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끝내야 할 여행

191006(일) 프로미스타-팔렌시아-레온

by 여행일기

한국보다 더운 스페인이라도 10월이면 아침 공기가 꽤 춥게 느껴질 시기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침대를 박차고 나와 어디론가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됐다. 레온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 프로미스타에서 가까운 팔렌시아(Palencia)까지 기차로 간 뒤 팔렌시아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직통열차도 있었지만 출발시간이 너무 늦어 환승하는 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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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긴 4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한 체질이고 큰 사고도 없어서 30년 넘게 살며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역사가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입원해야 하나 걱정했을 만큼 크게 다쳤다. 정신이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늘 듣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육신은 마음을 가두는 감옥일 뿐이었다. 몸이 불편하니 생각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평정심도 유지할 수 없었다.


레온에서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친구들은 프로미스타에서 자전거로 이동해 나와 같은 날 레온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고, 친구들을 만나면 기분이 더 전환될 것 같았다.


기차를 타게 되어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하게 된 나는 다리 상태도 확인하고 치료도 받을 수 있는 곳을 미리 찾아두었다. 레온역과 숙소의 중간지점에 한의원이 하나 있었다. 일요일은 닫는 가게가 많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고, 역시 예상대로 닫혀 있었다. 원장이 휴가 중이라 며칠을 레온에 묵어도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한의원에 가던 길에 연락을 받았다.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친구들이 점심 먹을 곳을 정해 나도 그곳으로 합류해 3일 만에 재회했다. 나를 본 친구들은 내 걷는 모습이 많이 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짐을 지고 30분 넘게 걸었는데도 극심한 통증은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걸어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지 오래였다.


숙소에 들어온 뒤 일정은 똑같이 휴식이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 스마트폰만 보다가 친구들을 다시 만나 심심할 틈이 사라졌다는 건 분명 긍정적 변화였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종민이가 만든 음식도 먹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새로운 고민으로 다시 복잡해졌다. 다치기 전과 달리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친구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 우리 그룹과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담당하고, 순례길 관련 정보나 미리 공부해온 스페인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끔 설명하기도 했던 나는 이제 없다. 가까운 식당이나 마트에 가도 나 하나 때문에 전체 속도가 느려졌고, 설거지를 하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것 같은 단순한 일들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게 어느새 당연해져 버렸다. 기적적으로 다리가 낫지 않는 한 이 여행은 혼자인 채로 끝내야 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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