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25(수) 벤토사-아소프라
처음부터 끝까지 걸으려면 800km에 육박하는 길. 회사원이 휴가 내고 완주하기란 불가능하다. 완주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사리아에서 출발해 100km 남짓만 걸어도 되지만, 긴 시간을 갖고 자기를 돌아보고 싶은 이들은 퇴사를 통해 스스로 인생의 전환기를 만들려 이 길을 걷는다.
전원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쳐 있는 우리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다들 이렇게 회사를 뛰쳐나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돌아갈까 싶을 때도 있을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이 이국의 길을 지났고,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지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지날 것이다.
‘각개전투’를 하는 외국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잘 뭉쳐 다닌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자국에서 온 순례자를 찾기 어려워 그룹을 만들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어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중국어(중국인은 거의 없지만 대만인들이 많이 온다.)와 함께 순례길 6대 언어에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건 언어 장벽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개인적 견해다. 유럽인들은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도 영어로 쉽게 대화한다. 문화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어 장벽은 없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다들 공인 영어 시험 점수는 높아도 모두가 점수만큼 실전 회화가 가능하지는 않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니면 편하다. 그룹에서 1~2명만 영어를 해도 된다. 우리 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어가 필요하면 승민이가 나섰고, 다른 나라 순례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면 현주나 내가 영어로 답하곤 한다.
이렇게 단체를 만들어 다니는 한국인을 나쁘게 보는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좁은 주방을 특정 그룹이 점령하고 식기도 독점해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없지 않다.
그래도 나쁘게 여기는 시선보다는 흥미롭게 보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들이 좀 더 많다고 느꼈다. 스페인에 오기 전 부정적인 언론 보도를 많이 접해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나쁘지 않았다. 알베르게, 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돈줄이나 마찬가지니 한국인이 순례길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할 우려도 적다.
루마니아에서 온 카르멘, 벨기에에서 온 파트리크는 우리에게 호의적이었던 대표적인 외국인 순례객이었다. 특히 카르멘은 다른 지역에서 우리가 저녁을 지어먹는 것을 보고 너무 좋아 보인다며 아소프라(Azofra)에서 자기도 저녁에 초대해달라고 했다. 벤토사에서 아소프라까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온 뒤 약속대로 카르멘을 초대했다.
우리가 고기와 파스타, 카나페 등을 준비하자 카르멘은 곁들일 샐러들을 혼자서 뚝딱 만들어냈다. 카르멘이 데려온 이탈리아 청년 필리포까지 합세해 총 여덟 명이 식사를 함께했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는 늘 어렵다. 언어는 통하는데 대화는 안 되는 상황. 할 말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한국인이 편하다고 말하는 건 언어 소통 측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문화적, 사회적인 면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서로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공통적 관심사가 없으면 대화와 대화 사이 공백이 길어진다.
그림을 볼 때 우리가 ‘여백의 미’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잠깐의 공백이 아니었다. 그림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대화는 여백의 미라기보다는 백지에 좀 더 가까웠다. 루마니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수도 이름이 부쿠레슈티(Bucuresti)라는 것, 드라큘라의 고향이라는 것, 그리고 유명한 스포츠 선수 몇 명의 이름 정도가 전부다. 각종 경제지표로 볼 때 루마니아가 유럽에서 가난한 편에 속한다는 정보는 우리 대화에 뿌리기엔 부적절한 조미료였다.
필리포가 축구를 좋아했다면 이탈리아 축구 이야기만 가지고도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필리포는 축구 대신 F1(세계 최고의 자동차 레이싱 경기)에 관심이 많았다. 기자 시절 한국에서 열렸던 F1 그랑프리를 취재한 적 있기는 하지만 2013년 일이라 기억도 흐릿했다. 카르멘과 필리포가 갖고 있는 한국에 대한 지식 역시 내가 루마니아에 대해 아는 것과 크게 다른 깊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호의가 함께하는 시간을 덜 어색하게 해 줬다. 요리를 다 만들어놓고 각자의 언어로 건배를 외칠 때까지는 흥겨웠지만 이후 시간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어찌 보면 우리가 호스트였는데 손님을 앉혀놓기만 하고 더 배려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컸다.
대화도 요리와 같다. 기술(언어 구사력)이 있어도 재료(적합한 대화 주제)가 없으면 테이블이 풍성하기 힘들다. 어쩌면 기술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바로 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