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하고, 당연하지 않던 것을 당연하게 하자
이 글은 클래스101(이하 클원)의 비전에 대한 내용이다. 클원이 생각하는 인류의 미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이유, 클원이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해 적었다. 클원은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인류가 여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비전에 대해 질릴 만큼 세상에 알리려 한다. 단 한명이라도 이 글을 읽고 클원의 비전에 동참하길 바라면서.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의 저서 <팩트풀니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이러한 황금기는 처음이다.
55년 전인 1965년에만 해도 세상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두 분류로 나뉘어 있었다. 현재는 인류의 85%가 선진국에 살고 있다. 세계 인구의 약 6%에 해당하는 13개 나라만 개발도상국 안에 있다. 이 외의 나라들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다. 6%의 국가들 또한 전 세계의 투자와 노력을 통해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빵과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싶은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삶은 불과 1~200년 전만 해도 국가 최고의 귀족들과 왕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이었다. 현재는 전세계 85% 인구가 귀족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 성인병, 당뇨, 비만 등이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인지 생각해보라. 선진국에서 느끼는 가난함은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이다.
인류는 최근 몇 십년간 유래없는 경제적 성장을 거뒀다. 하지만 행복에 있어서는 아직 갈길이 멀다. 예일대 경제학자 로버트 레인(Robert Lane)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평균 가계 소득은 지난 50년간 약 2배가 성장했지만 행복 수준은 오히려 떨어졌다. '매우 행복하다'는 답변을 한 사람은 1957년 53%에서 2000년 47%로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극빈국들이 포함된 전세계 통계에서는 국가 간 행복수치와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비례했다. 그러나 선진국들의 통계에서는 추가적인 경제 발전이 더 이상의 높은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국가의 행복 수준과 경제 수준은 더 이상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당연히 더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불행의 감소와 행복의 증가는 서로 다른 별개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을 샤워기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행복을 따뜻한 샤워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정서 시스템은 찬물과 더운물을 조절하는 꼭지가 따로 달려 있는 샤워기와 같다. 불행의 요인들을 줄이는 것은 마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으로 샤워물이 덜 차가워질 수는 있지만 더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많은 삶의 조건들은 이 샤워기의 찬물 꼭지를 잠그는 것과 비슷하다. 물을 덜 차게, 즉 삶을 덜 불편하게 만드는 효과는 크지만, 물을 뜨겁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행복의 기원> 中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중립 상태를 '0'이라고 하면, 불행의 감소(예 : -4에서 0)에 기여하는 요인과 행복의 증가(예 : 0에서 +4)에 기여하는 요인은 완전히 다르다. 돈과 건강은 결핍의 정도(-)를 줄여주지만, 결핍에서 벗어난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결핍을 없애는 요인에만 계속 집중한다면 권태가 온다. 행복은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 목표 지향적으로 도전할 때 생긴다. 불행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안전지향 사회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다.
"돈은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돈과 건강, 안정성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이다. 결핍에서 벗어났음에도 필요 이상으로 돈과 건강, 안정적인 삶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가 문명을 갖추고 생계의 걱정에서 벗어난 것은 정말 잠깐이다.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선 것은 대략 600만 년 전이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고 문명을 가진 것은 길게 잡아야 6천 년 전이다. 인류가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난 것은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전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영국의 산업혁명이 18세기 중엽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최대한 길게 잡아야 300년 전이다.
인류의 역사를 1년으로 압축해보면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이 농사를 짓고 문명생활을 한 시간은 365일 중 '8.7시간'이다.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 것은 365일 중 '26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364일 15.3시간' 동안 인류는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끊임없는 사냥과 싸움을 해야 했다. 지독한 결핍의 시대였다.
당장 먹을 음식이 있어도 다음 날 굶지 않으려면 다시 사냥을 나가야 했다. 적들에게 음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동굴 속에 들어가 살고, 불을 피우고, 맞서 싸워야 했다. 사냥과 싸움을 못하거나 안전에 민감하지 않았던 인간들은 다 죽었다. 현세에 살고 있는 인류는 모두 생존과 안전에 집착하던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 받은 셈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돈과 건강, 삶의 안정에 집착하는 이유다.
인간은 돈과 건강, 안정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났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결핍이 아닌 잉여의 시대다. 돈과 건강,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 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0의 상태에서 0을 추구하다 보면 권태가 온다. 그래서 선진국에 해당하는 85%의 인류가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할 과제는 '결핍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잉여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다.
잉여의 시대에서 행복을 증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을 찾았다.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세계행복지수 1위), 덴마크(2위), 스웨덴(7위), 노르웨이(5위) 등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행복지수가 높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행복은 높은 소득과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온다'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IMF의 '국가별 1인당 명목 GDP 순위'에 따르면 핀란드 14위, 덴마크 7위, 스웨덴 12위, 노르웨이는 4위다. 모두 선진국들이지만, 노르웨이를 제외하곤 최상위권이라고 볼 수 없다.
행복지수와 경제력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많다. 싱가포르는 1인당 명목 GDP 순위에서 6위, 행복지수는 31위다.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22위, 행복지수는 62위다. 대한민국의 1인당 명목 GDP는 26위, 행복지수는 61위다.
(이 글은 '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글이기 때문에 '국가별 1인당 명목 GDP'로 비교했다. '국가별 GDP'를 비교하면 경제력과 행복지수 순위 격차는 더 커진다.)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 연구자들이 내놓은 주장 중 가장 유력한 답변은 '집단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이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한 '평판' 보다 '개인의 삶과 기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개인주의 문화의 대표격인 프랑스의 사례를 보며 집단주의-개인주의 문화차이를 체감해보자.
프랑스 축구선수 지단의 '박치기 사건'
2006년 월드컵 결승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기 중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연장전 후반, 프랑스팀 주장 지단이 이탈리아 수비수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지단은 퇴장당했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에 패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테라치는 알제리 출신인 지단과 그의 여동생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한다.
프랑스가 월드컵 결승에서 이탈리아에 패한 것이 100% 지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승전 연장전에서 팀의 주장이 퇴장당한 것이 경기력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 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문화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만약 우리나라의 축구선수가 월드컵 결승의 연장전에서 상대편 선수에게 박치기를 하고 퇴장당했다면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주장의 퇴장 이후 경기에서 패배했다면?
"자신과 여동생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이해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대의를 그르치다니, 국가대표 주장이 그렇게 책임감이 없나"
"스포츠 선수면 복수도 스포츠로 해야지. 상대편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는 것도 실력인데"
이와 유사한 반응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프랑스의 반응은 어땠을까? 프랑스는 이 사건 후 지단을 영웅으로 대접했다. 지단의 박치기 동상을 만들어 퐁피두 박물관 앞에 진열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지단에게 "당신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 그래서 프랑스가 당신을 사랑하네"라고 말했다. 집단의 성과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때문에 누구나 심리적 자유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다음은 서은국 교수가 덴마크 학회에서 경험한 일이다.
몇년 전에 덴마크 학회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덴마크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간상이 뭔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한국이 왜 경제력에 비해 불행한 사회인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 그들은 "덴마크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사람을 쓰레기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런 류의 인간을 "가장 하등하게 생각한다. 상종하기 싫어한다"고 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인터비즈 인터뷰 中
집단주의 문화(일본, 한국, 싱가폴 등)에서 자란 사람들은 대체로 정적이고, 수동적이며, 안전 지향적이다. 자신의 삶과 기호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의사결정을 한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기호를 위해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행동한다.
개인주의 문화의 국가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자신의 삶과 기호를 위해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 목표 지향적으로 도전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들을 정리하자면, 인간의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클래스101(이하 클원)의 탄생은 이러한 철학을 기반으로 했다. 클원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평생 수학을 하고, 가죽공예가 좋은 사람은 평생 가죽공예를 하고, 연필이 좋은 사람은 평생 연필을 깎으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인류의 다음 단계로 봤다.
클원은 이를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실행했다.
-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클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어떤 일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레 남들보다 잘하게 된다. 그러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 이들은 온라인 강의를 통해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수익을 만들 수 있다.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는 결핍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클원은 크리에이터 정산액을 1순위 지표로 생각한다.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죽공예를 하면서 살겠다", "꽃꽂이를 하면서 살겠다", "바이올린을 켜면서 살겠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거하면서 먹고 살기 힘들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거지" 라는 대답들이 돌아올 확률이 크다.
클원은 사회의 고정관념, 인식, 문화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여태까지 당연시 돼왔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기로 했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로 했다.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을 비전으로 정한 이유다.
당연시 됐던 것(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한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된다.
당연하지 않았던 것(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산다)이 당연하게 된다.
클원의 비전에 공감하는 크리에이터들과 클래스메이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적 고정관념, 인식, 문화가 바뀐다. 클원은 한 명이 "가죽공예를 하면서 살거야"라고 하면 다른 한 명이 "그래? 나는 꽃꽂이를 하면서 살거야" 라고 말하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기를 살고 있다. 세계 인구의 85%는 선진국에 산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얻게 되면 경제력과 행복은 더 이상 비례하지 않는다. 선진국에 해당하는 85%의 인류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결핍(-)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잉여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다.
행복은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 목표 지향적으로 도전할 때 생긴다. 불행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먹고 사는 걱정이 없었던 기간은 365일 중 '26분'에 불과하다. '364일 15.3시간' 동안은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현세에 살고 있는 인류는 모두 생존과 안전에 집착하던 조상들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행복한 국가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문화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이 집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능동적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삶과 기호를 위해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고 목표 지향적으로 도전할 확률이 높다.
클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클원은 사회의 고정관념, 인식, 문화를 바꾸기로 했다. 클원의 비전에 공감하는 크리에이터들과 클래스메이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다. 당연하지 않던 것이 당연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이 바뀐다.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 참고자료 -
<팩트풀니스>, 한슬 로슬링(Hans Rosling), 김영사
<행복의기원>, 서은국, 21세기북스
<2020 세계 행복 보고서>, SDSN(UN 산하기구)
인터비즈 서은국 교수 인터뷰, '다른 사람의 인생 평가하는 사람? "덴마크에선 쓰레기, 하등한 취급"'
Editor 죠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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