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3일 대여료가 100유로? 그럼 그냥 사자

191001(화) 부르고스

by 여행일기

자전거 없이 온 5명이 탈 자전거를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빌리거나 사야 한다. 부르고스에서 자전거를 빌려 레온에 반납할 경우 3일 대여로 100유로에 보증금까지 붙는다. 3일 타는 가격 치고는 비싸지만 선택지가 많지 않아 형성된 가격이다.


다들 빌리는 것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때 종민이가 다른 도시의 대형마트 스포츠용품점에서 자전거를 99유로에 파는 걸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으니 외면하기 힘들었다. 오전에 들른 자전거 대여소에서도 5대를 빌릴 수 있을지 확인하려면 오후 3시는 돼야 한다고 했기에 구입 가능한 자전거라도 있을지 보러 가기로 했다.


결심만으로 되는 일은 없다. 걸어서 40분 걸리는 쇼핑몰을 걸어서 가긴 싫었지만 버스를 타자니 노선을 몰랐다. 시내를 걷다 보이는 버스정류장으로 가 다짜고짜 현지인에게 말을 걸어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었고, 가야 할 정류장 방향과 타야 할 버스 번호를 듣고 끝내 정류장을 찾아냈다. 거의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가 오기 3분 전에 정류장에 도착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이제 자전거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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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보다 더 큰 마트라 스포츠용품 코너를 찾는 것부터 일이었다. 한참을 헤매고 여기저기 물어 자전거가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하지만 시에스타를 깜빡했다. 마트엔 시에스타가 없지만 각 매장은 알아서 시에스타를 자체 적용하며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마트 안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운 뒤 직원이 돌아온다는 시간에 맞춰 다시 매장으로 갔다. 직원은 오로지 스페인어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가격표만 보고 선택하면 되니까 상관없었다.


문제는 재고였다. 모든 기종이 단 한 개씩만 있었다. 매장에 진열된 자전거가 전부였다는 뜻이다. 수량은 충분했지만 대부분 우리 예산과는 너무 먼 가격대였다. 우선 아동 혹은 청소년용으로 보이는 99유로짜리 자전거 2종을 쇼핑 목록에 넣었고, 최저 가격이 115유로였던 성인용 자전거 중에서도 싼 가격 순으로 3개를 더 골랐다. 1인 평균 비용 115유로에도 미치지 않았다. 마침 대여소에서도 수량이 부족하다는 연락이 와 더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마트 계산대까지 가는 내내 주목을 받았다. 자신들과 생김새가 달라도 너무 다른 아시아인 5명이 먼바다를 건너와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도 아닌 스페인의 한 로컬 마트에서 저마다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계산대 앞까지 끌고 가는 모습은 직원들, 다른 손님들에게도 진귀한 볼거리였다.


워낙 큰 금액을 결제해 사은품도 있었다. 뒤에 줄 서 있던 스페인 여성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용 카드를 받은 우리에게 와 자기 아들이 좋아하는 물건인데 혹시 줄 수 있겠냐고 정중히 물었다.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5만 원 남짓한 싸구려 자전거 하나로 많은 걸 얻은 기분을 느꼈다. 즉흥적인 결정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때 묘한 쾌감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전거 3일 대여료가 비싸다고 생각할 때 우린 그걸 그냥 사버리기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걸 진짜로 해냈다는 것 하나만으로 괜히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10분 전에 산 자전거를 타고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부근에 위치한 마트 정문에서부터 첫 주행을 하는 기분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다시 맛보기 힘든 희열이다. 오르막 하나 없이 내리막과 평지만 달리며 도보 40분 거리를 8분에 주파해 숙소까지 왔다. 레온까지 가는 길도 이렇게 순탄하기만 할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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