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4(금) 프로미스타
밖에 나갈 일은 없었지만 떠날 친구들을 보내주러 아침 일찍 일어났다. 찜질을 부지런히 해주고 약도 꼬박꼬박 먹어 난간을 잡지 않고 1층과 2층을 오르내릴 수 있는 정도까지는 왔다.
다시 여정을 시작한 친구들은 마침 숙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카르멘을 만났다고 했다. 왜 내가 없냐고 묻기에 다쳐서 숙소에 있다고 답해줬더니 만나러 오겠다고 해 친구들이 괜찮다고 말렸단 이야기도 나중에 들었다. 무엇도 해준 것 없는데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된 김에 걸어서 2분 거리인 보건소에 감사인사를 하러 갔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하고 다시 걸어서 6~7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봤다. 걸음이 느려 10분도 더 걸린 것 같다.
필요한 것들을 사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가 되니 다시 욕심이 났다. 알베르게 몇 개가 전부인 작은 마을에서 며칠씩이나 지내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매일 떠나는 사람을 보내면서 나는 머물러야 했다. 다른 옵션 없이 머무는 게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 하릴없이 쉬는 건 편안한 휴식보단 한숨 나는 상황에 가깝다. 다쳐도 대도시에서 다쳤다면 이렇게까지 심심하진 않았을 거다.
순례길 초반부터 함께해온 친구들이 없다는 것도 허전한 이유였다. 내가 좀 더 회복되면 기차를 타고 가 레온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깨끗하게 모든 걸 비우고 버렸던 그 날과 달리 다리가 조금 나아지자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더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했던 마음이 조금 녹아내린 자리는 새로 생긴 욕심이 채웠다. 서울로 가는 날까지는 25일. 달력 한 장 찢을 일도 없을 기간이 마치 몇 개월인 듯 길게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