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만나 특별한 사이

190928(토) 벨로라도-산후안데오르테가

by 여행일기
KakaoTalk_20201016_180647598_01.jpg

한국에서는 어떤 형태의 숙박시설에 묵어도 수건이 최소 한 장은 제공된다. 하지만 유럽 호스텔에선 이게 상식이 아니다. 오로지 빌릴 수만 있는데 빌리는 것도 1~2유로는 내야 한다.


그래서 순례길에서는 다들 스포츠 타월을 쓴다. 스페인의 강한 햇볕에 노출시키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마르기 때문에 일반 수건보다 쓰기 편하다. 물론 흡수력이 좋은 수건만큼 몸에 묻은 물기를 잘 닦아내지는 못하지만 단점을 덮고도 남을 확실한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 가져와 여행 초반부터 쓰던 스포츠 타월이 없어졌다는 것은 벨로라도를 떠나 산후안데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지 와 알베르게에서 샤워를 하려 할 때 알았다. 이 난감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막 도착해 옆 침대에서 짐을 풀고 계시던 한국인 아저씨가 남는 수건이 많다며 한 번도 안 쓴 수건을 주셨다.


순례길에서는 내가 쓰고 있지는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할 물건을 각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해결이 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문제 해결은 서로에게 따뜻한 기억까지 남긴다. 순례길의 미덕 중 하나다.

KakaoTalk_20201016_180647598_02.jpg

내게 수건을 건넨 아저씨는 60대는 족히 되는 것으로 보였다. 보통 걸으면서 마주치면 이전에 한 번은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게 마련인데, 안면이 없었다. 아마 우리보다 앞서가다가 산후안데오르테가에서 처음 만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뜻 소중한 물건을 내준 넉넉한 마음씨에 감사하게 된다.


나보다 훨씬 오랜 나이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길에 오른 이유도 새삼 궁금해진다. 서울의 지하철에서 만났다면 서로 얼굴 한 번 쳐다보지 않았을 사이. 순례길은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만큼이나 '어디서 만나는가'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공간이다.


'광장'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 최인훈의 희곡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정말 세상 어떤 사람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를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