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9(목) 푸엔테라레이나
직접 와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낯설고 작은 마을에서 예정에 없던 휴식. 즉흥적이긴 하지만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고요한 장소에서 갖는 나만의 시간이 좋았다. 서울에서 직장인 신분으로는 계획 없이 사는 게 불가능했다.
사립 알베르게라 연박도 가능해서 오랜만에 이른 시간에 눈 뜨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전은 각자 시간을 보내고, 낮에 현주, 종민이와 ‘순례자 메뉴(menu del peregrino)’를 먹으러 갔다.
순례자 메뉴란 일반 레스토랑에서 파는 ‘오늘의 메뉴(menu del dia)’가 이름만 바뀐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타터(메인 요리가 전에 나오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메인에 속하는 파스타를 스타터로 내놓는 집도 많다), 메인 요리, 디저트, 와인(다른 음료도 가능)을 한 번에 즐기면서 가격은 10~15유로로 저렴하다. 우리는 셋이 갔으니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면 디저트를 제외하고도 총 6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을 잔이 아닌 병으로 제공했다. 2명은 레드 와인, 1명은 화이트 와인을 시키자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각각 1병씩 나와 놀랐다. 음식 맛도 훌륭해 1인 11유로라는 가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넉넉한 순례길 인심을 느낄 수 있는 동네였다.
3명이서 33유로를 냈으니 원화로는 4만 5천 원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시키면 한 병에 2~3만 원은 할 와인 2병과 1인 당 2만 원은 줘야 할 것 같은 코스 요리를 먹었다. 우리가 낸 돈의 2배 이상의 가치를 누린 셈이다. 각자 1만 5천 원만 내고 코스요리와 와인 3분의 2병을 즐겼다고 보면 된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에서는 와인 한 잔에 2~3유로 이상도 받는데 여기선 33유로에 3명에게 코스요리를 제공하고 와인 2병을 준다. 같은 나라 맞나 싶을 정도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무제한 와인 디너에 가지 않았다. 이미 점심에 셋이서 두 병을 비웠고, 저녁까지 마음껏 마신다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오전 9시만 지나면 슬슬 찾아오는 더위를 견뎌내려면 일찍 일어나서 일찍 출발하는 것 외엔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