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5(일) 론세스바예스-수비리
코스만 보면 론세스바예스까지 오는 길이 더 험난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코스의 험난함이란 날씨나 피로 누적이라는 변수를 생략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만큼 걸어서 만든 자신감으로 쌓인 피로를 걷어내기는 역부족이었고,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길이 힘들다는 말이 수비리로 가는 걸음은 쉽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표현은 대부분 상대적이지만 인간의 감각은 절대적이다. ‘힘들다’는 세 글자의 스펙트럼은 무한에 가깝고 덜 힘들다는 말은 ‘그래도 어제보단’이란 말을 감추고 있었다. 길 위에서 쉬운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래도 이틀째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부분이다. 첫날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도 조금씩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림을 보면 이목구비를 안 봐도 한국인을 구분할 수 있다. 나도 출발하기 전 정보를 나름대로 많이 수집했고, 그 시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짐을 꾸리고 장비를 챙겼다. 가방 무게를 7kg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절대적 가르침은 내 욕심 때문에 따르지 못했지만 필요한 장비들은 비교적 빠짐없이 들고 왔다. 발목 부상을 예측하지 못해 치료에 쓰일 물건들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많아 문제는 없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말하는 대로 비슷하게 짐을 싸고 옷을 입었다. 그래서 더 쉽게 구분된다.
반면 외국인들, 특히 유럽 사람들은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자기 나이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듯 보이는 중년 남성에게 가방 무게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15kg 이상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일은 예사다. 한국인들이 권장하는 무게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옷차림 역시 마찬가지다. 완벽에 가까운 트레킹 복장을 착용하고 나타난 우리와 달리 단추를 채워야 하는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땀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소재로 된 옷도 흔하다. 그냥 사무실에서 입어도 될 옷차림 그대로 가방만 메고 온 사람들 같다. 신발도 샌들이나 러닝화 차림으로 나타나 등산화, 트레킹화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무엇이 더 낫다고 단언할 순 없겠으나 다양성 면에서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지나친 비약일진 모르지만 천편일률적인 복장, 순례길 준비 과정은 실패를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일견 씁쓸한 기분도 든다. 순례길엔 정석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는데, 우린 가끔 정석과 정답을 혼동하곤 한다.
‘아님 말고’나 ‘안 되면 다음에 다시 하지’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 내가 생장에서 휴식 대신 걷기를 강행한 것도 뭔가 처음부터 낙오하는 감정을 갖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있어서 아직 우리는 뒤처져 있다. 이곳에선 특정 브랜드 양말을 꼭 신어야 한다고 말하는 집단에서 온 나는 가늠조차 힘들 정도로 다양한 모습들이 길 위에 실재했다.
물론 한국인만큼 조직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집단은 없다. 남들이 겨우 숙소에 도착해 씻고 빨래를 널어놓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이미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다. 다른 나라 순례자들은 한국인이 다 먹고 설거지해놓은 냄비와 프라이팬으로 분주히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일장일단이 있으면서도 참 흥미로운 생각과 문화의 차이다.
작은 다리 하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작은 마을이 전부인 수비리에 도착하던 날, 낮에는 비도 내렸다. 비가 오면 대낮에 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지만, 빨래를 미리 넌 사람에겐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긴다.
어차피 날씨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론세스바예스를 떠난 뒤 잠시 걷다가 보인 바에서 카페콘레체와 크루아상으로 아침을 대신했는데, 이때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한국인 남매와 같이 걷고 저녁까지 같이 먹기로 약속을 한 터라 빨래 걱정은 잠시 미루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날 처음으로 당황시킨 일은 여기서 일어났다. 알베르게 현관문을 열었을 때 전날 생장에서 만난 사람에다 나까지 총 4명이 있어야 했는데 문을 여니 4명이 아닌 10명이 서 있었다. 우린 모두 숙소가 달랐고, 각자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을 합류시킨 것이다. 내가 묵던 숙소에서도 마침 나와 같은 타이밍에 나온 이들이 있어 대규모가 됐고, 다행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같이 밥을 먹기로 한 남매는 예약 없이 들른 숙소 가격에 저녁식사,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포함되어 있어 함께할 수 없다고 해 8명만 근처 바로 이동했다.
처음에 같이 밥 먹자고 얘기 꺼낸 사람이 나라서 졸지에 8명을 이끄는 처지가 됐다. 반 장난으로 이들이 날 조장이라고 불렀고, 그 단어 하나에 손발이 묶여 바에 들어가서 주문부터 결제, 식사비 정산까지 도맡아야 했다. 나를 제외한 7명 중 6명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서로가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이런 일에 익숙한 성격이라 괜찮았지만 이런 자리를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찔하고 난처했을 시간이다.
계속 삐걱거렸지만 결국은 별일 없이 마무리되곤 했던 삶의 많은 날들처럼,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또 한 번의 식사, 또 하루가 탈 없이 저물었다. 저녁을 함께하지 못한 남매와는 저녁 9시에 만나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했다. 모든 손님이 내일 새벽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고 상주인구도 많지 않은 동네라 10시 이전에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해 30분 남짓 앉아 대화한 게 전부였지만 지나가다 계속 보게 될 것 같아 거한 작별인사 대신 잘 들어가라는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