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20(금) 푸엔테라레이나-에스테야
푸엔테라레이나에서 다혜는 하루 더 묵기로 해 나머지 셋만 에스테야(Estella)로 향했다.
팜플로나에서 푸엔테라레이나로 올 때부터 5시에 일어나서 6시에 출발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로 했던 1시 도착은 이루지 못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우리는 좀 많이 쉬는 편이었다. 그 시간을 줄이고 숙소에 일찍 들어와서 숙소에서 더 편하게 쉬자고 다짐했다. 햇빛 쨍쨍한 시간에 빨래를 널어서 옷을 말리는 것도 중요한 일과이기에 1시 전까지 도착해보자는 말에 모두 뜻을 모았다.
시간이 지체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진이다. 일출을 보면 멈춰서 카메라를 꺼내 들기 바빴는데, 사진도 최소한만 남기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매일 새벽에 나오면 해가 뜨는 것도 매일 보는 흔한 광경이 될 것이므로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고 믿었다.
순례길을 도전이나 경쟁의 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도 시간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건 순례길 역시 또 다른 일상이기 때문이다. 늦으면 샤워, 빨래, 식사가 뒤로 밀린다. 저녁을 먹고 바로 누울 수는 없으니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자연히 늦어진다. 그러면 정상적으로 걷기 힘들어지고, 똑같은 거리를 걸어도 힘들게, 느리게 걷게 된다. 같은 시간을 구태여 더 힘들게 살아낼 필요는 없다는 단순한 생각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들어와 새벽 2시 이후에 잠들고 오전 10시가 넘어 일어나는 일이 다반사였던 전직 스포츠 기자의 습관까지 바꿔놓았다.
이렇게 다짐하고 실천한 결과 우리는 처음으로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일찍 도착하니 하루가 길었고, 늘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의 일상을 내가 누리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점심을 즐기는 2시에 레스토랑에 들어가 순례자 메뉴와 함께 와인 한 잔을 기울일 여유가 생기니 이곳에서의 하루가 더 풍성해졌다. 앞으로 갈 길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