남았는데도 아플 정도로 큰 통증이었다. 내일부터 하루 3만 보 이상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인 발목을 출발 하루 전에 다쳤으니 청천벽력이었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왔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 만큼 기분이 한순간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일단 억지로 걸어 바욘역에 도착한 뒤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지점이 있는 생장삐에드뽀흐(이하 생장)으로 가는 기차를 탔지만 불길한 생각만 커질 뿐이었다.
생장에 도착해서도 순례자 여권을 받고 기본적인 준비까지 마친 뒤엔 약국부터 들렀다. 걷기 하루 전 최종 점검을 위해 원래 와야 할 곳이기는 했지만 구입할 품목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지갑은 가벼워지고 가방은 무거워졌다. 좀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남들 것보다 무거웠던 내 가방에 바르는 소염제, 테이프까지 추가됐다.
몸도 마음도 최악의 상태로 출발하게 됐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여러 도보 루트 중 내가 선택한 프랑스길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를 가르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첫날이 제일 난코스다. 아마도 이번 여행 전체에서 발목이 가장 아플 날에 난코스를 만났다. 고난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오고, 버거운 적은 내가 약할 때 찾아온다. 가볍게 왔던 여행인데 어느덧 마음에 내려앉은 짐이 어깨에 올린 짐보다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