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5일 방송(시즌4, 8화)
안녕하세요 클둥이들!
저는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카카오 등 다양한 채널에서 일상 만화를 그리는 작가이자 2020년, 클래스101에서 아이패드 일상 드로잉 클래스를 오픈하고 작년 12월 나를 표현하는 일상 드로잉 루틴까지 함께하고 있는 귀찮이라고 합니다. 만나뵙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이고 또 이렇게 101MHz의 마이크 앞에 서게 되어 부끄러우면서도 반가운 마음입니다.
제 그림을 한번이라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되게 단순한 그림과 아주 쉬운 글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콘티나 기획을 하는 것도 없고요, 그냥 그때 그때 생각나는 것들 을 두서없이 정리없이 주르륵 쓰고 그리죠.
그런 이야기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특징은 그냥 하루 중 어떤 순간에 몰입해서 그 즉시 바로 쓰는 거라서 되게 날 것이고 정제되지 않은 제 진심이 가득 가득 담겨있다는 거예요! 뭐랄까.. 평소엔 절대 안 쓸 것 같은.. 밤 늦은 시각에 쓴 편지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 학교 다닐 때 자소서 절대 밤에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밤에 쓰면 이성보다 감성이 넘쳐서 아침에 보면 얼굴이 화끈 거릴 정도로 부끄러운 글이 가득 써져있다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렇게 감정이 넘쳐서 밤에 쓴 글에 어떤 반짝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아침에 쓴 글들은 정제되고 논리적지만 제가 느끼기에 진정으로 공감되는 감정들은 그렇게 밤에 혼자 자기검열없이 정제되지 않은 채로 휘갈겨 쓴 글 속 허술함이나 방황하는 마음에 가득 담겨 있는 거 같더라고요. 저는 이런 걸 소위 ‘완벽한 엉성함’이라고 말하는데요. 이 완벽한 엉성함은 정말 그렇게 순간에 충실해야만 만들수 있더라고요.
그 순간, 그 상황에 절대적으로 몰입해서 내 글씨체가 어떻든 오타가 나든 말든 써 내려가면 어쩌다 기가막히게 완벽한 엉성함이 만들어져요. 다음 날 제 정신으로 다시 똑같이 하려고 해도 절대 안 나오는 진짜 말그대로 완벽한 엉성함이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은, 이 완벽한 엉성함을 담아내는 일인데요. 사실 그걸 좋아하면서도 이 완벽한 엉성함에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았어요. 왜냐면 우리가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대개 부단한 노력과 재능, 성실하게 쌓아온 시간 끝에 나온 정수잖아요. 그런 것들이 타인에게도 인정받아 마땅한 반짝임이지, 어떻게 이게 작품이야? 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듬어진 실력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찰나와 순간, 우연에 얻어 걸린 일에 가까우니까요.
근데 저의 경우 이상하게도 그렇게 열심히 해야해, 노력해야해 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그림의 라인 하나, 글의 단어 하나 고민하며 쓴 것 보다 그냥 순간에 몰입해서 아주 날 것으로 가감없이 표현한 것들이 훨씬 더 제 스스로 만족스럽고 후련하고 또 보는 사람들도 더 큰 위로와 공감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전 그렇게 순간에 집중해서 표현하는 식으로 작업을 많이 해왔어요. 음 더 솔직히 말하면 그거 밖에 할 수 없었단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걸 알려주는 게 제 클래스예요. 순간에 충실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수업. 제가 알려줄 수 있는 건 그거 뿐이었거든요. 제가 내공이 단단하게 쌓여있는 그림쟁이 글쟁이도 아니고 대단한 그림 스킬이나 작문법을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클래스를 만들고 진짜 의외였던 건 그 완벽한 엉성함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그 분들이 만들어 내는 작품을 보며 제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단 거예요. 제 이야기에 동감해주시고 저와 같이 표현해주신 분들의 결과물을 볼 때마다 ‘아 이것도 진짜 작품이 될 수 있구나’, ‘이 완벽한 엉성함에 확신을 가져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거죠. 실제로 제 정규클래스 6번째 챕터 마음의 소리 편에는 클래스 메이트님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로 순간을 담아 완성해주신 멋진 작품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 작품들을 보며 완벽한 엉성함에 대한 확신을 다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 최근에 이 확신을 잃어버렸었어요.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제가 작년에 기업과 콜라보 연재들을 많이 하면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엄청 공을 들이면서 작업을 했어요. 성공시켜야해 잘해야해 열심히 해야해 하면서. 그러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평소에 그리는 일상툰도 순간에 충실하기는커녕 메모장에 콘티를 짜고 프로크리에이트에 스케치를 하고 라인을 따고 채색을 하고 오탈자를 고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메모장 갈 새도 없이 그냥 막 그리고 쓰기 바빴는데 말이죠. 자연스럽게 그리고 쓰는 게 너무 재미없어지고 슬럼프도 왔고요.
그래서 오늘 101MHz를 통해 제 스스로 완벽한 엉성함을 담아내는 일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이렇게 클래스를 통해 이 완벽한 엉성함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러 이 자리에 왔어요. 저의 부족하고 엉성한 점도 확신할 수 있게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클래스101 여러분 고맙습니다.
제가 돌아 돌아 설명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는 이미 우리 자체로 빛나고 있으니까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좀 부족하고 엉성해도 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기록하면 그게 작품이란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에 잘 맞는 노래가 하나 있더라구요. 제가 아주 아주 좋아하는 그룹이고 멤버들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가사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가사에 귀기울여 들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따뜻한 말이거든요. :)
클둥이와 함께 듣고 싶은 곡으로 BTS의 소우주를 신청하며 101MHz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귀찮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듣는 101MHz
101MHz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 클래스101 오피스에서 짧게 방송하는 사내 프로그램입니다. 시즌1~시즌3에서는 클둥이들이 세상을 바꿔가는 이야기를 소개하였으며, 시즌4에서는 크리에이터들의 사랑하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직원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사연들을 모아 '다시 듣는 101MHz'로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