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달톤 기록 - 이현우
페달톤은 격주로 토요일마다 이루어지는 페달링만의 해커톤입니다. 이 시간에는 팀원들 모두가 돌아가면서 리더의 역할을 맡는데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서비스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참여자들 모두 힘을 합쳐 해결하게 됩니다. 이 주기적인 워크샵은 팀워크를 다지는 시간도 되고 팀원 누구나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페달톤 기록은 그 날 리더의 회고록입니다.
“자전거 스타트업 인가요?” 컨퍼런스나 네트워킹 파티에 가면 인사뒤 듣는 말이다. 우린 페달링이란 이름으로 교육시장을 바꾸겠다고 하지만 그 이름을 먼저 듣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남들보다 더 길게 설명해야했다.
그래서 첫 로고는 그 설명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페달링보다는 교육이라는 이미지를 더 나타내야겠다는 생각했고 그렇게 나온게 파란색의 전구모양 로고였다. 연필인가 지도의 위치 아이콘인가 전구인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들을 들으면 재밌었지만 페달링만의 가치를 느끼긴 힘들었다. 사실은 어떤 걸 내세워야 할지 몰랐던게 문제였었다.
이 로고가 우리의 꿈을 대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리브랜딩을 진행했다. 로고의 리디자인에 앞서 우리 서비스 철학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플러스엑스의 Brand Frameworks를 참고해 페달링의 철학을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나눠 정의했다.
1. Brand mission
-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2. Core Values
- 누군가에게 꿈을 주는
- 다양함을 추구하는
- 더 개인화된
- 옳은 가치를 찾아주는
- 함께하는
3. Service Mission
- 누구나 가르치고, 모두가 쉽게 배우는
이렇게 재정립한 요소들에 따라 그래픽 요소들인 심볼, 로고타입, 패턴등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설계했다.
하지만 로고만 바꿨다고 브랜딩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는걸 느꼈다. 유저가 서비스 철학에 공감하고 스스로 전파하는 게 브랜딩의 베스트 시나리오라면 시각적 요소만으로 그 행동을 바라는 것은 요행이다.
사실 우리와 같은 스타트업은 서비스를 만들고 검증하고 개선하기에도 너무 벅차다. 게다가 밖으로 목소리를 표출하기에도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정말 어떤 것 부터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리디북스의 배재민님이 작성하신 리디북스 브랜딩 회고록을 발견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해결 방안은 린 브랜딩이었다. 바로 린 프로세스를 브랜딩에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쉽게 말하면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들고 빠르게 검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린 프로세스와 마찬가지로 브랜딩에서도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브랜드 에셋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글을 보고 ‘아 내가 너무 어려운것 부터 해결하려고 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흔히 브랜딩을 한다고 생각하면 홍보와 광고 마케팅같은 것부터 상상한다. 하지만 소규모 스타트업 일수록 매체를 통해 massive하게 알릴 수 있는 자금도 기회도 없다. 그러다 보니 팀원들 한명한명(매체)이 말하는 ‘어떤 서비스인가요?’에 대한 설명들(컨텐츠)이 곧 회사의 브랜딩이 된다. 딱히 ‘페이스북에 어떤걸 올려야 바이럴이 잘 될까?’ 같은 어려운 고민부터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고민 하기보다 먼저,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페달링을 티 내고 다니는게 브랜딩의 시작이다. 바로 리디북스에서 스티커와 같이 말이다. 나는 바로 페달링의 어떤 문화를 팀원들이 좋아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발이 한결 가벼워졌다.
티 내고 다니는게 브랜딩의 시작
그래서 페달톤의 목표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티내자 라고 정했다. 목표가 추상적일 수도 있어 몇가지 Key words와 규칙들을 정해 진행하기로 했다.
Key word
- 고객감동리뷰
- 유행어
- 기어스
- 만화
- 반팔티
규칙은 두명씩 짝지어 마음에 드는 키워드를 골라 기획부터 디자인까지 해내기로 했다. 우선 어떤 결과물들이 나왔는지 함께 보자.
이번해 겨울 에어비앤비 본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본 것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벽에 걸려있던 슈퍼 호스트의 얼굴이었다. 대문짝 만한 (거의 베란다 창문만한) 인쇄된 포스터는 정말 에어비앤비의 자랑인 것 같았다. 자신의 서비스를 사랑하는 100명의 유저가 100만명의 유저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창업자의 말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페달링을 사랑하는 유저분들의 살아있는 리뷰는 우리가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런 포스터를 회사 곳곳에 붙이면 힘들때도 더 열심히 해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팀원들이 즐겨하는 말을 적어놓은 사전이다. 안전벨트는 몇개나 샀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하는 말들 하나하나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페달링에서 같이 일 해야 공감 가는 말들이 많지만 새로운 팀원에게는 대강 어떤 분위기인지, 어떤 사람들인지 파악 할 수 있는 자료가 됐다.
주변을 돌아보면 스티커가 붙어있는 노트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노트북의 앞면으로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깃헙의 문어와 슈프림 로고를 보고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알기 어렵다. 좀 더 우리의 개성을 표현할 수 없을까 생각했고 슬램덩크가 떠올랐다. 마침 우리는 사내 스포츠로 시작한 농구에 미쳐있었고 팀 이름도 기어스로 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만들게 된게 페달링 기어스 엠블럼과 슬램덩크의 명언 스티커다. 이 만큼 강력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걸 티낼 수 있다면 처음 보는 사람도 페달링이 어떤 문화인지 좀 더 쉽게 알 수 있지않을까?
성호의 일상툰이다. 일반적인 웹툰의 분량정도 였는데 페달톤을 시작하고 5시간만에 뽑아낸 분량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단지 인사하는 장면과 3마디를 적었을 뿐인데 누군지 다 표현해낼 정도로 디테일을 잘 잡아냈다. 웹툰계의 헤밍웨이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페달톤에 불참한 팀원들을 위해 동영상으로 읽어주기까지 했다. 서툴러 보이는 그림체였지만 덕분에 우리 말이나 행동이 강조돼 보였던거 같다.
그 동안 CS로 지친 팀원들을 위해 재밌는 시간이 됐으면 해서 주제를 사랑하는걸 티내보자라고 정한 것도 있었다. 페달톤을 진행하는 동안 팀원들이 모두 즐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성호의 페달링툰을 보여주는 순간은 그 일주일동안 가장 많이 웃었던 순간인 것 같다.
우리의 소지품 중에 옷 만큼이나 좋은 광고판은 없는 것 같다. 올해 초에는 대선이형(대표님)이 자신은 페달링을 24시간 홍보하겠다고 맨투맨티를 만들어서 입고다녔다. 하지만 퀄리티나 디자인면에서 조금 안쓰러운 감이 있었다... 나도 리브랜딩을 맞아 스스로 좀 더 홍보하고 다니고 싶어 일부러 빨간색 신발을 산다던지 했었는데 이 참에 팀원 모두가 입고 다닐만한 반팔 티를 만들어보자! 라고 마음 먹었고 키워드중 하나로 정했다.
키워드들 중 가장 제작하는 기간이 길었던 프로젝트였는데 소량 주문인데도 다양한 시안과 좋은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곳을 찾다보니 오래걸렸다. 그래도 한사람당 3~4장의 티를 구매했고 하루에 2명은 페달링 티를 입고 출근할 정도면 아주 성공적인 프로젝트인 것 같다. 이 참에 f/w 컬렉션도 진행할까...
정말 많은 결과물이 나왔고 모든 결과물이 주제에 맞아 떨어져서 1차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티를 내기위해선 생각보다 좀 더 나은 퀄리티가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내 일 더 쌓였다. 게다가 정말 중요한건 서비스를 개선하는 거라 동시에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생각보다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가 페달링의 어떤 모습을 좋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유행어와 엠블럼을 조합해서 스티커를 만들 수 있겠다라던지 더 페달링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아이템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조금은 천천히 이루어지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택배를 받는 것도 재밌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