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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 Dec 14. 2021

네가 부잣집 딸인 줄 알아?

가계를 한 번 훑어보다.



넌 왜 네 친구들 하는 걸 똑같이 다 하려고 그러니.
네가 그 애들처럼 부잣집 딸인 줄 알아? 


이 말은 스무 살이 넘었던 언젠가 나의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고단하고 팍팍한 엄마의 삶이 느껴지는 대사이기도 하고 그간의 첫째 딸에게 쌓였던 한심함이나 화의 표출이었기도 했을 겁니다. 자식은 부모의 백가지 은혜보다 이렇게 한 번 들었던 말들이 가슴에 박혀 분하다 너무한다 하나 봅니다. 그래서 자식이고 그래서 부모겠지요.


왜 나는 엄마가 말하는 그 친구들처럼 똑같이 살면 안 되는지, 화가 났습니다. 왜 나 보고만 나쁘고 한심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엄마의 사정이 있었겠지요, 그걸 알아서 헤아려주는 자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엄친딸 엄친아는 항상 남의 집에만 있지요. 네, 전 엄친딸 아닙니다.






오늘 에이포 한 장을 꺼내놓고 가계 상황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수입과 고정지출, 아이 교육비나 식비 등 유동적으로 발생하는 지출에 대해 쓰다 보니 거의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수입에 비해 지출이 훨씬 더 많아집니다. 이렇게 가끔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습니다. 

아, 내가 정신 빠지게 쓰고 살 때가 아니구나. 이러다가는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 생길 때 철 좀 들어라, 현실을 생각해라, 어떻게 너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려고 하니. 소리를 하게 생겼구나. 싶었어요. 


아뿔싸! 정말 그야말로 아뿔싸!






며칠 전 본 책에서 

아이 인생에서 꿈틀대는 야망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결정적 순간에 재능을 뒷받침으로 한 열정으로 확 날아올라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돈. 목돈!이라는 부분을 봤습니다.


돈다발 손에 쥐지 않은 채 아이한테 해주는 그 어떤 응원도 애는 사양하고, 그때 돼서야 해주는 사랑, 널 믿어, 할 수 있어, 같은 소리는 진즉부터 소리 소문 없이 해주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고 그쯤엔 조용히 지갑 열어 돈다발 보여주며 "니 돈이다. 원 없이 공부하든 운동하든 장사를 하든 예술을 하든 뭐든 구애받지 말고 맘껏 해라!" 해줘야 한다고요, 그래야 아이가 자기 팔자를 십분 이해하고 스스로 모든 꿈을 접고 조신하게 돈 안 드는 직업 찾아 무기력하게 전전하게 하지 않는다구요. <십팔 년 책육아 중>





이제 스무 살 갓 넘어 세상에 예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던 제게 엄마가 했던 현실조언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무슨 엄마가 저래? 엄마라면 오히려 더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었겠죠.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죄인 만들던 참 철없던 시절이기도 해요.


엄마가 되어보니 현실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들이 참 많아요. 그중에서 돈은 가장 큰 현실이죠.

남편과 제가 아이를 만나기 전 참 많이 대화를 나눴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해요.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 미처 몰랐던 부분이 참 많았어요.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서라도 아이에게 부모의 경제적 능력치를 뽐내거나 그와 반대로 눈치 보게 하지 말 것. 에 대해 다짐했어요.


또한 아이가 부모에게 용기 내 자신의 계획을 말할 때, 찬물 끼얹고 싶지 않아요. 전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님께 기대도 된다는 걸 모르고 자라기도 했고 당연히 안될 거라고 생각해 말도 안 했어요. 그래서 제 능력밖에 것은 하고 싶어도 욕심이라 생각하고 애써 그 마음을 누르고 포기했지요. 결국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돈 안 드는 직업 찾아 무기력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건 이게 아닌데, 하면서요. 물론 제 그릇이 그 정도였겠지만 내 아이를 자신의 능력 외의 것들 때문에 포기하며 살게 하고 싶진 않아요. 이 또한 부모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삶의 태도, 소비 습관, 이런 것들을 바꾸려면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6개월 후에 다시 에이포를 꺼내놓고 이것저것 적어볼 땐 한숨을 좀 덜 쉬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자책하며 왜 이렇게 정신 빠지게 쓰고 살았니, 하고 싶진 않은데 사실 자신은 1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남겨보는 거예요.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받을 돈 없고, 어디에 잘 묵혀둔 땅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횡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맞벌이 부부도 아니니 정신을 좀 차려야겠어요. 


훗날 내 새끼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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