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순례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다

191002(수) 부르고스-프로미스타

by 여행일기

해가 뜨기 전에 문을 나와 걸어야 한다는 불문율도 깨졌다. 어두운 곳에서 타면 위험한 자전거가 우리에게 추가 수면 시간까지 줬다. 소요 시간을 계산해본 뒤 8시에 출발해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냈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보도블록이 많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자전거가 충격을 받을 일이 많았지만 조금 외곽으로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속도가 났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어깨에 가방을 짊어지고 나갔을 사람들의 뒷모습을 셀 수 없이 많이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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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큰 시행착오가 있었다. 자전거로 가는 길은 걸어서 가는 길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 거다. 화살표만 따라가면 때론 자전거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오르막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고, 올라간 만큼 내리막도 만난다. 하루에 50km를 넘게 가면서 자전거를 짐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언덕들을 다 지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뭔가 단단히 잘못됐단 것을 깨달았다. 어느새 오후 4시를 넘겨버렸다. 한 번도 길 위에서 맞이한 적 없는 시간. 지도는 우리가 1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였는지 내리막길이었는데 속도를 완전히 줄이지 못했다. 돌길을 가다 큰 돌을 피하려고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을 때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 떨어지며 난 소리에 앞뒤에 있던 친구들의 자전거가 모두 멈췄고, 순식간에 내가 떨어진 곳으로 왔다.


통증은 놀람보다 늦다. 어찌 된 영문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늘 어깨에 두르던 검은색 힙색은 흙색이 됐고, 띠에 고정해둔 스페인 축구팀 로고 배지 6개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그 와중에 그게 없어진 걸 알고 눈을 돌려 마침내 찾아낸 걸 보면 인간의 어리석음과 집착은 본능에 가까워 어떠한 학습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나만 이러진 않을 거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남들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쓰린 깨달음이었다.


다리 상태는 심각하단 말로도 제대로 표현이 안 됐다.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떨어질 때 자전거 안장에 걸린 오른쪽 허벅지 안쪽은 어린애 주먹 크기만큼 부풀어 있었다. 이날은 태어나서 본 사람의 다리 중 가장 심하게 부은 다리가 내 다리로 바뀐 날이다. 이 정도 붓기라면 훨씬 더 아파야 하는 게 맞는데. 두려움이 통증마저 잊게 만들었나 보다.


그러나 이 생각도 이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다친 순간의 통증은 선발대에 불과했고, 통증의 본진은 다시 걸어보려 할 때 물밀 듯 몰려왔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팠는데 다리를 굽힐 수도 없어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계획대로 완주하지 못하고 중도 귀국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다리를 못 쓰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도착해야 할 마을인 프로미스타(Frómista)에 다 와서 사고가 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 사고 장면을 목격한 마을 주민, 그리고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있던 다른 순례자들이 놀라 뛰어나왔다. 며칠 전에 걷다가 넘어져 코를 다친 사람을 본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길 한가운데서 부상이 생겨 구급차를 불러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마을 앞에서 다쳐서 그런 부산스러운 일까지는 만들지 않았다.


알베르게 주인으로 보이는 현지인 아주머니가 일단 재빨리 의자를 가져와 나를 앉히고 찬 수건까지 가져다줘 간단한 응급처치는 할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병원에 갈 수 있게 택시까지 부르는 친절을 발휘했고, 스페인어 소통이 가능한 승민이가 나와 택시를 타고 함께했다.


택시에 오르는 순간부터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머릿속을 꽉 채웠다. 혼자 결정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자전거를 타기로 한 결정, 자전거 구입, 돌길에서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던 것 같은 결정적인 선택들은 물론 수많은 갈림길에서 내린 모든 선택들을 원망했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택시기사가 차를 세운 진료 가능한 가장 가까운 곳은 지역 보건소였다. 닫힌 문을 두드리고 한 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10초 정도가 지나서야 쉰 살도 넘어 보이는 경험 많은 간호사가 우리를 맞이해줬고, 뒤따라온 의사가 상태를 체크했다. 누우려는데 조금만 몸을 뒤로 젖히면 통증이 심해졌다. 의사와 승민이가 대화를 나누는 3~4분이 몇 시간 같았다. 아는 단어가 하나라도 있을까 싶어 집중해서 들으려 노력했지만 어려웠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승민이는 찜질 잘하고 약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면 된다고 전했다. 간호사는 통증이 심하면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스마트폰 번역기로 보여줬다.


허벅지 근육 파열. 순례길은 사실상 끝났다. 순례길 이후 여행 일정까지 있어 집에 갈 날은 4주나 남았는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어디에 있든 걸을 수는 없으니 그저 숙소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간단한 진료가 끝나고 친절한 간호사가 직접 차를 몰아 약국과 숙소에 우리를 데려다줬다. 모두 걸어서 2~3분이면 갈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 큰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걸을 수 없어 차를 타야만 했다. 택시로 보건소까지 온 것도 5분 남짓이었으니 한 번만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로 조금만 더 달렸다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남은 여행을 위해서라도 현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숙소 주인의 도움으로 침대에 앉아 냉찜질을 계속했고, 숙소에 도착한 다른 친구들도 다시 만났다.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우선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며칠은 누워있기로 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어느 나라에서 온 어떤 사람이 다쳤다거나, 변고를 맞이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한다. 특히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 소식이 더 자주 들리게 마련이다. 그 흔한 순례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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