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2(목) 바르셀로나 캄프 노우
어려서부터 스포츠라면 종목 가리지 않고 다 봤다. 온갖 비인기 종목까지 섭렵했으니 메이저 종목인 축구, 그중에서도 유럽축구는 안 봤을 리가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4년에 미국월드컵을 보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고, 1996년에 내한한 AC 밀란과 한국 대표팀의 대결을 잠실 주경기장(상암동에 월드컵경기장이 생기기 전까지 국가대표 주요 경기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치렀다)에서 본 뒤부터 유럽축구에도 크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로베르토 바지오, 조지 웨아가 속해 있던 AC 밀란의 경기를 본 건 지금도 자랑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9년 유벤투스 방한 경기에서 호날두가 몸도 풀지 않고 이탈리아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많은 팬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을 나의 축구사랑을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나를 바르셀로나로 이끈 것 중 하나가 바로 축구, 그리고 축구장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캄프 노우(Camp Nou)는 유럽에서 제일 큰 축구장인 동시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장이기도 하다. 현 세계 최고를 넘어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 자리까지 바라보는 선수 리오넬 메시가 뛰는 곳이고,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히바우두, 호나우지뉴(이상 브라질) 등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스타들이 거쳤던 곳이다.
며칠 뒤에 있을 FC 바르셀로나의 2019-2020 시즌 첫 홈경기를 보기 위해 이미 한국에서 티켓도 예매해놨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경기장 투어를 따로 신청하고 캄프 노우로 달려갔다.
직장인일 때 야구 담당기자를 오래 해서 메이저리그 경기장은 많이 가봤지만, 축구 담당은 해본 적이 없어서 유럽 축구장 내부를 본 건 처음이었다. 업무상 방문이었던 야구장과 달리 축구장을 갈 때는 팬심이 좀 더 컸다. 경기장 벽과 박물관에서 명장면들의 영상이나 아는 얼굴들이 나올 때마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에게 스포츠는 동심이다. 언젠가부터 일거리가 됐지만, 지금도 집에서 쉬면서 TV를 보면 스포츠 채널로 손이 간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경기도 열리지 않는 텅 빈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에선 뜨끈한 국밥 서너 그릇쯤 먹고도 남을 금액 26유로를 기꺼이 내놓는 소비는 분명 정상적이진 않다. 하지만 합리적인 선택과 소비로만 구성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내 앞뒤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지불하고도 신이 나 있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는데 아마 기념품을 맘껏 사지 못해 그랬을 거다. 나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앞두고 있어서 짐 무게가 늘어나면 곤란하다.
충동이 100%에 가깝게 배제된 비합리적 소비, 쉽게 말해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획적으로 결정한 소비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멍청한 소비지만 나에겐 지난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만든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쓴 최고의 소비였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이유 없이 순전히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다. 여행에서는 그 반대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