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6(월) 수비리-팜플로나
지난 이틀 동안 걸은 길보다 쉬운 길이다. 거리도 20km 남짓이라 전날보다 더 짧다. 하지만 발목 염좌로 이틀 연속 짐을 보내는 동키 서비스(아침에 숙소에서 다음에 갈 숙소까지 짐을 운반해주는 서비스로, 지역과 거리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하루 동안 멀리 가야 하거나, 짐이 무겁거나, 혹은 다쳐서 부담이 있는 순례자들이 주로 이용한다.)를 이용하다 처음으로 직접 짐을 짊어진 날이었고, 금방 갈 것 같아서 자만한 탓에 생각보다 도착이 늦어졌다. 잦은 휴식 역시 독이 됐다.
오전 7시에 출발해 오후 1시~1시 30분 도착이 목표였지만 실제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군대에서 행군하던 기억대로 1시간에 4km 이동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중간 휴식이 1시간에 육박할 것이라는 점은 예견하지 못했다. 간식 먹고 아는 얼굴 만나 잠시 대화하다 보면 1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수비리를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 팜플로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묵는다. 그래서 숙소에서 나올 땐 혼자였지만 이미 만난 적 있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만난 이는 하루 전 같이 맥주를 마셨던 남매였다. 처음 만났을 때는 캘리포니아에서 혼자 오신 아주머니까지 함께였지만 그 아주머니는 좀 더 이른 시간에 떠나고 둘만 나와 마주쳤다. 약간의 친분이 생긴 터라 같이 걷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고, 팜플로나까지 계속 함께했다.
중간에 휴식하던 바에서는 수비리 저녁 멤버들이 합류했다. 6명이 된 우리는 먼저 팜플로나에 도착하는 소그룹이 공립 알베르게 자리를 맡아주기로 했다. 순례길에서는 가족이 같이 와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다. 갈 숙소만 미리 정해두면 거리가 멀어져도 결국 낮에는 만난다. 휴대폰으로 연락이 가능한 세상이라 일행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 없다.
공립 알베르게는 사립과 달리 예약이 불가능한 대신 먼저 간 일행이 결제까지 해주고 뒤에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건 가능하다. 나와 남매까지 3명이 빠른 그룹이었고, 이후 오는 3명이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도착할 것 같았다.
팜플로나는 생장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처음 마주치는 대도시다. 2~3층 건물(대부분 알베르게를 겸한 바)만 있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건물들이 나오고 순례자들이 걷는 루트 중에 시민들이 찾는 공원도 보인다. 공립 알베르게에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대형마트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중간에 들르는 바에서는 캔 콜라가 2유로지만, 마트에서는 2리터짜리 콜라가 1.5유로에 불과하다. 셋이서 양껏 먹고 물통에도 담아갈 만한 양이다.
마드리드에서 산 볶음 양념장은 미약하게나마 한국의 맛을 냈다. 먼저 도착한 3명이 근처에서 식재료를 사 왔고, 나머지 3명까지 도착한 뒤 주방에서 밥을 하고, 고기를 굽고, 계란 후라이(프라이라고 하면 느낌이 안 산다)를 만들고, 과일을 씻었다. 여럿이 노력해 완성한 저녁상은 밖에서 사 먹는 것 못지않게 푸짐했다.
6인 그룹은 계획에 따라 둘로 갈렸다. 일정을 미룰 생각이 없던 2명은 바로 출발했고, 나까지 4명은 팜플로나에서 하루 쉬고 가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도 가야 했지만, 다친 발목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 걸을 그룹이 자연스럽게 결성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별 생각 하지 않고 단순하게 내린 이 결정이 남은 순례길과 여행 기간을 통째로 바꿔버린 커다란 일들의 시작이었다.
남기로 한 사람들은 쉬는 날이니 절대 5000보 이상 걷지 않기로 약속했다. 지켜질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