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9(월) 서울-파리(경유)-바르셀로나
여행 계획에 따라 가져 가야 할 물건은 바뀐다. 계획은 마지막까지 수정될 수 있어 장기여행이라도 짐을 미리 싸지 않는다. 전날까지 여유를 부린 탓에 출발하는 날 새벽에 짐을 꾸렸고, 아침 9시 5분에 출발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첫 차가 운행하기에도 이른 시간에 공항버스를 타러 나왔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잠들지 않으면 시간 보내기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닌데, 출발 전에 밤을 새워서 쉽게 잠이 들었다. 기내식을 두 번 먹고 자는 동안 11시간이 지나갔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전 경유지는 파리였다. 공항은 지역의 특성을 어느 정도는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이 어느 도시에 속한 공항인지 알려주는 몇 가지 상징물, 직원들이 사용하는 언어 등 몇 가지 요소만 털어내고 보면 파리 샤를드골 공항은 프랑스의 일부라는 인상을 별로 풍기지 않았다. 물론 프랑스에 가본 적 없는 내가 갖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한 결과다.
자신이 속한 지역의 특수성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보편성을 보이는 공간. 공항이 갖는 이런 성격이 여행자의 마음을 더 들뜨게 만들기도 한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부터 이미 한국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서양인 특유의 느긋한 일처리 속도에 잠시 걱정이 피어오르기도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앞으로도 계속 마주치게 될 이 속도에 적응하려면 마음이 너그러워져야 한다. 사실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외국의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국인들이 비정상적으로 일을 잘하는 거다.
파리에서 다시 2시간 조금 안 되는 비행 끝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유럽에서도 소매치기가 가장 극성이라는 도시다. 여행은 삶의 단면 같아서 알량한 경험이라도 쌓이면 쌓일수록 두려움도 잘 느끼게 된다. 겁내고 대비하면 상대적으로 소매치기의 표적이 될 확률은 줄어들겠지만, 너무 심하게 위축되면 스스로 여행을 망쳐버린다. 여행자의 마음은 때로 외부요인보다 안에서 일어나는 균열에 더 민감하다. 베테랑 여행자란 걱정이 감정을 지배하게끔 방치하지 않으면서도 각종 사고는 능숙하게 비껴가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어차피 인생 리셋하려고 회사도 때려치우고 온 여행 아닌가. 지갑 하나, 핸드폰 하나 없어진다고 삶이 무너지진 않을 거라는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미리 계획해둔 경로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서 시내까지 공항버스를 타고 왔고, 시내에 내린 뒤 10분 남짓 걸어 숙소에 짐을 풀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리셉션 데스크에 한국인 직원이 있어 영어를 하는 약간의 수고마저도 덜었다.
조금 쉬다가 밖에 나가 저녁 한 끼 먹고 적당히 배가 부르자 다시 한번 스스로 선택한 낯선 곳에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오랜 비행으로 피곤했고 다음날 오전 이른 시간에 가이드 투어도 앞두고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